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말도 안 하는 중3 아들... 무력감이 느껴져요

입력
2023.03.13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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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열의 회복’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우열 원장이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저는 남편, 아들 둘과 함께 사는 40대 전업주부입니다. 말과 행동이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중학생 아들과의 갈등으로 괴롭습니다.

아들은 한동안 방역문제로 등교를 못 하면서 게을러지기 시작했어요. 언젠가부터 오후 1시까지 자고 일어나서 게임을 하다 겨우 숙제를 하는 식으로 생활 루틴이 자리를 잡았어요. 등교수업을 하면 달라질까 했는데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죠. 방과 후 집에 오면 친구들과 카톡을 하거나 게임을 하다 밤 12시를 훌쩍 넘기고야 책상 앞에 앉습니다. 과제한다며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에야 잠이 들다보니 늦게 일어나서 지각하는 일이 잦아졌어요. 이런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들은 극도로 조용한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에 대화를 시작하려고 하면 "몰라", "알았어" 정도로 응수하고 지나가요. "할 일을 먼저 하고 게임을 하면 좋겠다"고 좋은 말로 해도 습관이 고쳐지지 않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진로 문제를 슬슬 생각해야 하는데 아무 의욕이 느껴지지 않아요. 의욕이 없는 데다 게으른 태도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됩니다. 이 문제로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의외로 "늦긴 해도 할 일을 잘하고 있고, 집중력도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너무 의아했죠. 제가 지켜봤을 때 게임 외에 어떤 의욕도 느껴지지 않거든요. 자식이지만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게으르고, 대화도 피하는 아들을 보면서 엄마로서 무력감이 듭니다.

저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쌓은 추억이나 기억이 없어서 아이들과 늘 잘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가정형편이 어려웠죠. 일찍 취업을 해서 생활비를 보태는 생활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한 후 두 아들을 낳고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셨기 때문에 엄마와의 유대관계도 거의 없었어요. 지금도 만나면 서로 서먹서먹할 정도로 관계가 어색해요.

지금이 사춘기라고 생각하고 한 걸음 떨어져서, "알아서 하겠지" 마음을 먹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전혀 달라지는 게 없으니 불안합니다. 성적은 중위권인데 성적보다 걱정인 건 머릿속에 게임 생각만 있는 것 같다는 거예요. 아무리 생활 습관을 바꾸려고 해도 다시 밤 12시가 넘어 자리에 앉고 새벽에 잠들어 아침엔 허둥지둥 등교하는 모습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요.

아들의 게으름과 의욕 없는 태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 지켜볼 수도 없고 대화라도 하려고 하면 입을 닫아버리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린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박소연(가명·48·주부)

소연씨, 내 자식이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소통도 안 되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의 깊은 불안과 무력감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아마 독자분들이나 사춘기를 겪고 있는 학생들도 많이 공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사춘기를 지난 아이들은 왜 이럴까, 그리고 이런 아이를 대할 때 부모의 태도와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자녀를 낳으면 부모는 자녀를 성장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에요. 어렸을 때는 어린 자녀의 성장에 필요한 것들을 살피고 제공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부모는 관계에서 주도성을 갖게 되고, 자식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죠. 하지만 성장을 하면서 자녀는 인생에서 부모 외에도 다른 중요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합니다. 부모는 여전히 자식에게 너무 중요한 사람이고 영향을 많이 끼치는 사람이지만 그 외 다른 요소들로 채운 자기만의 세계가 자라는 거예요.

사연만 봐서는 소연씨의 아들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이 시기에 겪는 문제를 아들 역시 겪고 있는 것처럼 보여져요. 청소년기의 아이들, 특히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은 부모가 아무리 대화를 시도하려고 해도 통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전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고 자신의 미래에도 학업에도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여겨져 부모를 불안하게 하죠. 소연씨의 아들 역시 비슷합니다. 게으르고 무기력한 모습에 학교에는 지각하기 일쑤이고 부모와의 대화도 피하죠.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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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연을 보니 아이의 행동에 대한 정보만 나열돼 있고 아이의 기질이나 성격, 감정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어요. 소연씨가 부모로서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그동안 보이지 않는 감정 소통에는 부족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이 속마음을 비치지 않고 힘든 감정도 표현하지 않으니 겉으로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두렵고 불안하고 그걸 잘 몰라주는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을 거예요.

부모와 자식 간의 감정 소통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때 전제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알아봐주고 받아줘야 한다는 점이에요. 특히 난생처음 경험해보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는 사춘기 자녀와 정서적 소통을 위해서는 수용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필요한 것을 요구하면 그것을 주는 소통이 아니라 일단 아이의 감정 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죠.

그런데 사춘기 자녀를 둔 많은 부모들이 소연씨처럼 아이에게 '옳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설명하고 행동을 교정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인지적으로 설명하면 아이가 이해하고 납득해서 변화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사춘기를 감정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잖아요. 머리로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이 시기의 아이들이지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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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아이에게 공부와 진로, 생활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해주는 것은 인지의 영역이지 감정의 영역이 아닙니다. 담임 선생님의 설명처럼 아이는 학교 생활에서 집중력도 좋고 자기 할 일도 잘하는, 인지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학생이지만 그와 별개로 정서적으론 힘든 상황을 겪고 있을 수 있어요. 표면적으론 성적이나 진로 및 친구 고민을 하고, 이면에서는 성인기를 앞두고 정서적 독립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독립에 대한 불안을 겪는 참 혼란스러운 시기예요.

하지만 부모는 그런 아이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지할 수 있는 부모가 힘들고 불안한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답답하고 외로워집니다. 거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 행동을 하나하나 꼬집어서 혼을 내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끼기보다 공격한다고 생각해 거리를 둘 수밖에 없어요.

"게으르고, 생각이 없고,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편견은 지극히 부모의 기준에서 아이를 보는 겁니다. 학업과 진로도 부모로서 아이를 이끌어줘야 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지금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겁니다. 그게 아이 입장에서 부모에게 원하는 바예요. 아이에게 생활 습관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해서 가르치려 하거나 부모가 실망한다는 표현을 하기보다는 "무엇보다 네가 더 중요하다, 공부나 진로도 중요하지만 네가 마음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뭐든 들을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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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게 부모 자신의 불안을 낮추는 거예요. 특히나 감수성이 예민하고 불안한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가 스스로 자신의 불안을 다스리지 못하고 가감 없이 표현한다면 아이는 더 큰 불안에 떨게 되겠지요. 독립적인 성인이 되기 직전의 청소년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가 뒤처질까 봐,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흘려보낼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럴수록 아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신뢰를 보내며 자기 생활에 대한 결정권과 책임을 아이에게 넘겨주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어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소연씨 자신도 사춘기 아들과의 문제를 겪으며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있다고 했지요. 부모가 느끼기에 아이가 하루아침에 달라졌을지 몰라도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에서 막연하게 시작된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 겁니다. 굉장히 무력한 듯 보이지만 아이의 마음에는 누군가 나를 좀 잡아주고 이끌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할 일을 먼저 하라고 야단치고 이야기 좀 하자고 다그치는 부모보다 내가 지금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 이 마음이 들어도 괜찮은 것인지 이야기해줄 수 있는 부모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돌아가는 것 같아도 풀리지 않은 매듭을 풀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걸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모와 자녀 모두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잘 보내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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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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