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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의 '호우시절' 옆 삼국지에 진심인 거리

입력
2022.11.05 10:00

<103> 쓰촨 ③두보초당, 무후사, 금리고가

청두에 있는 두보초당 대해(관청)의 시인 동상. ⓒ최종명

청두에 있는 두보초당 대해(관청)의 시인 동상. ⓒ최종명


봄비 내리는 밤에 두보(杜甫)가 붓을 들었다. 춘야희우(春夜喜雨)다.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관직을 잃고 처자와 정처 없이 떠돌다 청두(成都)에 정착했다. 미관말직 하나 얻어 초당을 짓고 살던 시절이다. 절도사 엄무의 추천으로 '공부(工部)'라는 관직을 얻긴 했으나 이름만 걸어둔 허직(虛職)에 가까웠다.

춘야희우(春夜喜雨)

반가운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니 (好雨知時節)
지금은 바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 (當春乃發生)
바람 따라 밤으로 살며시 들어와 (隨風潛入夜)
소리 없이 온 사방을 적시는구나 (潤物細無聲)
밭 사이 오솔길은 온통 캄캄하고 (野徑雲俱黑)
강에 뜬 배만이 등불을 비추는데 (江船火燭明)
새벽녘 붉게 물든 습지 바라보니 (曉看紅濕處)
활짝 핀 꽃 만발한 금관성이어라 (花重錦官城)

‘춘야희우’는 농부의 마음을 헤아리며 지은 시로 761년 작품이다. 첫 구절은 영화 ‘호우시절’로도 유명하다. 출장 온 정우성은 우연히 미국 유학 시절 친구 가오위엔위엔을 만난다. 두보초당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는 여성이다. 첫사랑의 로맨스가 초당의 싱그러운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시절’을 알고 내리는 비는 때맞춰 찾아온 사랑이 됐다. 영화의 여운을 지니고 두보초당으로 간다.

쓰촨성 청두의 두보초당 정문. ⓒ최종명

쓰촨성 청두의 두보초당 정문. ⓒ최종명


미관말직 두공부의 '호우시절', 두보초당

대문을 들어서니 대해(大廨)가 나타난다. 관청이란 뜻이다. 청나라 가경제 시대인 1811년에 지었다. 뜻을 이루지 못한 천재 시인에 대한 예우였다. 천년이 지났어도 존경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사면이 뻥 뚫린 공간이었는데, 동상이 허공을 채웠다. 입를 다물고 어딘가 멀리 응시한다. 야윈 몸으로 두 손 모아 시집을 보듬고 꿇어앉은 모습이다.

두보초당 시인 동상의 손 부분. ⓒ최종명

두보초당 시인 동상의 손 부분. ⓒ최종명

조각가 쳰사오우가 문화혁명이 끝난 후인 1980년에 빚은 작품이다. 두보의 500자 장편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구술했다. ‘벼슬아치 집에는 술과 안주 냄새 진동하고(朱門酒肉臭), 길가에는 얼어 죽은 해골로 넘쳐나네(路有凍死骨)’라는 구절이다. 천년이 훨씬 더 지났어도 그의 시어는 현실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사람들 손길이 만든 공감이 마치 조각가의 솜씨인 양 불그레하다.

두보초당 공부사에 보존된 석각. ⓒ최종명

두보초당 공부사에 보존된 석각. ⓒ최종명


두보초당 공부사의 황정견(왼쪽부터), 두보, 육유의 상반신상. ⓒ최종명

두보초당 공부사의 황정견(왼쪽부터), 두보, 육유의 상반신상. ⓒ최종명

공부에 근무할 때 두공부(杜工部)라 불렸다. 사당인 공부사(工部祠)가 있다. 명나라 만력제 시대인 1602년에 제작된 석비가 있다. 또 하나의 석비가 나란히 있다. 청나라 말기 문무를 겸비한 장준의 작품으로 상반신을 조각했다. 유리로 막았는데 바깥이 밝아 글자가 약간 가린다. 시성(詩聖)으로 대우받았다. 정사에 간언하는 벼슬로 호칭한 두습유(杜拾遺)도 보인다. 관모와 관복 차림으로 여의(如意)를 품에 안고 있다. 북송의 시인이자 서예가인 황정견과 남송의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육유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당송 시대의 걸출한 문인을 한꺼번에 만나니 감개무량하다.

