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케 대신 고양이를 던지는 결혼식장이 있다?

입력
2023.01.18 09:00

반려견 동반 입장, 유기묘 홍보하는 미국의 이색 결혼식

지난해 12월30일, 미국 플로리다 주 탬파 시. 이곳에서는 아주 특별한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신부 손에는 익숙한 부케가 아닌 검은 고양이 인형이 들려 있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날 무렵, 신랑과 신부는 고양이 인형을 함께 들더니 하객들을 향해 던졌습니다. 부케를 던지듯 날아간 인형은 신부 들러리의 품에 쏙 들어갔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의 결혼식장에서 로스 씨 부부가 하객들을 향해 고양이 인형을 부케 대신 던지고 있다. 페어리테일 펫 케어 홈페이지

부케가 고양이 인형으로 바뀐 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신부 들러리 크리스티나 소토 씨는 부케 대신 고양이 인형을 받은 뒤, 탬파 지역 휴메인 소사이어티(Humane Society)에서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서약했습니다. 신부 캐시 로스(27) 씨는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기존 결혼식은 낭비가 많다고 느꼈다”며 “결혼식을 통해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의미를 남기고 싶었다”고 전했습니다. 신혼 부부의 마음이 하객들에게도 전해진 걸까요?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중 몇 명은 이날 결혼식장에서 유기묘를 입양하기 위해 절차를 밟고 싶다는 의사를 휴메인 소사이어티에 밝혔습니다.

로스 씨 부부의 결혼식에는 탬파 지역 휴메인 소사이어티에서 보호하는 유기묘 5마리에 대한 입양 홍보도 이뤄졌다. 페어리테일 펫 케어 홈페이지

이 결혼식을 기획한 업체는 ‘페어리테일 펫 케어’(FairyTail pet care)라는 반려동물 동반 결혼식 진행 업체입니다. 이들은 회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미국 최초 반려동물 전문 웨딩플래너 회사’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로스 씨 부부의 결혼식 장면을 동영상 앱 ‘틱톡’에 소개했는데, 무려 40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신랑 조나단 로스(27) 씨도 “재미있게 전통을 깨 보자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화제가 돼 놀라웠다”고 돌아봤습니다.

당초 로스 씨 부부는 자신들이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페어리테일 펫 케어는 2015년부터 약 1,100마리의 개들과 신랑 신부를 동반 입장시키는 결혼식을 성사시켰으니까요. 이들은 창업하기 전에는 탬파 지역의 호텔에서 예식장 관리를 했습니다. 당시 ‘반려견과 동반 입장을 하고 싶다’는 예비 부부들의 요청이 많았는데, 이 꿈을 이뤄주고 싶은 마음에 창업을 하게 됐다고 하네요.

페어리테일 펫 케어를 창업한 일리나 카신스키(왼쪽) 씨와 켈리 노바 씨의 모습. 페어리테일 펫 케어 페이스북

그러나 로스 씨 부부의 이야기를 들은 페어리테일 펫 케어의 두 공동대표인 켈리 노바 씨와 일리나 카신스키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고양이는 결혼식장이라는 공간을 낯설게 여길 가능성이 높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기 어려웠으니까요. 노바 씨는 “고양이에게 목줄을 매고 결혼식장에 동반 입장하는 모습은 매우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평범한 결혼식 대신 의미를 남기고 싶어 하는 로스 씨 부부를 위해 내놓은 두 대표의 아이디어는 ‘결혼식장에서 입양 홍보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식장 한 구석에 입양을 기다리는 새끼 고양이들이 지낼 안전한 공간을 마련한 뒤, 입양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이었죠.

고양이는 처음이었지만, 결혼식장에서 유기견 입양 홍보를 한 사례는 많았다고 합니다. 노바 씨에 따르면 80마리의 개가 결혼식 입양홍보를 통해 평생 가족을 만났다고 하네요. 결혼식장에서 유기견 홍보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12월 플로리다 주 라르고 시에서 열린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유기견 3마리와 부부의 반려견이 어울려 놀게 한 이벤트였습니다. 이날 결혼식을 찾은 하객들 중 유기견을 입양하겠다는 사람들이 나와 3마리 모두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이날 결혼식의 주인공인 질리언 씨 부부는 “우리의 사랑을 나누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었다”며 “우리의 결혼식으로 세 마리의 개가 크리스마스를 가정에서 보낼 수 있게 됐다”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이들은 결혼식장에서 반려견과 동반 입장을 주선하는 것은 물론이고, 결혼식장 내에서 유기견 입양을 독려하는 행사도 함께 기획하고 있다. 페어리테일 펫 케어 페이스북

이런 자부심은 로스 씨 부부에게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부부는 “이번 결혼식으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더 많은 고양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일”이라고 전했습니다. 반려인들에게 추억을 남겨주고, 동물과 사람의 인연을 만들어주는 이 기상천외한 결혼식. 국내 도입이 시급해 보입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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