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쇠오리와 분리만이 해법? 마라도 고양이 놓고 깊어가는 고민

입력
2023.02.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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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마라도 내 고양이 문제 해결 위해
전문가 회의 열고 2월 중 협의체 구성키로
전문가들 "고양이 분리 등 일괄적 접근 아닌
지역주민과 연계에 다양한 방안 모색해야"


마라도 내 고양이(사진)가 천연기념물 뿔쇠오리에 피해를 준다는 민원이 제기되면서 문화재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체를 2월 중 출범시킨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마라도 내 고양이(사진)가 천연기념물 뿔쇠오리에 피해를 준다는 민원이 제기되면서 문화재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체를 2월 중 출범시킨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천연기념물 뿔쇠오리 보호를 위해 우리나라 최남단섬 마라도의 고양이를 대대적으로 포획하는 방안을 검토(본보 1월 21일자)했던 문화재청이 고양이 문제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동물 전문가와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출범시킨다. 충분한 준비 없이 고양이를 획일적으로 포획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협의체는 뿔쇠오리 보호 필요성은 공감했지만 고양이 문제 해결방안을 놓고 문화재청·지자체와 동물단체·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엇갈려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문화재청은 31일 제주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마라도 천연보호구역 생물 피해 저감을 위한 대처방안 마련 전문가 회의'를 열고 다음 달 중순 관련 협의체를 출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문화재청, 제주세계유산본부, 서귀포시, 동물보호단체, 한국조류보호협회, 국립생태원, 서울대, 제주대 등 학계 인사, 마라도 케어테이커 등이 참석했다.

문화재청은 또 고립된 섬의 생물 피해 저감을 위한 연구용역도 발주했다. 이는 고양이의 대대적인 포획을 검토하면서 정작 고양이로 인한 뿔쇠오리 피해 현황, 고양이 개체수 등 기초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본지 지적에 따른 것이다.

고양이 다 빼야 vs 일괄적 해결 안 돼

문화재청은 31일 제주 제주시 조천읍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마라도 천연보호구역 내외 생물 피해 저감을 위한 대처방안 마련 전문가 회의’를 열었다. 제주=고은경 기자

문화재청은 31일 제주 제주시 조천읍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마라도 천연보호구역 내외 생물 피해 저감을 위한 대처방안 마련 전문가 회의’를 열었다. 제주=고은경 기자

이날 회의에서 문화재청과 지자체는 마라도가 보존가치가 높은 천연보호구역임을 강조하며 뿔쇠오리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고양이의 분리조치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한성용 문화재청 천연기념물분과 문화재위원은 "마라도 내 조류, 해양성 포유류를 보호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세워야 한다"며 "고양이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원칙을 훼손하는 수준의 공존이 논의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임홍철 제주세계유산본부 세계유산문화재부장도 "뿔쇠오리의 보전가치가 큰 만큼 고양이를 분리조치해야 한다"며 "다만 고양이에게 입양기회를 주고, 나머지는 육지에 방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새끼 뿔쇠오리. 국립공원공단 제공

새끼 뿔쇠오리. 국립공원공단 제공

반면 학계와 동물단체 관계자들은 '뿔쇠오리 vs 고양이' 대결 구도를 만드는 것에 반대했다. 정예찬 서울대 수의대 수의인문사회학교실 연구원반려 고양이, 유기 고양이(stray cat), 야생 고양이(feral cat) 등으로 세분화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한 뉴질랜드의 국가고양이 관리전략을 소개했다. 정 연구원은 "뿔쇠오리와 고양이의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고양이 간 관계 역시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란영 제주비건 대표는 "모든 고양이를 일률적으로 입양 보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고양이 반출, 입양을 전제로 공존을 이야기하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고양이가 주는 피해 명확 vs 정확한 조사 필요

천연보호구역인 마라도 전경. 제주도 제공

천연보호구역인 마라도 전경. 제주도 제공

고양이가 뿔쇠오리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최창용 서울대 농림생물자원학부 교수는 "2012년 조사 당시 고양이가 20마리일 때 225쌍의 뿔쇠오리 가운데 25마리가 죽은 걸 확인했다"며 "뿔쇠오리가 매년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뿔쇠오리는 절벽에 알을 낳는데, 이는 고양이보다 쥐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며 "쥐와 고양이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창완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지회장은 "2004년부터 마라도 내 조류실태를 조사해 왔는데 고양이 공격으로 추정되는 뿔쇠오리 사체를 발견했다"며 "고양이가 새를 공격하는 건 맞다"고 말했다.

반면 정예찬 연구원은 "정확한 고양이 개체수, 고양이로 인한 철새 피해 데이터나 원인 분석이 없는 상태에서 정책을 추진해선 안 된다"며 "마라도 생태계 보전 방안이 앞으로 선례가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연구원은 고양이에 대한 영양공급이 늘어나면 사냥행동이 36% 감소한다는 해외 논문 연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가 마라도 내 고양이 중성화수술(TNR)을 준비하는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지난해 5월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가 마라도 내 고양이 중성화수술(TNR)을 준비하는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도 "급식소를 드나들며 사람의 돌봄을 받는 동네 고양이들은 사냥본능이 있지만 야생 고양이와는 특성이 다르다"며 "동네 고양이들이 조류에 실제 어느 정도 피해를 주는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5년간 마라도에서 고양이를 돌봐 온 케어테이커 김정희씨는 "고양이들의 영양 상태는 좋다"며 "현재 급식 고양이들이 얼마나 새에게 피해를 주는지에 대한 조사가 먼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원호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학예연구관은 "기초 조사가 필요하다는 한국일보 보도에 따라 긴급예산을 편성해 마라도 내 뿔쇠오리 피해 저감을 위한 연구용역을 시작했다"며 "마라도에 포획한 고양이를 위한 임시보호소를 설치하는 등 협의체의 의견을 적용해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제주=고은경 동물복지전문기자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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