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매달 평균 12만원 인건비 행방불명···고용부, 파견 중간착취 첫 조사 결과

입력
2022.12.23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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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44>정부 조사서 확인된 파견직 착취
한국노동법학회 의뢰, 850개 업체조사
시급·기본급·국민연금비·식비 등 속여
중간착취 방지하는 법개정 해 넘어가

편집자주

간접고용 노동자는 346만 명(2019년). 계속 늘어나고 있죠. 원청이 정한 직접노무비를 용역업체나 파견업체가 노동자에게 다 주지 않고 착복해도 제재할 수 없어서,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습니다. 국회에 발의된 '중간착취 방지 법안들'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단 한번도 논의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는 상황.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중간착취 현실을 꾸준히 고발합니다.


파견 업체들이 몰려 있는 경기 안산시 안산역 일대 사무실 앞에서 구직자들이 파견직 노동자 모집공고를 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파견 업체들이 몰려 있는 경기 안산시 안산역 일대 사무실 앞에서 구직자들이 파견직 노동자 모집공고를 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홍길동씨는 대한민국에서 파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근로자를 파견하는 홍씨는 사용 사업주(근로자를 파견받아 사용하는 업주)와 맺은 계약(근로자파견계약서)에 따라 1인당 인건비로 평균 227만 원을 받았다. 그러나 홍씨는 파견 근로자에게 임금으로 215만 원(근로계약서 기준)만 지급한다.

근로자에게 고스란히 가야 하는 인건비에서만 매달 12만 원가량이 사라진다. 파견업체는 원청에서 관리운영비를 따로 받으면서도 근로자 인건비에서 또 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한국노동법학회를 통해 실시한 '파견근로계약에 관한 실태조사'를 통해 밝혀진 국내 '파견 중간착취'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해당 조사는 파견·용역 등을 비롯한 간접고용 노동자의 인건비 중간착취 문제에 대해 2021년 한국일보가 '중간착취의 지옥도' 기획 시리즈를 보도한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 파견 근로자의 임금 조건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정부 차원의 첫 관련 조사였다. 다만 파견보다 근로자가 훨씬 많고 중간착취가 심한 용역 형태에 대한 조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모든 업종에서 임금 떼기 있었다

전국 허가 파견업체(1,430개) 중 자료 요청에 협조한 파견사업체 850개를 대상으로 이뤄진 조사 결과, 모든 분석 대상 업무(근로자파견대상 32개 업무)에서 원청이 지급하는 인건비(근로자 파견계약상의 인건비)가 파견 근로자가 실제로 받는 인건비(근로계약서상 임금)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파견업체와 사용업체가 맺은 계약서에 정해진 임금보다 실제 파견 근로자가 가져간 임금이 적었다는 의미다.

적게는 1.9%에서 많게는 7.6%까지, 평균 5% 안팎의 차이가 났다. 인건비는 4대보험 사업주 부담분 등 법정부담금이나 파견사업체의 몫인 관리운영비를 제외한 기본급·시간외수당·연차수당·복리후생비 등이다.


고용노동부가 한국노동법학회를 통해 전국 파견업체의 개별 계약서를 분석한 결과, 파견비 산출내역과 실제 근로계약 사이의 인건비 차이가 있었다. 중간착취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고용노동부·한국노동법학회 제공

고용노동부가 한국노동법학회를 통해 전국 파견업체의 개별 계약서를 분석한 결과, 파견비 산출내역과 실제 근로계약 사이의 인건비 차이가 있었다. 중간착취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고용노동부·한국노동법학회 제공

구체적인 중간착취 방법은 다양했다. 근로자 파견계약서에는 시급을 9,270원으로 설정해놓고 노동자와 맺는 근로계약서에는 8,720원이라고 고지하거나, 189만 원인 기본급을 근로계약서에는 184만 원이라고 쓴 업체도 있었다.

파견비 산출내역서에는 국민연금비 15만 원을 책정해놓고 파견 근로자에게는 국민연금 가입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는 경우, 식비를 20만 원으로 책정해놓고 실제로는 10만 원만 주는 파견업체도 있었다.

'파견 조건 명시' 준수 1%뿐, 법 개정 시급

중간착취 방지를 위해 국회에 발의된 법안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간착취 방지를 위해 국회에 발의된 법안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연구진은 이런 중간착취를 막기 위해 “파견근로자가 근로자파견의 대가와 그 세부 내역을 파악할 수 있도록 취업조건고지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있다”라고 했다. 현행 파견법의 중간착취에 대한 ‘예방 규정’은 세 가지다. ①근로자 파견계약을 서면으로 체결, ②여기에 근로자 파견의 대가(노동자의 급여·수당 등의 인건비 및 파견사업주의 적정한 이윤 등)를 명시하고 ③파견사업주는 파견근로자가 요구하는 경우 근로자 파견의 대가를 서면으로 알려주어야 한다. 거부하면 과태료를 문다.

현실에서 취업조건고지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조사에 따르면 전체 파견 근로계약 10건 중 무려 7건(68%)이 이런 취업조건고지를 하지 않았다. 특히 취업조건고지를 하는 경우에도, 파견대가의 총액 및 세부내역을 모두 고지하는 계약은 단 1.4%뿐이었다. 파견대가 총액을 알려주는 경우도 12.8%에 그쳤다. 정부의 단속 의지도 시들하다. 고용부에 따르면, 2012~2020년 근로자 파견 대가 공개 조항을 지키지 않아 처벌을 받은 사례는 단 2건(2017·2019년)에 그쳤다.

고용부는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한 정책연구 활용결과 보고서에서 "파견법상 근로자파견 대가는 파견법 20조에만 규율되어 있을 뿐 명확한 상세 규율 내용이 없어 법 개정안 발의시 연계 타당성이 충분함"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근로자파견 사업의 투명성 확보 및 근로자 임금조건 보호를 위해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 시 반영할 수 있도록 참고자료로 활용"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상당하다. 국회에는 노동자와 근로계약서에 원청이 정한 임금을 명시하고, 파견 수수료(파견 근로자 임금 대비 파견업체 영업이익 등이 차지하는 비율)의 상한선을 정하도록 하는 내용 등의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여럿 발의되어 있다. 고용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에서는 국회에 발의된 중간착취 방지법에 대한 한국일보의 질의에 "법안 자체가 국회에서 논의되는 상황이 아니라 검토 의견 자체가 없다"라면서 "법안 논의가 시작되면 종합적으로 상황을 고려해서 검토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달 7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 중간착취 관련 법안은 끝내 상정되지 않았다. 중간착취 방지법 입법은 또다시 해를 넘기게 됐다.

'중간착취의 지옥도' 바로가기: 수많은 중간착취 사례와 법 개정 필요성을 보도한 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이 주소 www.hankookilbo.com/Collect/2244 로 검색해 주세요.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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