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45주년' 이광조 "노래 잘 안 되면 언제라도 미련 없이 떠나야죠"

입력
2023.02.14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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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이광조는 "마음속에 숨겨뒀던 감정을 두 손으로 인위적으로 쥐어짜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자연스럽게 쥐어짜는 노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원 인턴기자

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이광조는 "마음속에 숨겨뒀던 감정을 두 손으로 인위적으로 쥐어짜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자연스럽게 쥐어짜는 노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원 인턴기자

“오래전 동양방송(TBC·1980년 폐국)이 있던 때 방송국에 가니 ‘주간 불가’라고 써놓았더라고. 너무 야해서 낮에는 방송할 수 없다는 거예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웃음)”

가수 이광조(71)의 창법은 데뷔 4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독특하게 들린다. 고전 멜로드라마의 절절함과 뮤지컬의 화려함이 공존하는 중성적인 창법은 예나 지금이나 가요계에 흔치 않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이광조는 “미술 했을 때 표현하던 느낌을 노래에 반영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음악을 음악으로만 부르진 않아요. 호흡이든 표현이든 거기에 강약이 있는데 남이 따라 하지 못할 정도의 강약을 표현하려 했죠. 다른 가수와 창법의 차이가 있다면 그런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홍익대 미대에 재학 중이던 1976년 이정선이 작곡한 ‘나들이’로 가요계에 등장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세월 가면’ ‘오늘 같은 밤’ 등의 히트곡을 남긴 이광조의 변함없는 창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내달 12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리는 데뷔 45주년 기념 콘서트 ‘나들이’다. 실제 45주년을 맞았던 2년 전엔 팬데믹 상황으로 공연을 할 수 없어 뒤늦게 준비한 자리다.

지난해 40년 지기인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낸 앨범 ‘올드 앤드 뉴(Old & New)’가 이번 공연의 한 축이 됐다. 자신의 대표곡들을 오로지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함께 다시 부른 앨범이다. 같은 콘셉트의 두 번째 앨범을 최근 완성한 이광조는 이번 공연에서 여섯 곡 정도를 함춘호의 기타에 맞춰 노래할 예정이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을 함춘호씨와 한 적이 있어요. 힘이 넘치던 예전과 달리 소리를 죽여가면서 노래했죠. 그게 좋다는 분들이 꽤 있어서 다른 곡들까지 다시 불러 앨범으로 내게 됐습니다.”

가수 이광조가 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자신의 대표곡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담긴 1985년 앨범 커버에 담긴 사진을 재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가수 이광조가 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자신의 대표곡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담긴 1985년 앨범 커버에 담긴 사진을 재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최근 들어 기획사에 소속돼 매니지먼트를 맡기고 있지만 이광조는 데뷔 이래 수십 년간 매니저 없이 활동한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신인 시절부터 그랬다. 데뷔 앨범을 녹음하고도 한동안 발매가 안 되자 음반사에 계약금을 돌려주며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TV 프로그램에 나가서도 제대로 노래할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정도였다. 노래하기 싫은 자리는 누가 뭐래도 가지 않았다. 2000년 “음악을 하기 싫어서” 무작정 미국으로 떠나 10년 넘게 보헤미안으로 살기도 했다.

“내가 누구누구라며 으스대는 것도 너무 싫고, 사람들이 날 알아봐 주지 않는 게 서운하지도 않았어요. 일도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아예 안 했죠. 예전엔 다른 가수들이 하루에 방송국 세 곳에 연이어 출연하기도 했는데 그때도 전 딱 한 프로그램만 나갔어요. 그래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크게 히트할 때도 별로 못 벌었어요.”

유유자적하게 미국 생활을 즐기던 그를 다시 부른 건 노모의 건강 악화였다. 매일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어머니 댁을 방문했다. 지난해 모친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뒤엔 무의탁 독거노인을 위한 소극장 공연을 열었다. 새벽 버스 창밖으로 스치던 노인들의 궁핍한 삶을 떠올리며 연 자선행사 성격의 콘서트였다.

소극장 위주로 공연을 열었던 이광조가 이번 45주년 기념 공연에선 규모를 키워 1,700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무대에 선다. 발라드에서 팝, 재즈, 디스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 이번 공연은 이광조가 그간 자신과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을 초대하고자 마련한 자리이기도 하다. 그는 “나를 기억해 주는 분이라면 어떤 분이라도 모시고 싶다”면서 “특히 1980년대 서울 예술의전당 야외 콘서트에서 ‘즐거운 인생’을 부를 때 객석에서 춤을 추던 커플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가수 이광조의 45주년 기념 콘서트 '나들이' 포스터. 아트버스터 제공

가수 이광조의 45주년 기념 콘서트 '나들이' 포스터. 아트버스터 제공

공연을 기획한 아트버스터는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공연’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선언이라기보다 각오에 가까운 표현이다. 함춘호와 함께 만드는 두 번째 앨범 이후엔 이정선과 앨범을 만들 계획도 있어 올라서야 할 무대가 아직 많기 때문이다. “아직은 건강해요. 그래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려들어야죠. 그래야 좋은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요. 노래를 잘할 수 없게 되면 언제라도 미련 없이 그만둘 겁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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