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아, 복수는 통쾌했어… 하지만 현실에서 사적 제재는…"

입력
2023.03.18 15:00
구독

학폭 피해자의 처절한 응징 결말에 열광
현행법상 처벌 가능성 높은 사적 제재 해당
"오히려 사회적·경제적 강자가 유리할 수도"

※ 이 기사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 파트2가 10일 공개된 후 영어·비(非)영어권 통틀어 시청시간 세계 1위에 오르고, 한국을 포함해 수십 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지난해 12월 30일 공개된 파트1에 이어 선풍적인 인기를 재확인했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학폭) 피해자인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이 오랜 시간 치밀한 계획을 세워 가해자들뿐 아니라 학폭을 묵인하고 은폐했던 교사 및 경찰 등에게 응징하는 과정을 다룬 복수극이다. 특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가해자들이 처절하게 보복당하는 결말은 시청자들에게 ‘정의가 실현됐다’는 쾌감을 줬다.

드라마의 인기는 학폭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키며 사회적으로도 ‘반(反)학폭’ 정서를 키웠다. 드라마처럼 고데기를 이용한 실제 학폭 사건이 다시 부각돼 공분을 샀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폭 사실이 알려지면서 임명 하루 만에 사퇴했다. 태국, 말레이시아 등 해외에서도 학폭 피해 폭로가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파트2 공개 후 “‘더 글로리’는 동은이 사회가 보장해주지 않는 정의를 어떻게 스스로 쟁취해내는지 보여준다”며 “드라마는 학폭으로 10대뿐 아니라 성인도 공감할 수 있는 본질적인 사회적 불평등을 얘기한다”고 평가하면서 의미를 부여하기까지 했다.


정당방위 같은 예외 아니면 처벌 가능성↑

배우 송혜교가 처연하고 아름다운 복수의 서막을 알렸다. 넷플릭스 제공

배우 송혜교가 처연하고 아름다운 복수의 서막을 알렸다. 넷플릭스 제공

문제는 통쾌하기 이를 데 없으면서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간 동은의 복수극 중 상당 부분이 ‘사적 제재’에 해당해 실정법상 용인하기 어려운 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우리 실정법은 정당방위나 긴급피난, 또는 자구행위 같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사적 제재는 사법처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사법시스템이기도 하다.

예컨대, 도둑이 들었을 때 바로 맞싸울 경우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절도 발생 후 며칠 지나 도둑을 마주쳐서 폭행(유형력)을 행사해 제압한 뒤 도난품을 되찾는 건 절도와 별개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박연진(임지연)을 비롯한 모든 사건의 배후에 학폭 피해자인 동은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 형사가 자백하려는 듯한 동은에게 “조사는 여기까지”라고 말한 것처럼 (동은 입장에서의) ‘해피엔딩’으로 끝낼 수 있다. 그럼에도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동은의 복수극이 실정법상 어떤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 살펴봤다.


①학폭 방조한 담임의 사망: X

동은의 첫 번째 복수 대상이었던 담임 교사는 장학사 임용을 앞둔 아들이 백합 알레르기에서 벗어나도록 돕지 않아 사망한다. 그 배경에는 학폭을 방조하고, 오히려 가해 학생들을 도운 담임의 행각을 폭로해 장학사의 꿈을 접게 할 수 있다는 동은의 묵시적인 협박이 있었다.

이 경우 동은이 아들에게 아버지를 살해할 계기 내지 동기를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부작위(알레르기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환기하지 않은 행위 등)에 의한 살인의 공범(교사 내지 방조)을 처벌하는 건 법리적으로도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설령, 아들이 자백하더라도 동은은 아들이 이런 방식으로 담임을 사망에 이르도록 할 수 있는지 예측하기 힘들고, 동은의 협박과 담임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②불법 촬영 및 불법 개인정보 수집 사주: O

동은(송혜교·왼쪽)의 방 한쪽 벽은 고교 시절 그를 향해 학교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들 사진으로 빼곡하다. 이 사진들 중 상당수는 동은이 강현남에게 받은 것이다. 넷플릭스 제공

동은(송혜교·왼쪽)의 방 한쪽 벽은 고교 시절 그를 향해 학교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들 사진으로 빼곡하다. 이 사진들 중 상당수는 동은이 강현남에게 받은 것이다. 넷플릭스 제공

극중 동은은 최대 조력자인 강현남(염혜란)에게 연진이나 전재준(박성훈) 등의 뒤를 쫓아 몰래 사진을 찍게 하고 개인정보를 수집하도록 사주한다. 현남이 없었다면 동은의 복수는 더 오래 걸리고, 사실상 불가능했을 수도 있을 정도로 현남의 비중은 높다.