두보초당의 실개천에서 청소부가 부유물을 제거하고 있다. ⓒ최종명

두보초당의 실개천에서 청소부가 부유물을 제거하고 있다. ⓒ최종명

초당은 20만㎡ 규모다. 겨우 4년 머물던 거처가 점점 커져 지금에 이르렀다. 실개천인 완화계(浣花溪)가 실핏줄처럼 사방으로 흐른다. 꽃을 씻는다는 뜻이다. 새벽녘 빗소리와 꽃피는 봄날의 풍광이 엿보인다. 뱃사공 청소부가 무수히 떨어지는 잎사귀를 건지고 있다. 물기를 마시며 자라는 대나무가 높이 솟아있다. 영화 ‘호우시절’에서 대나무가 살랑거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바람 따라 몰래 들어온 비처럼 촉촉하게 젖은 두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간다.

정갈하게 꾸민 두보초당 내부. ⓒ최종명

정갈하게 꾸민 두보초당 내부. ⓒ최종명

초당으로 가는 길은 한산하다. 사립문 앞에서 두 주인공이 처음 인사를 한다. 봄날의 온기로 푸릇푸릇한 풀 내음을 따라 들어간다. 두보는 청두 시절 240여 편의 시를 지었다. 새벽녘 빗줄기에 번진 꽃잎을 노래하며 금관성이라 마무리했다. 청두의 별칭이다.

청두는 예로부터 비단 수공업으로 명성을 떨쳤다. 삼국시대 촉나라의 주요 재원이었고 비단 생산과 관리를 위한 관청인 금관(錦官)을 설치했다. 생명이 발아하는 시절이면 뽕잎도 무성하게 자란다. 비단 도시에서 그저 봄비에 소박하게 감정이입하며 사는 삶이었다.

두보초당의 붉은 담장과 대나무 숲. ⓒ최종명

두보초당의 붉은 담장과 대나무 숲. ⓒ최종명

홍장(紅牆)이 나오고 담장 너머에 죽림이 울창하다. 높이 자란 대나무가 햇볕을 가리니 그늘 길이다. 담장은 붉고 대나무는 푸르니 걸음은 느긋하고 가볍다. 시는 꽤나 혁명가 기질이 엿보이는데 청두에 체류하던 시절의 메시지는 대체로 평온하다. '강촌(江村)'도 그렇다. ‘맑은 강 한 굽이가 마을을 감싸고 흐르네(淸江一曲抱村流)’로 시작한다. 놀랍게도 2014년 한국 수능의 국어 시험에 출제됐다. 한문 과목도 아닐 터인데 갸웃할 일이다.

두보초당의 대나무 숲으로 가는 원동문과 붉은 담장. ⓒ최종명

두보초당의 대나무 숲으로 가는 원동문과 붉은 담장. ⓒ최종명

한글 창제 후인 성종 12년(1481년) 그의 시가 번역된다. 그래서 수능 예문이 언해로 제시된다. 8연 중 5연을 유심히 봤다. '노처화지위기국(老妻畫紙爲棋局)'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와 이를 참고한 글마다 '기(棋)'를 바둑판이라 번역하고 있다. 조선의 번역가는 ‘쟝긔판’이라 했다.

'늙은(늘근) 아내(겨지븐)'가 어떻게 가로세로 열아홉 줄(19X19) 바둑판을 그리겠는가? 한글 수요자인 백성이 선비처럼 바둑이나 두고 있겠는가? 기(棋)는 바둑인 위기(圍棋)도 되고 장기인 상기(象棋)도 된다. 수능을 본 아이들은 알고 있으리라.

아들은 이때 무얼 했을까? ‘어린(져믄)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고기 낚을 낚시를 만든다’고 했다. 초당 생활의 여백이 느껴진다. 걷다 보니 대나무 숲이 보이는 원동문(圓洞門)이 나온다. 곡선이 참으로 부드럽다.

