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만 울리면 가슴 철렁~ 통화 피하는 MZ세대 '콜포비아'

입력
2022.12.02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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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10명 중 3명 "내가 콜포비아"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저항"
약해지는 공감, 관계 위기 우려도

지난달 방송한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차서원(왼쪽)과 그룹 샤이니 멤버 키가 전화 통화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MBC 방송 캡처

지난달 방송한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차서원(왼쪽)과 그룹 샤이니 멤버 키가 전화 통화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MBC 방송 캡처

그룹 샤이니 멤버 키(31)는 갑자기 걸려 온 전화는 대부분 안 받는다. 그는 "문자는 그 사람이 얘기하면 내가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전화는 내가 즉석에서 뱉은 말을 책임져야 하잖나"라며 "전화가 오면 그렇게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 전화벨만 울리면 깜짝 놀라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것 같은 공포를 일컬어 '콜포비아'(Call Phobia)라고 한다.

통화가 두렵기는 키와 동갑내기 친구인 배우 차서원(31)도 마찬가지다. 그는 집에서 휴대폰을 방해금지모드로 해둔다. 휴식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다. 휴대폰을 방해금지모드로 설정하면 전화벨이 울리거나 알림이 오지 않는다. 두 청년 스타에게 전화는 일종의 공습이다. 방해금지모드 등 통화 거부를 통해 스스로 '전화 공습 방공호'를 짓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이유다.

전화벨은 적지 않은 MZ세대에 공포의 대상이다. 삽화=박구원 기자

전화벨은 적지 않은 MZ세대에 공포의 대상이다. 삽화=박구원 기자


'공습'이 된 전화

콜포비아는 극성팬들의 사생활 침해로 속앓이하는 일부 인기 연예인들만의 일이 아니다. 구인구직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9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2,7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9.9%가 '콜포비아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열 명 중 세 명꼴로 통화 공포를 겪는 셈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 따르면 X세대(1970~1980년대 출생)는 대화의 수단으로 과반(58%)이 통화를 주로 이용했지만, MZ세대는 SNS를 가장 많이 선호(평균 65.5%)했다. 어려서부터 SNS와 카카오톡 등 문자로 소통하는 데 익숙한 젊은 세대가 주로 콜포비아를 겪는다. 콜포비아는 수평적 문화를 중시하는 MZ세대가 기성세대의 수직적 조직 문화와 충돌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예고 없이 불쑥 울리는 전화벨과 그렇게 이뤄지는 상명하복의 통화 지시는 기성세대에겐 익숙하지만 MZ세대에겐 불편한 소통법이다.

지인이라도 통화는 반갑지 않다. 불쑥 걸려오는 전화는 '거부' 1순위다.

지인이라도 통화는 반갑지 않다. 불쑥 걸려오는 전화는 '거부' 1순위다.


"내 공간·시간 침해" 사적 통화도 공포

직장 밖이라고 해서 콜포비아 현상이 없는 게 아니다. 콜포비아를 겪는 1990년대 이후 출생 직장인과 대학생들은 친구 등 지인과의 사적인 통화도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들은 ①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침해당하는 느낌이고 ②상대의 질문에 즉각 답해야 해 난처하며 ③전화에 온전히 집중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통화 자체가 이들에겐 곤혹인 것이다. 직장인 김모(27)씨는 "지인과 만나기로 약속한 뒤 상대의 위치를 찾는 식의 짧은 통화는 괜찮지만, 집에서 쉴 때 길게 통화해야 하는 상황은 내 공간을 침해받는 기분이 들고 계획한 일을 할 수 없어 피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모(23)씨는 "전화를 할 때 중간중간 찾아오는 어색한 정적이 부담스럽다"며 "그만 끊고 싶어도 끊자고 말하기가 어려워서 애초에 전화를 시작하기가 싫다"고 했다.

