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나리오는 로봇이 썼습니다. 아직도 두렵지 않습니까?"

입력
2022.09.27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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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제목은 2020년 9월 보도된 가디언(Guardian)의 기사 제목, "이 기사는 로봇이 썼습니다. 아직도 두렵지 않습니까?"를 인용한 제목이다.

최근 AI가 생성해 낸 이미지에 관심이 지대하다. 이세돌 기사와 구글 알파고가 바둑 대결을 펼칠 때까지만 하더라도 AI는 100년 이상의 대국 결과를 모두 입력한 뒤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능한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물론 그 기술도 놀랄 만한 것이었다. 아니, 놀랍다는 표현은 적확하지 못하다. 그 대국은 역사의 한 획으로 남을 사건이었다. 한동안은 모두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와 이세돌 기사가 어떻게 불계승을 이끌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신문 기사와 대화들을 장식했으니 말이다. 그 당시에도 이미 인공지능은 암기만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응용하여 수를 두는 수준까지 도달한 단계였다.

그렇다면 현재 AI가 도달한 위치는 어떠한가. 우리는 당장 텍스트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그에 따른 이미지를 생성해 주는 프로그램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AI가 만들어 낸 그림은 우스꽝스럽다거나 고루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텍스트를 잘 입력하면 놀랄 만한 결과물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인이 나의 연출작인 '남매의 여름밤'을 텍스트로 입력한 이미지를 보내주었는데, 이는 오히려 콘셉트 아트로 활용해도 좋을 만큼 창의적이었다.

그렇다면 AI의 이 작품을 창작이라고 볼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AI가 생성해 낸 이미지는 온전한 창작품일까. 아니면 기존에 존재한 작품들의 이미지를 변형한 표절이라고 볼 수 있을까. 물론 동시대의 창작물들은 기존의 다양한 시도들과 사조의 변화들이 있었기 때문에 탄생하게 된 결과물이다. 과거에 빚지고 있지 않은 어떤 예술도 없으리라 단언할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동시대에 탄생하는 예술 작품에는 현재까지 이어져 온 예술의 역사들만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결국 작가의 삶과 경험들이 작품에 녹아들어 고유의 색깔과 언어, 화풍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작가의 인장처럼 각인되는 것이다.

AI가 이 삶의 경험들, 이 주체적인 경험들을 학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AI의 발전 가능성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 선을 그으려는 것은 아니다. 코고나다의 '애프터 양'이나 이전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AI'처럼 인간의 감정을 배워가는 인공지능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은 역으로 AI와 상호작용을 하며 사고 체계를 재정립하고 발전해나갈지도 모르겠다.

2020년에는 딥러닝 기반 AI가 시나리오를 쓴 단편영화 '상품판매원'이 유튜브에 업로드되기도 했다. 시도는 대단했지만 아직 그 작품은 AI가 시나리오를 성공적으로 써냈다고 평가하기엔 어려운 작품이었다.

AI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또 직업들을 어떤 식으로 변모하게 할지 호기심이 일기도 하고, 조금은 염려가 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감독으로서의 나는 영화가 어떤 식으로 AI의 영향을 받게 될지 가장 관심이 간다. 창작의 영역이 인공지능에 가장 늦게 대체될 영역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듣지만 말이다.

대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조금 서글퍼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나 재빠르고 기민한 영화감독들은 인공지능이 생성해 낸 이야기에 잠식되기 전에, 인공지능이 침범한 삶과 딜레마에 대한 이 흥미로운 소재를 놓치지 않고, 인공지능보다 먼저 영화로 만들어버리겠지만 말이다.


윤단비 영화감독·시나리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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