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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 앤 캐치] 北 '극장국가' 무대에 선 김주애… 주인공인가 카메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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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독무대였던 '극장국가' 북한에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2013년생, 김정은-리설주 부부의 3남매 중 둘째로 알려진 김주애다.
지난달 8일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 기념 야간 열병식은 아버지와 짝을 이룬 2인극의 히로인, 김주애의 위상을 유감없이 보여준 행사였다. 극장국가의 속성상 상징적 의례로 권력을 과시하는 북한에서도 가장 스펙터클한 무대가 바로 열병식이다. 화려한 조명과 축포로 어둠을 수놓은 식전 행사에 이어, 60개 종대와 무기·장비의 대규모 행렬이 이어지는 동안, 검은색 모자와 코트로 어른스럽게 차려입은 김주애는 주석단 정중앙에서 김 위원장과 나란히 연병장을 내려다보며 사열했다. '최고 존엄' 부친의 얼굴을 양손으로 쓰다듬는 파격적 장면도 연출했다. 기존 '주조연'이던 모친 리설주는 주석단 한쪽에 조용히 있었고 고모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주석단에 오르지도 못했다.
이날은 김정은 부녀의 다섯 번째 동반 무대였다. 지난해 11월 18일 '괴물 ICBM' 화성-17형 시험 발사를 함께 참관한 것을 시작으로, 앞선 네 번의 동행 역시 모두 군 행사였다. 각종 미사일을 비롯한 '핵전투무력'을 앞세운 열병식장의 군인들은 수령 부녀를 향해 "김정은 결사옹위! 백두혈통 결사보위!"를 외치며 충성을 맹세했다. 김정은과 그 자녀(백두혈통)를 같은 반열에 올려 권력 세습을 기정사실화하는 것과 다름없는 구호였다.
건군절을 기점으로 부녀는 공개 행보를 부쩍 늘리고 있다. 건군절 전야 군 장성 숙소 방문 및 기념 연회(7일)와 열병식(8일)에 이은 내각-국방성 직원 체육경기(17일)와 평양 서포지구 새 거리 착공식(25일)까지, 지난달 김 위원장은 일주일에 한 번꼴로 딸을 대동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열병식 이후 국방과 무관한 행사로 보폭을 넓히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김주애의 노출 빈도가 늘어날수록 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둘러싼 의문도 증폭하고 있다. 김주애는 김정은의 후계자인가. 김정은은 왜 자녀 신상을 드러내는 부담을 감수해 가며 딸과 전면에 나섰나. 전문가들의 관측은 분분하지만, 이 또한 북한 김씨 왕조가 능숙하게 구사해 온 '극장 정치'의 반복이자 4대 세습의 시동을 일찌감치 걸려는 시대착오적 행태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다.
김주애가 김정은 후계자로 유력하다고 보는 쪽은 김주애가 최고의 예우를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최근 발행된 북한 우표에 김주애 모습이 담기고,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주애'라는 이름을 못 쓰도록 개명을 강요했다는 소식도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장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보고서에서 노동신문이 지난해 11월 김주애의 두 번째 공개 활동을 기사화하면서 '존귀하신 자제분' '(김정은이) 제일로 사랑하시는 자제분'이란 표현을 썼다고 강조했다. '존귀하신'의 경우 역대 수령에게만 부여해온 수식어로, 김주애가 '후대 수령'임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열병식 기마부대 행진에서 김정은이 타는 백마 바로 뒤를 김주애 백마가 따른 점, 최고지도자에게 바치는 '결사보위' 구호가 자녀(백두혈통)에게 적용된 점은 또 다른 근거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열병식 사열대 중앙에 아버지 옆에 서 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라며 "한 20년 정도는 훈련을 시켜야겠다는 계산으로 (후계자 수업을)시작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장 실장도 김주애가 아직 어린 만큼 후계자로 '지명'됐다기보단 '내정'됐다고 보는 게 맞다면서 "후계 수업이 공개적으로 진행되면서 김주애가 김정은의 현지지도, 중국 방문 등에 동행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소장은 "김정은 첫째 아들이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 사이에선 김주애를 후계자로 보기 어렵다거나 현재로선 속단할 수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북한의 속성상 딸이 권력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대표적 논거다. 북한 정권은 '백두혈통'을 내세운 부계 세습 구조인데, 김주애가 후계자가 된다면 '김씨 정권' 대물림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북한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남성중심적 문화도 '여성 수령' 탄생의 걸림돌로 꼽힌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가부장적 문화와 남녀 차별은 워낙 심각해 체험해보지 않고는 알기 힘들다"며 "김정은이 딸을 대동하는 건 주목 효과를 높이려는 의도 이상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주애는 막후에서 '제왕학' 수업을 받고 있을 오빠가 등장하기 전에 일종의 '카메오' 역할을 하고 있는 것"(곽길섭 국민대 겸임교수)이라는 관측도 이런 시각과 맥을 같이한다.
