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철 코앞인데 호남 저수지 10곳 저수율 0%...봄 가뭄에 커지는 시름

입력
2023.03.17 04:00
수정
2023.03.17 10:3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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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철 앞두고…농업용수 확보 비상
광주·전남 최대 식수원 주암댐 20% 남짓
섬 지역 물 공급에 한 달 15억 원씩 투입

"양파가 생으로 고사하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전남 함평에서 만난 남종우(63)씨는 메마른 양파밭을 가리키며 털썩 주저앉았다. 30년째 양파 농사를 짓는 남씨에게도 요즘처럼 심한 가뭄은 기억에 없다. 실제 남씨의 양파밭은 오랜 기간 물을 주지 못해 쩍쩍 갈라져 있었다. 인근 저수지도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가뭄이 해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파종 시기를 앞둔 농민들의 마음이 타들어가고 있다. 특히 전국 최대의 곡창지역이자 주요 농산물 산지인 호남의 상황은 심각하다. 일부 농산물들은 가격 폭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말라붙은 저수지…타들어가는 농심

13일 전남 함평군 석창리에 위치한 남종우씨의 양파밭. 오랜 기간 물을 제대로 주지 못해 메말라 있다.

13일 전남 함평군 석창리에 위치한 남종우씨의 양파밭. 오랜 기간 물을 제대로 주지 못해 메말라 있다.

한 해 양파 농사의 작황은 3월에 좌우된다는 게 농가의 설명이다. 남씨는 "양파는 동물처럼 ‘겨울잠’을 자는데 2, 3월에 물을 제대로 공급받지 않으면 영영 깨어날 수 없다"며 "올해 농사는 이미 망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양파는 물이 부족하면 아무리 거름을 많이 줘도 땅속 영양분을 제대로 빨아들일 수 없다는 게 남씨 설명이다. 남씨는 지금껏 인근 석창저수지에서 농업용수 공급을 의존해 왔다. 하지만 저장해 둔 물이 바닥까지 말라붙은 지 오래다. 실제 이날 직접 만져본 남씨 양파밭 흙도 물기를 머금지 않아 푸석했고, 비료 알갱이도 물이 없어 녹지 못한 상태였다.

농업용 저수지는 추수가 끝난 뒤부터 이듬해 봄까지 저수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한다. 모내기 철인 5, 6월에 접어들면 물 사용량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뭄이 길어지면서 전남·북지역 저수지 10곳은 저수율이 0%다. 36곳 저수지 저수율도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남지역으로 범위를 좁히면 농업용수 공급량의 40%를 담당하는 나주호와 담양호, 광주호, 장성호의 평균 저수율은 37.6% 수준이다. 전북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저수율이 역대 최저치인 19.2%를 기록하고 있는 섬진강댐에서 농업용수를 공급받는 김제·정읍·부안지역에서는 모내기철 심각한 물 부족 현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국의 대표 곡창지대로 꼽히는 지역이라 올해 벼농사 작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국 주요 지역별 저수지 저수율. 그래픽= 김대훈 기자

전국 주요 지역별 저수지 저수율. 그래픽= 김대훈 기자


저수율 '20%' 무너진 주암댐…가뭄대책 절실


광주·전남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면서 호남지역 주요 식수원인 주암댐 저수율이 20%대로 떨어진 가운데 한국수자원공사 주암댐지사 관계자가 13일 물 밖으로 드러난 주암댐 취사탑을 가리키고 있다.

광주·전남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면서 호남지역 주요 식수원인 주암댐 저수율이 20%대로 떨어진 가운데 한국수자원공사 주암댐지사 관계자가 13일 물 밖으로 드러난 주암댐 취사탑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가뭄으로 호남 지역 주민들은 이미 식수 공급도 위협받은 지 오래다. 호남지역 최대 상수원인 전남 순천 주암댐의 경우 13일 기준 저수율은 18.1%에 불과했다. 지난해 11월 35%, 12월 30%가 무너진 이후 속절없이 메말라가고 있다. 13일 찾아간 주암댐 취수탑은 오랫동안 물에 잠겨 있었던 부분까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검은 물때가 등고선처럼 층층이 쌓인 취수탑 표면은 수면과 10m 이상 벌어져 있었다. 주암댐 관계자는 "주암대 최대 저수량은 7억 톤이지만 현재 1억5,900만 톤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하루 평균 102만 톤이 공급되고 있어 최악의 경우 5~6월이면 저수위에 근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암댐에 식수를 의존하는 지자체인 광주광역시를 비롯해 전남 나주시와 목포시 등 11개 지자체 주민들은 이미 생계에 지장을 받고 있다. 광주시 서구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관철(40)씨는 점심 장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그릇을 모아 한꺼번에 설거지를 한다. 양변기 수조에는 물병을 넣었고, 수압조절 밸브도 설치했다. 김씨는 “자영업자들에게 식수 공급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며 “제한급수에 돌입할 때 물탱크를 보유하지 못한 가게는 장사를 할 수 없는 처지라 절박한 심정으로 물 절약 캠페인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75만8,000톤의 공업용수를 주암댐에서 공급받는 여수와 광양 국가산단도 공장 가동 줄이기에 나섰다. 시민들 역시 한 방울의 물이라도 아끼기 위해 샤워 시간을 줄이는 등 물 절약 운동에 동참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광주시 서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관철씨가 13일 물 절약을 위해 설거지를 쌓아두고 있다.

광주시 서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관철씨가 13일 물 절약을 위해 설거지를 쌓아두고 있다.


섬 지역 수원지 18일 치 남았다…물 공급에 한 달 15억씩 사용

지난 겨울 비교적 비가 자주 내린 전남 완도 등 섬 지역 물 사정도 여전히 심각하다. 최대 100만 톤을 저장해 완도군 약산도와 고금도 등 주민 6,500명의 식수원 역할을 하는 약산도 해동저수지는 지난해 10.2%까지 떨어진 저수율이 3개월 사이 3.0%까지 감소했다. 주민 권사일(64)씨는 "60년 동안 이렇게 마른 적이 없었다"며 "현재 해동저수지 저수율이 3%에 불과해 18일 분량의 물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약산도는 연륙교로 연결된 덕에 지난해 10월부터 매일 육지에서 15톤 트럭 160대 분량인 2,400톤의 장흥댐 물을 실어 정수장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2개 섬 주민들의 사용량인 2,100여 톤보다 300톤가량 많은 수준이라 제한급수는 불가피하다. 지난해 8월 이후 완도지역에서 제한급수가 이어지고 있는 넙도 등 4곳 주민들은 물 비용으로 하루 5,000만 원씩, 한 달 15억 원을 사용하고 있다. 가뭄 장기화에 대비해 그동안 자제했던 대형 관정을 파고, 지하수를 끌어올려 저수지를 채우는 섬도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호남지역 주요 수원지 저수량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이제는 수원지 주변 물도 모두 동나서 더 이상 끌어올 방안을 찾기도 어렵다"며 "주민들도 물 절약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지만 정말 큰 위기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안= 박경우 기자
광주ㆍ함평ㆍ순천=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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