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앞서가는 미국의 경제안보정책

입력
2022.09.27 00:00

ⓒ게티이미지뱅크

지난주 한미 경제안보와 반도체 협력에 관한 온라인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과 미국의 참여자들이 각각 자국의 입장에서 반도체 산업과 경제안보 협력에 대해 발표했고 몇 가지 쟁점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여러 가지 토론 주제 가운데 현재 미국이 자국 내 첨단 반도체 제조시설 확보를 위해 '반도체와 과학법' 등을 통해 막대한 지원을 하는 것의 적절성과 효과에 대해 참가자들 간 논란이 있었다. 한 참가자는 본인은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지만,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의 중요성과 국가안보라는 예외적인 상황을 이유로 반도체 제조에 대한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 참가자는 국민의 세금을 가장 잘나가는 기업과 산업 지원을 위해 쓰는 것은 맞지 않고 보조금 지원은 경쟁을 미국 내로 제한해 장기적으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국가의 지원은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대한 보조금 형식보다 공동 연구개발이나 인력 양성을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안도 제시됐다.

바야흐로 미중 기술경쟁시대 모든 국가들이 첨단기술 산업에 대한 지원 정책들을 앞다투어 내놓으면서 산업정책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일본 한국 중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지난 경제발전과정에서 다양한 산업정책, 특히 보조금 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세계은행은 동아시아 국가의 성공적인 경제성장이 적절한 산업정책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현재에도 이들 국가에서는 큰 논란 없이 대대적인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이 마련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전통적으로 특정기업이나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해 왔고,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해 중국 정부가 자국 산업을 지원하는 보조금은 시장가격을 왜곡하는 불공정 무역 관행이라고 비판해 왔다. 미국 정부가 1980년대 크라이슬러 등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했던 사례에서 드러나듯, 미국이 자국 산업이나 기업에 대해 보조금 지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늘 조심스러웠고 결과도 신통치 않았다. 미국 반도체 산업발전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정부 지원은 1980년대 후반 일본 반도체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았던 세마테크였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관련 기업들을 모아 공동 연구컨소시움을 출범시켜 미국 반도체 기술혁신을 지원했다. 이는 기업 보조금이 아닌 연구개발비 지원이었고, 상무부가 아닌 국방부 주도로 진행됐다.

이번 회의를 통해 현재 미 상무부가 주도하는 대대적인 첨단 반도체 제조 지원이 미국의 새로운 실험이라는 것, 이러한 정책이 마련되는 저변에 많은 논쟁들이 녹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저런 논란 속에서도 바이든 정부가 취임 직후 지목했던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 등 4가지 전략 부문에 대한 공급망 안정성 확보와 미국의 경제안보 증진을 구체화하는 정책과 법안들을 차례차례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와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 '핵심광물 안보 파트너십' 등을 통해 자국 경제안보의 밑그림을 제시하며 실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고 있는 경제안보의 큰그림과 실행 정책들은 과연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정부도 우리 입장에서 중요한 경제안보의 주요 어젠다들을 선정하고 통합한 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을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준비해 나가야 한다.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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