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면...오늘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입력
2022.10.12 21:00
25면

아라이 료지 지음, '아침에 창을 열면'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다양한 장소의 아침 풍경이 그림으로 표현된 그림책이 있다. 아라이 료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아침에 창을 열면'이라는 책이다. 밝은 빛이 새어 나오는 커튼이 첫 페이지에 그려져 있다. 페이지를 넘기면 그림책 양쪽 가득 풍경이 그려져 있는데, 그림이지만 마치 창밖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침에 떠오르는 찬란한 노란빛들이 거친 붓의 터치로 표현되어 더 밝고 활기차 보인다. 오늘은 마치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장면이다.

그림책에 나오는 다양한 아침의 풍경은 우리가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아침도, 새로운 공간에서 맞이하는 아침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아침이 밝았어요. 창문을 활짝 열어요'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매일 아침을 그리고 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로운 장소의 아침 풍경이 연달아 펼쳐진다. 다양한 곳의 아침을 차례로 보고 있자니 이곳이 어디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이 장면을 보고 있는 그림 속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도시의 분주함이, 흐르는 강물이, 항상 거기에 있는 바다가, 흐린 하늘이 있어서 여기가 좋다고 책에는 쓰여있다. 익숙한 그곳을 '나' 그리고 '우리'가 좋아한다고 얘기해 준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 같다.

책을 보고 나면 지난 시절 나의 아침들이 떠올랐다. 도시에서 살았던 시절과 지금 문경의 아침의 풍경이 어땠는지 생각해 본다.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호기롭게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남편의 고향인 문경으로 내려온 지 3년 차. 돌이켜 생각해 보면 도시에서의 아침은 언제나 분주했다. 한 시간 반 거리의 직장을 다니느라 달리는 듯 뛰는 듯 잰걸음으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 그래도 지상으로 다니는 1호선을 타고 다니는 덕에 창밖으로 풍경을 보며 계절을 느꼈다. 평일은 출근하느라 바쁜 채로 아침을 지나쳐 보내고 주말엔 밀린 잠을 자느라 점심이 다 되어 일어나기 일쑤였다.

문경으로 내려온 후의 아침은 도시보다 여유롭게 시작할 때도 있지만 보통 농부의 아침은 어두울 때 시작한다. 올해 태어나 처음으로 콩을 심었다. 초보 농부는 콩을 심는 것도 약을 치는 것도 어설퍼 콩보다 훌쩍 키가 큰 잡초가 콩밭 가득 무성하게 자라났다. 한창 더운 8월 해가 뜨기 전에 채비를 하고 콩밭에 나가 남편과 둘이 풀을 뽑았다. 어느덧 여명이 밝아오더니 핑크색으로 하늘이 물들었다. 시원한 공기와 함께 밝아오는 하늘을 보고 있으니 옷이 흠뻑 젖을 만큼 땀이 났는데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더 노동의 시간으로 아침을 보낸 후에야 풀들을 거의 정리할 수 있었다. (손으로 풀을 다 뽑아냈지만 콩밭엔 또 새로운 풀들이 많이 자라나 있다.)

도시에서 살 때는 도시에 맞게, 시골에 살 때에는 시골에 맞게 분주하게 또 여유롭게 때에 따라 다르게 아침을 맞이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을 만든 아라이 료지도 책을 소개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봤으면 한다고 했다.

어른이 되고 난 후 시간에 쫓겨 살아가다 보니 아침이라는 건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매일 맞이하는 별것 아닌 것 같은 아침이 이 책을 보게 되면 새롭게 느껴진다. '아침'이라는 시간이 하루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우리가 이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 나머지 하루를 어떻게 결정하게 되는지 생각해 보고 나면 작지만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처럼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아침은 언제나 멋지게 펼쳐지지 않을까?

반달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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