두보초당의 목각. ⓒ최종명

두보초당의 목각. ⓒ최종명

시를 새긴 목각이 진열돼 있다. 꽤 많은 시를 남겼고 성인의 반열이라 추앙할 만큼 모두 역작이다. 청두에 오면 ‘촉상(蜀相)’이라는 작품이 더욱더 가슴 깊숙하게 공감을 낳는 듯하다. 재상 제갈량에 대한 찬양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촉상(蜀相)

승상 사당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건지 (丞相祠堂何處尋)
금관성 밖 측백나무 우거진 곳이더라 (錦官城外柏森森)
섬돌에 자란 푸른 풀은 봄빛을 알리고 (映階碧草自春色)
숲속 꾀꼬리는 고운 소리를 지저귀네 (隔葉黃鸝空好音)
삼고초려는 천하를 위한 계책이었으며 (三顧頻煩天下計)
선주 도와 개국하고 후주 잇게 하였네 (兩朝開濟老臣心)
출사했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出師未捷身先死)
길이 영웅의 옷깃에 눈물 짓게 하노라 (長使英雄淚滿襟)

제갈량 사당 무후사와 유비 사당 한소열묘

청두 무후사 대문. ⓒ최종명

청두 무후사 대문. ⓒ최종명

제갈량 사당은 두보초당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다. 국가1급박물관인 무후사(武侯祠) 대문에 한소열묘(漢昭烈廟) 편액이 걸려있다. 유비 사당인 한소열묘가 앞에 있고 일직선으로 제갈량 사당인 무후사와 삼의묘(三義廟)가 배치돼 있다. 왼쪽 유비 무덤인 혜릉(惠陵)까지 하나의 관광지로 묶여 있다.

그야말로 군주와 신하가 합체된 모습이다. 지금의 골격은 명나라 홍무제 시대인 1391년 형성됐다. 화재와 중건을 여러 차례 거쳤고 1984년에 무후사박물관으로 통합했다. 주변의 문화 거리와 호수, 숲까지 15만㎡ 규모다.

청두 무후사 한소열묘 이문의 '명량천고' 편액. ⓒ최종명

청두 무후사 한소열묘 이문의 '명량천고' 편액. ⓒ최종명


펑제에 위치한 백제묘 명량전의 '한대명량' 편액. ⓒ최종명

펑제에 위치한 백제묘 명량전의 '한대명량' 편액. ⓒ최종명

대문을 들어서니 양쪽으로 정자가 세워져 있다. 당나라와 명나라 비석을 보존하고 있다. 복판 길을 따라가면 이문(二門)이 나온다. 영원히 오랫동안 빛나는 인물이라는 명량천고(眀良千古)가 걸렸다. 청나라 강희제 시대 쓰촨 제독으로 부임한 오영의 필체다.

자세히 보면 해와 달이 있는 명(明)이 아니라 눈(目)과 달이 붙었다. 명나라 국호를 쓰지 않으려 했다고 흔히 말한다. 강희자전에도 나오는 이체자다. 유비가 숨을 거둔 펑제(奉節)의 백제묘 명량전에도 똑같은 글자가 있다. 비슷한 시기의 쓰촨 총독 채육영의 필체다. 당시 밝을 명에는 눈도 달렸던 듯하다.

한소열묘 문신 복도의 방통과 간옹. ⓒ최종명

한소열묘 문신 복도의 방통과 간옹. ⓒ최종명


한소열묘 무장 복도의 요화와 황충. ⓒ최종명

한소열묘 무장 복도의 요화와 황충. ⓒ최종명

이문을 넘어서면 양쪽에 긴 복도가 있다. 오른쪽에 문신, 왼쪽에 무장이 도열해 있다. 삼국지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수장인 방통과 함께 앉은 간옹을 비롯해 문신이 14명, 조운을 필두로 요화와 황충을 비롯해 무장이 14명이다. 모두 28명이 전투라도 벌일 기세로 앉아 있다. 청나라 시대 무대극 복장으로 치장하고 있는데 치적을 기록한 비석이 하나씩 놓였다.

한소열묘의 유비 좌상. ⓒ최종명

한소열묘의 유비 좌상. ⓒ최종명

안으로 더 들어가면 한소열묘 대전이다. 3m 높이의 유비가 앉아있다. 전신을 도금으로 꾸몄으며 9줄 면류관을 쓰고 있다. 양손으로 다소곳하게 제례에 사용하는 옥기인 규장(珪璋)을 들고 있다. 자세히 보니 북두칠성을 새겼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양쪽 시위가 황제의 상징인 전국옥새(傳國玉璽)와 상방보검(尚方寶劍)을 들고 있다. 대낮인데도 깜깜하니 조명을 받은 유비만 돋보인다.

