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니치든 조선인이든 신경 안 쓴다는 말, 차별보다 거만”

입력
2023.03.16 18:30
수정
2023.03.17 08:51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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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에서 소설가로 데뷔한 양영희씨
장편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 발간
자신이 경험한 80년대 억압·차별 담아내
"이해가 깊어지려면 오픈해야 한다고 생각"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흰기러기상(대상), 일본 마이니치영화콩쿠르 다큐멘터리 영화상 등을 수상한 양영희 감독이 자전적 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를 펴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흰기러기상(대상), 일본 마이니치영화콩쿠르 다큐멘터리 영화상 등을 수상한 양영희 감독이 자전적 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를 펴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나는 미영이 자이니치든 조선인이든, 그런 건 신경 안 써."

장편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의 주인공 '박미영'은 좋아하는 일본인 남자에게 들은 한마디에 참담해진다. 일본 땅에서 차별받는 '조선적'이라는 정체성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소수자의 삶. 신경 안 쓴다는 말은 그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시혜적 시선을 품은 차별의 시선이 드러난 단 한마디. 작가가 평생 들어온 차가운 말을 소설로 재현했다.

양영희(59) 영화감독이 소설로 독자들을 만났다.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재일동포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2006) ‘굿바이 평양’(2011)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와 극영화 ‘가족의 나라’(2013)가 주로 가족에 시선을 주었다면 소설에서는 자기 자신에 집중했다. 그는 지난 13일 한국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은 못 쓸,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썼다"고 말했다.

'가족의 나라'로 일본 유수 영화제들에서 시나리오상을 휩쓸던 당시 한 출판사 관계자의 소설 출간 제안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조선대학교 재학 시절이었다. 1980년대 일본과 북한을 오가는 배경의 영화를 찍으려면 막대한 예산이 들지만 시공간에 한계가 없는 소설로는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소설은 1980년대 중반 재일조선인인 '미영'이 조총련 산하의 최고 교육기관인 조선대학교를 다니며 방황하는 청춘 시절을 그렸다. 작가 자신이 경험한 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억압적 분위기와 일본 사회의 차별적 시선 등의 기억을 세밀하게 되살려 냈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양영희 지음·인예니 옮김·마음산책 발행·244쪽·1만5,000원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양영희 지음·인예니 옮김·마음산책 발행·244쪽·1만5,000원

현실과 소설의 차이는 '미영'이란 캐릭터에 있다. 엄격한 규율의 기숙사 생활과 만연한 성차별, 매일같이 이어지는 자기반성, '수령님'을 우상화하는 교육, 본인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 졸업 후 진로 상담까지. 답답한 상황에도 '미영'은 극단 입단의 꿈을 버리지 않고 나아간다. 작가는 해내지 못했던 일들이다. 그는 "친구와 가족에게 해가 갈까 걱정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작가는 결국 학교의 진로지도에 따라 조선학교 교사로 짧게 일했다.)

일본인 남자친구와의 대화 장면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양영희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남자친구의 말에 불편한 심정을 솔직히 대꾸하지 못했지만 '미영'은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신경써달라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작가는 "신경 안 쓴다는 건, 차별 안 한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지만 아주 거만한 말"이라면서도 "(재일조선인) 대부분은 더는 대화하지 않고 돌아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영'은 소통하기를 단념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촌스러울 정도로 멋지게" 그린 건 "너무 현실적이면 꿈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제 영화에 출연했던 양익준 감독이 '실제 생활에서 못했던 걸 작품에서 하면 된다'는 말을 한 적 있어요. 영화를 할 때도 이 소설을 쓸 때도 그 말을 생각했습니다."

소설도 영화도 양 작가에게는 소통을 위해 애쓴 결과물이다. "일본과 전 세계의 재일조선인에 대한 이해가 정말 깊어지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집단이 아니라 개개인이 서로 만나봐야 하죠." 올해는 다시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바쁘게 일해 온 자신에게 휴식을 권하는 지인들도 있다고 말한 작가는 "나이도 좀 많아서 이제 빨리 만들어야 하니까"라고 농담을 던졌다. 시나리오 작업 중인 차기작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양 감독의 두 번째 극영화가 될 예정이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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