김주애의 몸가짐, 김주애에 대한 예우가 후계자의 그것에 못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김보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김주애가 열병식에서 내내 자유롭게 행동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통상 후계자에게 요구하는 절제된 자세나 태도들을 발견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안경수 통일의료연구센터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자제분'이란 표현은 가족을 일컫는 말이라 후계자와 등치시키긴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김정은 자녀 중 특정한 한 명을 우상화하는 작업이 시작돼야 진짜 후계자가 드러날 것"이라며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이 설령 다른 자녀를 후계자로 염두에 뒀다고 해도, 어린 딸을 대중에 공개한 건 매우 이례적 결정이다. 경호 부담, 세인의 관심과 주시, 악성 루머 등 아무리 폐쇄된 사회라도 통제하기 쉽지 않은 상황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정일은 39세였던 1980년 차기 후계자로 내정되고도 1997년 노동당 총서기 취임 때까지 막후에 머물렀고, 김정은은 생모 고용희가 재일동포 출신이라는 신분상 핸디캡까지 겹쳐 2007년 부친 김정일의 대외 활동에 따라나서기 전까지 북한 내부에서도 존재를 모를 만큼 격리된 삶을 살았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주애를 내세운 건 김여정 내지 김정은 본인 정도의 최고지도자급에서 결정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정권이 '김주애 카드'를 뽑아 든 이유는 뭘까. 대외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북한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려는 것이고, 이런 계산은 상당히 먹혀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지난해 ICBM 8차례 발사를 포함해 역대 가장 많은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지만 미국은 무시했고 국제사회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김정은이 미사일 개발 현장에 김주애를 데리고 나오면서 세계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욱 교수는 물망초의 꽃말이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점에 빗대 "김정은의 딸 동반 행보는 군사적 위협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려 한다는 점에서 '물망초 전략'이라 부를 만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북한이 핵실험과 ICBM 발사로 한반도 긴장을 극대화한 뒤 이를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의 국면 전환 동력으로 삼았던 2017~18년과 달리, 지금 북한은 국면을 바꿀 만한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주애 카드'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북한이 핵 군축 협상 등 미국과 담판을 벌일 명분을 강화하려 '7차 핵실험 강행 뒤 핵 보유국 선언'과 같은 벼랑 끝 전술을 펼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내적으론 체제 결속을 위한 이미지 정치에 김주애가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홍민 실장은 "부녀가 나란히 있는 장면에서 김주애는 혈육으로서의 자녀, 미래 세대 청년의 아이콘으로 설정된다"며 "핵무기 고도화 현장에 김주애를 동원한 것은 핵을 '가족의 안전' '미래 세대의 안전'과 결부시키려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딸을 내세워 주민들이 핵무기를 안전의 필수 요소로 받아들이도록 선전전을 펼치는 것은 코로나 유행과 식량난에 따른 내부적 어려움과 무관치 않다. 홍 실장은 "어려운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주민들에게 핵무기 개발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대미 장기전 체제에 인내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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