통화가 두려운 이들에게 전화에 집중하는 것은 '대사(大事)'이자 스트레스다. 대학생 홍모(22)씨는 "용건을 미리 알고 전화를 받으면 그나마 괜찮은데 용건을 모른 채 대뜸 전화를 받으면 답변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힘들다"며 "미리 대비하지 못한 채 바로 답변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MZ세대가 커뮤니케이션을 비용이자 리스크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텍스트나 이모지에 비해 통화는 상대적으로 감정 소비와 집중을 많이 해야 하니 그 피로를 줄이기 위해 문자 소통을 원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통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MZ세대에 전화는 갈등을 부추기는 불쏘시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대학생 신모(20)씨는 "전화 받으면서 휴대폰으로 유튜브 등 다른 것을 봐서 그런지 전화 내용에 집중도 안 된다"며 "내가 집중 안 하는 게 상대한테도 티가 나니까 상대도 불쾌해 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서 ID를 바로 공유하게 해 주는 QR코드. MZ세대의 '디지털 명함'이다.

인스타그램에서 ID를 바로 공유하게 해 주는 QR코드. MZ세대의 '디지털 명함'이다.


"전화보다 문자가 효율적" MZ의 항변

최근 공개된 OTT 웨이브 화제의 시리즈 '약한 영웅 클래스1'에서 고 1인 정찬(윤정훈)은 전학 온 범석(홍경)에 "너 인스타(그램) ID 뭐냐?"라고 묻는다. 기성세대가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잇는다면 Z세대 등 젊은 세대는 인스타그램 ID 공유로 우정을 확인한다. 대학생 신정훈(26)씨는 "1, 2년 전에 입학한 '코로나 학번' 후배들과는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로 연락한다"며 "3, 4년 전만 해도 연락처를 주고받고 SNS로 소통했는데 요즘엔 아예 인스타그램 ID만 교환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동아리와 학생회 활동 등 단체 교류도 카톡 단체방이 만들어지면 그 뒤 친구 추가 방식을 택한다.

기성세대에게 스마트폰은 전화기지만 MZ세대에겐 모바일 도구다. 연락을 위해 전화번호를 반드시 주고받지 않는 젊은 세대에게 통화는 기성세대와 달리 또래 사회에서 합의된 소통 수단이 아닌 셈이다. 젊은 세대에게 통화가 변칙적이고 일방적이며 때론 무례하게 여겨지는 배경이다. 이 같은 환경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전화를 꺼리는 Z세대를 무턱대고 비판하면 '꼰대'로 몰리기 십상이다. "전화보다 문자가 더 정돈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고 기록으로도 남길 수 있어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는 게 전화를 거부하는 MZ세대의 항변이다.


팬데믹 이후 전화 기피 더 심화

이런 인식 변화에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비대면 문자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전화 기피는 더욱 심화하는 추세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팬데믹으로 MZ세대는 기성세대와 전화 대신 문자를 더 자주 주고받게 됐고 그 과정에서 '왜 굳이 전화를 써야 해?'란 생각이 강화됐다"며 "MZ세대에게 지난 3년여는 문자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개인주의 성향에다 코로나를 피하고자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면서 자기중심주의가 강화한 것"을 콜포비아 확산의 원인으로 꼽았다.

MZ세대는 빨리 감기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등 자기 주도 성향이 강하다. 문자 소통을 선호하는 데는 타인에 크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통화는 상대를 더 신경 쓸 수밖에 없고 대화 주제도 통제하기 어려운 탓이다. 이런 부정적 판단으로 MZ세대가 통화를 기피해 왔는데 팬데믹으로 자기통제 욕구가 더 강해지면서 콜포비아도 심해진다는 것이다.


"타인의 소멸" vs "과도한 커뮤니케이션 디톡스"

하지만 전화 기피 현상은 결과적으로 대인 관계를 약화시켜 소통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문자를 통한 정보 전달을 넘어 감정을 나누지 않으면 관계의 밀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ID 교류로 팔로워는 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는 이들이 많아진 이유다. "스마트폰을 통한 소통은 탈신체화된 바라봄(Blick)이 없는 소통이다. 바라봄의 부재는 디지털 시대에 공감의 상실이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다. 디지털화는 타인을 소멸시킨다". '피로사회'(2010)로 유명한 한병철 전 독일 베를린예술대 교수가 '사물의 소멸'(2022)에서 한 주장이다.

이렇게 어긋난 소통의 결합을 위해선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다양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헌식 카이스트 미래세대행복위원회 위원은 "콜포비아는 사회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MZ세대의 저항이면서 과도한 커뮤니케이션의 자발적 디톡스 행위"라면서도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청년 세대의 권리나 사회적 관계의 성장을 위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만큼 교육 현장에서 대면, 전화, SNS 커뮤니케이션의 장단점에 대한 충분한 인식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유종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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