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일본 노천 온천서 1만 명 불법촬영” 의사·공무원도 한패

입력
2023.02.05 13:00
수정
2023.02.05 13:3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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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촬의 카리스마' 검거 후 16명 체포돼
일본 불법촬영 처벌 가벼워 재범 많아

일본의 한 노천 온천. 게티이미지뱅크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일본의 한 노천 온천. 게티이미지뱅크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오랫동안 일본의 온천 노천탕을 멀리서 망원 카메라로 상습 촬영한 일당이 검거됐다. ‘도촬의 카리스마’라 불리는 리더 사이토 카린(50)은 30년 전부터 100곳 이상, 적어도 1만 명을 불법 촬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 함께 범행을 저지르다 적발된 사람들은 11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거주하는 총 16명으로, 의사와 지자체 공무원, 상사 임원, 첩보기관인 공안조사청 직원까지 포함돼 있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시즈오카현경 생활보안과는 지난 1일 조직적인 노천탕 도촬 그룹이 저질러 온 범행의 전모가 밝혀졌다며 수사 상황을 발표했다. 이 그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게 됐으며, 모르는 사람을 몰래 찍는 것으로도 모자라 계획적으로 여성을 유인해 촬영하기도 했다. 사이토는 촬영을, 다른 이들은 여성 유인이나 현장 조력, 영상 편집 등을 각각 맡았다.

이들은 몇 가지 은어를 사용했는데, 남의 의뢰를 받아 특정 여성을 온천 여행 상품 등으로 유인한 뒤 촬영하는 것을 ‘프로젝트’라고 칭했다. 수면제로 여성을 재우고 성추행한 범죄는 ‘잠자는 공주’라고 불렀다. 이들은 촬영한 동영상에 자막까지 달아 편집한 뒤 자체 상영회를 열기까지 했다.

'도촬의 카리스마'라고 불리며 30년 동안 1만 명을 불법 촬영했다고 진술한 사이토 카린(50). 본인 SNS 캡처

'도촬의 카리스마'라고 불리며 30년 동안 1만 명을 불법 촬영했다고 진술한 사이토 카린(50). 본인 SNS 캡처


영상 편집 후 자체 상영회도... 200m 떨어진 산에서 망원렌즈 촬영

이들의 비열한 범죄가 드러난 것은 사이토가 2021년 12월 효고현 산속에서 노천탕 불법 촬영을 하던 중 동료가 우연히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린 것이 계기가 됐다. 차량 안에 대형 톱을 소지한 것이 발견돼 총도법 위반으로 체포됐는데, 조사 과정에서 “도촬에 방해되는 나무를 베기 위해서”라고 실토한 것이다. 노천탕에서 200m나 떨어진 산속에서 망원렌즈를 이용해 촬영하려면 나무도 베어야 했다.

체포된 사이토는 자신이 30년 동안 오키나와현을 제외한 46개 광역지자체에서 수많은 불법 촬영을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1년여에 걸쳐 80여 곳을 압수수색, 하드디스크 등 총 1,200점이 넘는 자료를 분석해 그룹 멤버와 의뢰자 등을 한 명씩 찾아냈다. 이를 통해 도쿄도 거주 의사 등을 아동 성매매·포르노 금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최근 시즈오카지검에 송치했다.


일본 불법 촬영 처벌 가볍고 재범 많아

그러나 일본은 성인에 대한 불법 촬영을 형법이 아닌 지자체 조례로 규제하고 있어 처벌이 가볍고 재범도 많다. 사이토 역시 2013년 유명한 도촬 사진 판매 사이트에 노천탕에서 미성년을 찍은 사진을 올렸다가 아동 성매매·포르노 금지법 위반으로 체포된 적이 있으나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법무성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불법 촬영을 처벌하는 ‘촬영죄’를 신설한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충격적인 범죄가 드러나자 노천탕을 운영하는 료칸 등에서는 노천탕 외벽에 강한 조명을 설치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조명은 노천탕 밖을 향해 강한 빛을 비추므로 사진을 촬영할 수 없다고 한다. 시즈오카현 미나미이즈 마을에서 료칸을 운영하는 사다이 야스오(74) 씨는 요미우리신문에 “먼 산에서 몰래 촬영한다고는 생각도 못 했다”면서 “조명 설치로 대책을 세웠으니 안심하고 노천탕을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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