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인공지능은 꿈꾸지 못하는 '사람 리터러시'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P" "E" "R" "H" "M" "B" 그리고 "J"
나의 29개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글자다. P는 폴리의 P, E는 엠버의 E, R은 로이의 R, H는 헬리의 H, M은 마크의 M, B는 버키의 B. 이는 아이가 요즘 즐겨보는 영상 애니메이션 '로보카폴리'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J는 어린이집에서 자신을 부르는 선생님의 애칭에서 온 알파벳이다. 아이는 길을 가다 알파벳을 만나면 무조건 P, E, R, H, M, B, J를 읊는다. 그리고 그림책이나 사진책을 보며 택시, 트럭, 버스, 딸기, 사과, 포도 등 정확한 단어를 구사하는가 하면 삐씁, 챠빠, 캬캬게 등 알 수 없는 단어로 책을 읽어낸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언가를 읽는다. 읽는다는 건 무얼까. 읽기는 사회적 약속에서 시작한다. 주어진 단어를 그 단어로 읽고 의미를 알아야 한다. 비단 글자만이 아니다. 기호나 표식은 물론 표정이나 몸짓도 마찬가지다. 이는 읽는다는 건 하나의 능력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읽는 행위와 과정, 의미 해석과 실천은 선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 늘 특정한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으므로 연습이나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문해력이 중요하단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읽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문해력이란 무언가. 쉽게 말하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간혹 책 읽기로 한정하여 공부 능력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그러나 지금 사회는 사진, 영상, 부호, UI(사용자 인터페이스) 등 글 없이 소통하는 일도 많다. 사회가 정밀화되고 복잡해짐에 따라 맥락을 읽어야 하는 일도 많다. 즉, 리터러시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리터러시란 글자를 쓰고 읽는 능력을 넘어, 문자로 된 기록을 읽고 지식과 정보를 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에서 저자는 리터러시를 "생각과 삶의 방식"이라 말한다.
인간의 리터러시는 아주 구체적인 경험이 함께한다. 이 구체적인 경험은 '삶'에서 일어난다. 삶은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고 감각하고 실천하고 정체성을 만든다. 특히나 연결과 선택의 뉴미디어 사회가 되면서 기술로서, 텍스트로서의 미디어를 넘어 새로운 맥락을 읽어야 한다. 또한, 우린 아침부터 저녁까지 쏟아지는 수많은 읽을거리를 마주한다. 넘쳐나는 정보와 가짜 뉴스, 잘못 해석된 온라인 사이트들. 학습 도구로서 학습 결과를 위한 읽을거리들 말이다. 더군다나 이미 우린 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 DJ, 작가, 기자 등 읽고 쓰고 말하는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 중이다. 인공지능의 리터러시와 인간의 리터러시가 가장 다른 건 앞서 말한 것처럼 경험을 바탕으로 삶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가짜 읽기나 맹목적 읽기가 아니라, 우린 우리의 삶을 위한 진짜 읽기, 좋은 읽기가 이뤄져야 한다.
난 좋은 사회, 좋은 미래를 간절히 꿈꾼 적 없다. 보통의 날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세상을 읽고 싶어 하고, 세상에 나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며 좋은 삶과 좋은 미래를 매일 바라게 되었다. 난 이 책 프롤로그의 "좋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좋은 리터러시를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미래는 좋은 리터러시를 갖춘 사람들이 절대 다수가 될 때,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를 믿는다. 책방을 운영하고 글을 쓰고 읽으며 좋은 리터러시는 세상을 변화시킬 거라 믿게 되었다. 왜냐고? 난 분명히 보았다. 변화한 그를, 변화한 누군가를, 변화하는 무엇들을. 그러니 우린 이제 제대로 리터러시를 경험하여 세상을 읽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제대로 리터러시를 경험하고 세상을 읽어야 한다. 그 첫걸음으로 이 책을 읽어보자.
책방 연희는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작은 서점입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