무후사의 과청. ⓒ최종명

무후사의 과청. ⓒ최종명

한소열묘와 제갈량 사당 사이에 과청(過廳)이 있다. 뚫린 건물이라는 뜻이지만 무후사 대문이다. 편액은 문학가인 궈모뤄가 썼다. 유적지에 남긴 필체가 워낙 많아 한눈에 알기 쉽다.

오른쪽 기둥에 적힌 글자가 익숙하다. '촉상'에 나오는 삼고빈번천하계(三顧頻煩天下計)다. 중국 공산당이 결성된 1921년 1차 전국 대표로 유명한 둥비우가 썼다. 왼쪽 기둥에 일번오대고금정(一番晤對古今情)이라는 소회를 이었다. ‘한번 대면해 고금의 회포를 풀리라’라는 소망이다. 부주석까지 오른 당 원로이니 기둥 한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무후사 정원당 앞의 향로를 잡고 있는 병사 석상. ⓒ최종명

무후사 정원당 앞의 향로를 잡고 있는 병사 석상. ⓒ최종명


제갈량 사당인 무후사 정원당. ⓒ최종명

제갈량 사당인 무후사 정원당. ⓒ최종명

제갈량을 봉공하는 전각 앞에 이른다. 향로를 붙잡고 있는 조각상이 보인다. 역사 인물을 보다가 사병의 수더분한 인상을 마주하니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그냥 친구 같은 느낌이다.

5칸 크기인 본전은 정원당(靜遠堂)이다. 제갈량이 아들에게 남긴 계자서(誡子書)가 출처다. 마음이 깨끗해야 뜻을 세울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해야 포부를 이룰 수 있다는 ‘담박명지(澹泊明志) 영정치원(寧靜致遠)’에서 따왔다.

불감 안에 앉은 제갈량은 청나라 강희제 시대인 1672년에 제작됐다. 깃털 우산을 들고 두건을 두르고 도포 입은 유학자 모습이다. 시동 둘이 병서와 보검을 들고 있고 벽에는 아들인 제갈첨과 손자 제갈상이 보좌하고 있다.

무후사의 삼의묘. ⓒ최종명

무후사의 삼의묘. ⓒ최종명


무후사 삼의묘의 관우(왼쪽부터), 유비, 장비. ⓒ최종명

무후사 삼의묘의 관우(왼쪽부터), 유비, 장비. ⓒ최종명

삼의묘가 뒤쪽에 있다. 청나라 강희제 시대 쓰촨 제독 정교린이 처음 세웠다. 무장은 도원결의와 같은 의협심과 영웅을 좋아하는 듯하다. 진흙으로 빚은 유비, 관우, 장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약 3㎞ 떨어진 곳에 위치했는데 1998년 무후사박물관 안으로 옮겨왔다.

신성동진(神聖同臻)은 ‘제왕이 고난을 함께 했다’는 뜻이다. 동치제 시대 중건할 때 한 신발회사가 기증했다. 유명인이 아니라 일개 회사라 하니 뜻밖이다. 관우와 장비가 함께 나란하다. 동고동락했는데 유비는 2.8m이고 둘은 2.6m로 만들었다. 아무래도 황제 프리미엄이 붙은 듯하다. 하기야 함께 죽자는 맹세도 지키지 못했는데 말이다.

유비의 묘인 혜릉 입구와 묘비. ⓒ최종명

유비의 묘인 혜릉 입구와 묘비. ⓒ최종명


무후사 혜릉의 신도(神道). ⓒ최종명

무후사 혜릉의 신도(神道). ⓒ최종명

유비는 서기 223년 5월 펑제에서 사망했다. 진수(陳壽)가 기록한 정사에 따르면 운구 후 청두에 묻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혜릉은 생모와 황후까지 합장한 무덤이다. 전쟁을 수행하느라 여느 황제처럼 능원을 미리 조성하기 어려웠을 터다.

