전경련의 컴백

입력
2023.03.19 16: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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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측근 회장 영입 후 대통령 참석 행사 주도
정경유착 상처 씻고 새로운 정권-기업 관계 만들 수 있을까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7일 도쿄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도쿄=서재훈 기자

17일 도쿄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도쿄=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 방일 기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공동 개최한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이 열렸다. 한일 BRT는 매년 개최하는 재계 회의로 4대 그룹은 사장급이 참석했지만, 이번엔 4대 그룹 회장이 모두 참석했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김병준 전 대통령 인수위 위원장이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된 후 전경련이 과거의 위상을 되찾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전경련은 1961년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주도적으로 게이단렌을 모델 삼아 조직한 대기업 중심의 기업인 단체이다. 정주영 현대 회장은 1977년부터 10년간 회장을 지내며 서울올림픽 유치를 이끌었다. 구자경 LG 회장은 야당의 “전경련 해체” 압박 속에 짧은 임기에 그쳤다. 최종현 SK 회장은 전경련 회장 시절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포기하는 역차별의 아픔을 겪었다. 이렇게 현재 4대 그룹 회장은 모두 조부 또는 부친이 전경련 회장을 지낸 인연이 있다.

□전경련은 한국 고도성장기 경제발전과 세계화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동시에 고질적 병폐인 ‘정경유착’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창립부터 ‘부정 축재’ 오명을 벗기 위해 5·16군사정권에 협력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됐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의 정치자금 모금을 주도하다, 결국 회장단이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그 후에도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 정치자금 조성에 이어, 2015년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기금 모금도 주도했다. 결국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 4대 그룹을 필두로 회원 기업 탈퇴가 이어지며 치명상을 입었다.

□이후 회장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어려움을 겪다, 이번 윤 대통령 방일 기간 다시 화려하게 컴백한 것이다. 다음 달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때 한미 BRT 행사 주최자가 애초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전경련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경유착이 당장은 정권과 기업 간 상호이익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늘 그 끝은 기업 이미지에 씻기 힘든 상처로 남았다. 이번 전경련의 컴백은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권과 기업 간 성숙하고 투명한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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