현남이 불법 촬영을 하는 것 등은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스토킹처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스토킹 행위를 반복적으로 지속한 스토킹 범죄에 해당한다. 현남은 물론, 이를 사주한 동은 역시 처벌 가능성이 매우 높다.


③마약 투약 등 협박해 달러 갈취: O

가해자 중 한 명인 이사라(김히어라)가 마약 등을 투약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협박해 달러로 가득 채운 가방을 받아간 행위는 의심의 여지 없이 공갈에 해당한다. 형법에선 사람을 공갈해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득을 취하면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사라에게 받아 간 돈의 정확한 액수가 드러나진 않지만 현남의 딸 유학비와 생활비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거액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액수가 5억 원 이상일 경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3년 이상의 징역형, 50억 원이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


④사라의 마약 투약 유도: O

이사라(김히어라·왼쪽)가 최혜정(차주영)을 질책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이사라(김히어라·왼쪽)가 최혜정(차주영)을 질책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동은은 사라의 마약 투약 현장을 노출시키기 위해 동은의 조력자들로부터 필로폰으로 추정되는 마약을 구매한 뒤 이를 사라 아버지가 목사로 있는 교회 지하실에 두도록 한다. 유혹을 이기지 못한 사라는 함정에 빠져들어 투약하고 환각에 빠진 상태가 만천하게 공개된다.

이 역시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으로 유죄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향정신성의약품인 필로폰을 매매해 운반하도록 한 것만 해도 범죄에 해당하고, 일종의 ‘던지기’ 수법을 이용해 사라의 투약을 유도한 부분도 드러날 경우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⑤협박해 실종신고, 재준 안약에 약물 투입: O

학교폭력 가해자 최혜정(차주영·오른쪽)이 문동은(송혜교)에게 무릎을 꿇고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학교폭력 가해자 최혜정(차주영·오른쪽)이 문동은(송혜교)에게 무릎을 꿇고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동은은 결혼을 앞둔 최혜정(차주영)의 학폭을 시어머니가 될 사람에게 알릴 수도 있다고 협박해 경찰에 손명오(김건우)의 실종 신고를 하도록 하고, 연진을 주여정(이도현)의 병원으로 부르도록 만든다. 또, 이용 가치가 없어진 혜정을 비참하게 차버린 재준에게 복수하도록 안약에 약물을 넣도록 권유하기도 한다.

우선, 협박해 혜정을 사실상 조종한 행위는 형법상 강요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을 통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자를 5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명오의 실종신고를 할 의무가 없는 혜정이 신고를 하고, 연진을 불러낸 건 형법상 강요로 볼 수 있다.

혜정이 재준의 안약에 약물을 투입해 사실상 눈을 멀게 한 건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중상해에 해당하는데 동은은 이를 교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약물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로 의율할 수도 있다.


⑥연진의 학폭 사실 인터넷 폭로: O

박연진(임지연·오른쪽 두 번째)이 복수를 시작하기 앞서 나타난 문동은을 바라보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박연진(임지연·오른쪽 두 번째)이 복수를 시작하기 앞서 나타난 문동은을 바라보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동은은 사실상 연진을 특정할 수 있는 수준의 정보와 함께 학폭 사실을 인터넷 게시판에 유포한다. 또, 연진의 배신을 의심한 사라도 연진의 학폭을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이런 학폭 폭로는 기본적으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통망법)상 명예훼손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전파 가능성이 높다면 형법상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 해당 사실이 허위가 아니고,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현행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밖에 동은은 수시로 가해자들에게 특정 사실을 알려 서로 위해를 가하게 하거나 가해자 및 관계자들을 협박해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는 모두 ‘사적 제재’에 해당한다. 통쾌한 복수극에 환호할 수는 있지만, 본인도 범죄자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훈 변호사(법률사무소 자유)는 “학교폭력을 당해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고통받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적 제재를 옹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지양돼야 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사적 제재를 용인할 경우 법치주의의 근간을 약화시키고, 도리어 사회적, 경제적 강자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안아람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