신도(神道)를 따라가니 무덤 앞에 청나라 건륭제 시대 묘비가 보인다. 청나라는 엄청나게 무덤을 크게 지었다. 유비의 체면을 살리고 백성을 위무하고 싶었다. 둘레는 180m이고 높이는 12m다. 온통 나무와 풀로 뒤덮여 있다. 능원이 예상보다 커서 놀랐지만, 다른 황제의 능과 비교하면 왜소하고 초라하다. 장기 집권한 명나라와 청나라의 황릉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삼국지와 두보에 진심인 거리, 금리고가

청두 금리고가의 패방. ⓒ최종명

청두 금리고가의 패방. ⓒ최종명

무후사 동쪽 담장과 붙어 금리고가(錦里古街)가 있다. ‘제갈량을 참배하고 금리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로 필수 코스다. 반듯하게 서 있는 패방이 있다. 넓은 길도 있지만 좁은 골목도 군데군데 통로다. 쓰촨의 전통과 먹거리 문화가 물씬 풍기는 거리다. 어디로 가도 홍등이 달려 있어 주변이 붉다. 약 500m 거리가 인파로 북적거린다. 쓰촨 최고의 ‘명동’이다.

골목마다 홍등이 걸려 있는 금리고가. ⓒ최종명

골목마다 홍등이 걸려 있는 금리고가. ⓒ최종명


금리고가의 도랑과 식당. ⓒ최종명

금리고가의 도랑과 식당. ⓒ최종명

쓰촨의 매운 요리인 훠궈(火鍋)가 사방에 널렸다. 길거리 꼬치 파는 포장마차도 있고 공연이 열리는 식당도 있다. 삼삼오오 짝을 맞춰 걷고 손잡고 안으로 들어가고 또 나온다. 도랑 주변의 식당은 인기가 많다. 봉긋한 다리도 있어 넘나드는 행인이 어깨를 부딪힌다. 금리가 있어 문득 청두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낭만 어린 분위기가 비단처럼 보드라운 느낌이다.

금리고가에 전시된 삼국지 등장 인물 가면. ⓒ최종명

금리고가에 전시된 삼국지 등장 인물 가면. ⓒ최종명


금리고가 식당 앞에서 분장하는 모습. ⓒ최종명

금리고가 식당 앞에서 분장하는 모습. ⓒ최종명

공연 문화가 발달한 도시답게 가면이 걸려 있다. 삼국지 소설의 나라답게 조조, 관우, 장비, 강유, 방통, 하우연, 주창이 보인다. 색깔과 모양으로 캐릭터를 알 수 있어서 볼수록 소설로 빠져든다. 조조 가면은 간웅을 상징하듯 밉상이다. 백성의 마음이지 싶다. 삼국지 주인공으로 변장하고 손님을 유인하는 식당도 많다. 한 식당 앞에 배우가 분장을 하고 있다. 행인이 점점 모여들어 사진 찍기 바쁘다.

두보와 도교 도사를 모델로 내세운 설탕과 쌀강정. ⓒ최종명

두보와 도교 도사를 모델로 내세운 설탕과 쌀강정. ⓒ최종명

두보가 차오탕(炒糖)의 광고 모델로 등장한다. 빨아먹는 사탕이 아니라 볶음설탕이다. 이름까지 가져다 쓴다. 저작권을 포기한 당나라 시인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시의(詩意)라는 카피도 있다. 시적 정취가 담겨 달콤하다는 뜻이다.

옆에 있는 미화탕(米花糖)은 과자 이름이 장인방(丈人坊)이다. 쌀강정으로 땅콩 맛을 섞었다고 홍보한다. 모델은 도교의 도사다. 신화에서 황제(黃帝)가 오악을 다 둘러본 후 쓰촨에 있는 청성산(青城山)을 찾았다. 도교 명산인 오악의 장인으로 책봉했다. 두보도 청성산을 찾아 시 한 수를 남겼다.

쓰촨의 청성산. ⓒ최종명

쓰촨의 청성산. ⓒ최종명


장인산(丈人山)

청성산 여행객이 되어 (自爲青城客)
침을 뱉지는 않으리라 (不唾青城地)
장인산 마음에 품으니 (爲愛丈人山)
단숨에 고요함 이르네 (丹梯近幽意)

청성산의 별명이 장인산(丈人山)이다. 두보의 시가 쌀강정에 담겨 있을 줄이야. 산은 조국에 대한 비유다. 비록 관리로서의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여전히 붉은 충정을 담고 싶었다. 상품 하나에도 시인의 마음을 새기는 금리다. 시를 읊으며 온종일 돌아다녀도 좋으리라.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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