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3가지 위기 드러낸 이전투구 'SM 인수전'

입력
2023.03.17 11: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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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안정적 매출 구조 취약... 오너리스크에 휘청
② 하이브가 SM 인수 안 해도 획일화 이미 뚜렷
③ K팝의 주어는 여전히 아티스트 아닌 기획사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21년 제49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AMA) 시상식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Artist of the Year)를 받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로이터=연합뉴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21년 제49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AMA) 시상식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Artist of the Year)를 받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로이터=연합뉴스

방탄소년단(BTS)이 미국의 주요 대중음악 상을 석권하고 데뷔 1년도 안 된 뉴진스가 빌보드 메인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시대다. 사람들은 바야흐로 ‘K팝 전성시대’가 왔다고 환호했지만 사상누각에 불과했음이 SM 인수를 둘러싼 지난 한 달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극명하게 드러났었다. K팝이 위기라는 경고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안정적인 매출 재생산에 기반 못 만든 ‘외화내빈’ 기획사

서울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본사. 뉴시스

서울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본사. 뉴시스

1990년대 중반, SM 등 연예 기획사의 초기 제작사의 생산 구조는 속된 표현으로 ‘맨땅에 헤딩’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K팝이 성공궤도에 오르자 기획사들은 안정적 수익구조를 고민하기보다는 콘텐츠 파급력을 활용한 '문어발식 확장'을 꾀했다. 2010년 이후 SM이 뷰티, 식·음료 등 파생 사업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다수의 중소기업을 인수합병(M&A)한 게 그 예다. JYP는 편법적인 M&A 시도로 위기 타파를 시도했다. 2007년 이후 3년간 적자행진을 면치 못해 코스닥 상장의 벽에 부딪혔던 JYP는 2011년 가수 비가 대주주로 있던 상장사 제이튠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다. 박진영과 그룹 미쓰에이는 상장사인 제이튠 엔터와 계약한 뒤 원래의 JYP를 흡수 합병해 덩치를 키웠다.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자본조달 구조를 만들지 못한 게 K팝 1세대 기획사의 오너리스크로 이어졌다. 예컨대 해외법인 ‘CTP’ 의혹이 불거지면서 SM의 경영권 분쟁은 격화됐다. 2019년 양현석 YG 총괄 프로듀서가 성 접대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면서 YG의 시가총액은 크게 하락했다. 이동연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는 지난 3일 토론회에서 “(SM의) 방만해진 파생 사업 방식은 콘텐츠 생산자인 아티스트에게 부담을 안기는 등 적지 않은 리스크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양성 침해’ 우려해야 하는 현실… 획일화 이미 진행 중

2019년 데뷔한 그룹 밴디트는 지난해 데뷔 3년 만에 해체했다. MNH엔터테인먼트 제공

2019년 데뷔한 그룹 밴디트는 지난해 데뷔 3년 만에 해체했다. MNH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이브가 SM 인수전에 참여하자 나온 우려는 두 거대 기획사의 결합으로 K팝의 종 다양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 기업 한 곳의 인수 움직임만으로도 종 다양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K팝의 획일화 경향을 방증한다. K팝 1세대는 H.O.T와 젝스키스, S.E.S와 핑클 등 SM과 DSP가 양대산맥을 이루며 성장했다. 2세대 역시 소녀시대, 빅뱅, 원더걸스 등 SM, YG, JYP 소속사 그룹이 장악했다. 대형 기획사의 독과점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 K팝 시장이 연간 음반 판매량 5,000만 장을 넘겼다. 종 다양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 지 오래지만 하이브(빅히트뮤직 한정)·SM·YG·JYP 등 ‘빅4’ 대형 기획사 비중은 전체 58.8%에서 오히려 60.9%로 높아졌다. ‘빅4’ 기획사 소속이 아닌 아이돌은 살아남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다.

K팝 시장 주역인데… 아티스트·팬덤 발언권 배제돼

가수 보아가 11, 12일에 걸쳐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데뷔 20주년 단독 콘서트 '더 보아: 뮤지컬리티'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 보아가 11, 12일에 걸쳐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데뷔 20주년 단독 콘서트 '더 보아: 뮤지컬리티'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SM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K팝을 성장시킨 주역인 아티스트와 팬덤이 철저히 배제된다는 점도 증명됐다. SM 소속 아티스트들은 경영권 분쟁에 대해 최소한의 발언조차 하지 못했다.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직후 SM 아티스트들의 시상식 수상소감에서 이수만 전 SM 총괄프로듀서에 대한 언급은 자취를 감췄다. 단독 콘서트를 진행한 에스파, 보아도 자신을 키워준 이 전 총괄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못했다. SM과 하이브 양측은 분쟁이 길어지자 자신을 지지하는 게 아티스트를 위한 길이라며 팬들에게 지지를 호소했지만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문화연대 소속 이종임 서울과학기술대 강사는 “아티스트가 무사히 활동하기를 바라는 팬들은 소속사에 불만을 표출하기보다는 지지하려는 방식을 취한다”며 “이를 각 기획사들이 오히려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도제식 시스템의 매뉴얼화, 팬덤 여론 수렴 필요

전문가들은 겉으로만 화려만 'K팝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팬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기획사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제언한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팬덤이 공동행동 등에 직접 나설 수도 있지만 이들의 의견이 한곳으로 모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며 "경영·제작에 앞서 기업이 팬덤 입장부터 수렴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제식 시스템의 매뉴얼화도 긴요하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지난 15일 관훈토론회에서 "도제식으로 내려오는 콘텐츠 제작 과정을 매뉴얼화하고, 제작·활동 노하우를 자산으로 축적해 선순환시킨다면 시장 변수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좋은 지식재산권(IP)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문화를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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