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토끼를 육지거북 사육장에? 동물학대 논란에 수족관은 ‘묵묵부답’

입력
2023.01.28 09:00

계묘년 맞이 ‘토끼와 거북이’ 동시 전시는 적절했을까?

2023년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코엑스 아쿠아리움이 기획한 '토끼와 거북이' 전시가 일부 동물단체로부터 동물학대라는 비판을 받았다. 코엑스 아쿠아리움 제공

2023년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코엑스 아쿠아리움이 기획한 '토끼와 거북이' 전시가 일부 동물단체로부터 동물학대라는 비판을 받았다. 코엑스 아쿠아리움 제공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거북이 사육장에 토끼를 전시한 서울의 한 수족관이 논란에 휩싸인 지 사흘 만에 전시를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동물보호단체는 전시를 중단한 뒤 반입한 토끼들은 어떻게 되는지 알 길이 없다며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코엑스 아쿠아리움은 육지거북 사육장에 검은 토끼 다섯 마리를 전시하는 ‘토끼와 거북이’ 전시를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계묘년을 맞아 검은 토끼들이 놀러왔다”며 전시를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한 동물보호단체 ‘토끼보호연대’(토보연)는 17일 해당 전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토보연은 ‘토끼를 펫숍에서 데려왔다’는 코엑스 아쿠아리움 관계자의 언급을 공개하며 “토끼를 펫숍에서 데려오는 전시 의도가 무엇이냐”고 강하게 물었습니다. 이들은 이어서 “코엑스 아쿠아리움의 토끼들은 가장 귀여운 시기 전시에 이용되다 펫숍에 돌아간 뒤에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농장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후 고통받으며 출산에 이용되거나 아니면 육용으로 도축될 수도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코엑스 아쿠아리움은 SNS 입장문을 통해 “2015년부터 꾸준히 토끼 사육을 실시해왔다”며 “먹이, 바닥, 공간, 환기, 온도 등을 세심하게 고려해 사육하고 있다”며 토끼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지난 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진행된 '토끼와 거북이' 전시. 전시된 검은 토끼가 물을 마시려 하고 있다. 전시장 내부 온도는 28도였다. 토끼보호연대 인스타그램

지난 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진행된 '토끼와 거북이' 전시. 전시된 검은 토끼가 물을 마시려 하고 있다. 전시장 내부 온도는 28도였다. 토끼보호연대 인스타그램

그러나 토보연이 18일 전시장을 직접 찾아 살펴본 토끼의 전시 환경은 달랐습니다. 토끼가 전시된 장소는 육지거북 사육장으로 내부 온도는 28도에서 30도 사이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토끼의 사육 환경으로는 부적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토보연은 “국제 동물보호단체 ‘하우스 래빗 소사이어티’는 더운 여름에도 25도를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28도를 웃도는 환경은 토끼에게 적합한 사육환경이라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토보연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육 중이던 토끼들이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은 벽면이나 그늘 등에 몸을 숨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SNS를 중심으로 전시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코엑스 아쿠아리움은 29일까지로 예정돼 있던 전시를 21일 돌연 중단했습니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토보연 관계자는 토끼의 행방에 대해 물었지만,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순 없었습니다. 토보연 최승희 활동가는 “현장에 다녀온 이후 코엑스 관계자들과 통화하며 지속적으로 토끼의 행방을 묻고, 전시를 중단한 경위를 물었지만 어떤 답도 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최 활동가는 “수족관 관계자로부터 ‘직원들 중 입양 희망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구두로 들을 수 있었다’면서 “내부적으로 그냥 나눠주고 끝내겠다는 발상이 우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전시된 토끼와 거북이의 모습. 토끼들은 더운 온도 탓인지 상대적으로 열기가 덜한 벽면에 붙어 있었다. 토끼보호연대 인스타그램

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전시된 토끼와 거북이의 모습. 토끼들은 더운 온도 탓인지 상대적으로 열기가 덜한 벽면에 붙어 있었다. 토끼보호연대 인스타그램

동그람이는 전시를 중단하게 된 배경과 전시 당시 토끼의 사육장 환경, 향후 토끼들의 향후 거취를 묻기 위해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 관계자는 “이메일을 통해 문의해달라”고 요청해와 질문지를 작성해 메일로 전달했습니다. 수족관 관계자는 동그람이에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국내외 관람객에게 계묘년을 소개하기 위한 취지로 기획되었다. 전시는 종료된 상태이며, 토끼들은 토끼만의 좋은 환경으로 분리해 잘 지내고 있다”는 질문 취지에 맞지 않는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재차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수족관의 전시 행태에 대해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법적으로는 수족관의 행태를 문제 삼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 6조는 보유한 생물에 대해 적절한 서식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를 어겼을 경우 벌칙 조항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 대표는 “수족관들은 ‘종 보전’과 ‘해양생물 보호 연구’를 내세워 공적인 지원을 요구하면서, 이런 이벤트성 동물 전시를 하는 게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서식 환경에 맞지 않는 전시는 법적인 문제에 앞서 수족관의 공적인 역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코엑스 아쿠아리움은 서울시가 2019년 지정한 민간수족관 보전기관이자 해양동물 구조 및 치료기관이기도 합니다.

토보연 최 활동가는 “공문 형식으로 재차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토끼들의 거취를 묻고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할 예정”이라며 “손님을 끌기 위해 이벤트로 동물을 활용하는 게 수족관으로서 적절한 행동인지 지속적으로 물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물음에 수족관이 어떻게 응답할지 주목됩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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