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의 무한 변신..."허재 형도 '욕 먹을 자리니 잘해야 한다'더라"

입력
2022.09.23 04:30
문경은 KBL 신임 경기본부장 인터뷰

문경은 한국농구연맹(KBL) 신임 경기본부장이 20일 서울 강남구 KBL빌딩 경기본부장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왕년의 ‘람보 슈터’는 쉴 틈이 없다. 연세대 시절부터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다가 은퇴 후 1년도 안 돼 서울 SK 감독대행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우승 감독까지 경험하고 10년간 잡은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후 방송 출연 등을 하며 이제 좀 쉬는 듯 했지만 1년 반 만에 또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문경은(51) 전 SK 감독은 이달 1일 한국농구연맹(KBL) 신임 경기본부장에 선임됐다. 경기본부장은 리그의 전체 경기 운영을 총괄하는 자리로, 원활한 진행을 위해 심판 조직 등을 관리한다. 선수와 감독 때는 양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지냈다면 경기본부장은 음지에서 소리없이 힘 쓰는 역할을 해야 한다.

20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문경은 본부장은 “2주 동안 업무 파악을 하고, 출퇴근 생활이 몸에 밸 수 있도록 적응 과정을 거쳤다”며 “오전 9시 회의에 참석하려면 (경기 용인 집에서) 6시부터 출근해야 길이 안 막히기 때문에 절로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그 많던 저녁 약속도 가급적 걸러서 잡고 있다”고 말했다.

농구는 종목 특성상 신체 접촉이 많아 심판 판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때문에 감독, 선수들은 판정 하나, 하나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때문에 판정은 잘해야 본전, 못하면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팀이 수 차례 판정으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경기본부장실에 항의 방문하기도 한다.

문 본부장은 “안 그래도 얼마 전 방송 촬영 현장에서 (고양 캐롯 대표) 허재 형을 만났는데 ‘욕 먹을 자리야. 잘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줬다. 시즌 때 판정에 불만이 있다고 해도 대표님이니까 감독할 때처럼 직접 찾아올 일은 없지 않겠나”라며 웃은 뒤 “전희철 SK 감독은 전화가 와서 ‘자주 찾아갈 거야’라는 압박을 주는데 오면 같이 밥이나 먹고 돌려보낼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문경은 경기본부장은 임기 2년의 경기본부장 경험이 향후 지도자로 복귀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한호 기자

코트를 떠난 뒤 언젠가 다시 농구계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것도 경기본부장으로 복귀할 줄은 몰랐다. 문 본부장은 “아직 지도자 욕심이 남아 있기도 하고, KBL은 나중에 나이가 좀 들었을 때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서 “본부장을 하면 지도자가 멀어지는 건 아닌가라는 마음에 결정 과정까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해설위원이나 코트 밖에 있는 것보다 행정가로 농구판 중심에서 모든 경기를 보고 공부를 하다 보면 나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설명했다.

끊임없는 도전을 선택한 이유는 워낙 바쁘게 사는 걸 즐기는 성격 때문이다. 문 본부장은 “성격상 바쁜 걸 좋아한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면 농구 선수보다는 골프 선수가 되고 싶기도 하다”며 “농구는 한 시즌을 실패하고 만회하려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골프는 한 대회에서 실패하더라도 다음 대회에서 만회를 할 기회가 있다. 1년 간의 긴 투어 생활이 힘들 수도 있다고 하지만 바쁘게 다니는 게 좋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고 밝혔다.

문 본부장은 김동광, 박광호 전 본부장들보다 이른 나이에 임무를 맡게 됐고, 팬들에게도 더 친숙한 스타 출신이다. SK 감독을 할 때도 소통에 능한 ‘형님 리더십’을 발휘했다. 문 본부장은 “경기 본부 조직을 활발하고 소통하는 젊은 분위기로 가져가고 싶다”며 “매주 화요일 오전에 경기본부 회의가 있는데 팀장님들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보고할 내용만 얘기하더라. 보고에 앞서 평소 사는 얘기, 지나가는 얘기도 좀 하는 편한 분위기를 만드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만 심판부는 형님 리더십보다 더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참이다. 문 본부장은 “가장 중요한 업무가 심판 운영”이라며 “감독으로 강하지 못한 이미지가 있는데, 심판부는 형님 리더십보다 더 강하게 나갈 생각이다. 질책할 때는 확실히 하고, 잘했을 때는 상을 주는 시스템화 된 심판부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심판부를 시스템화해서 능력에 따른 업다운 제도를 만들고, 심판부장도 사무실을 지키면서 현장 감각이 떨어지게 만들기보다는 플레잉 심판부장으로서 현장에 내보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연세대 시절의 람보 슈터 문경은 본부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내달 1일 경남 통영에서 시작하는 KBL 컵대회에서 행정가로 공식 데뷔를 하는 문 본부장은 “지금 자리는 매끄럽고 투명한 경기 진행으로 팬들이나 현장의 눈살을 안 찌푸리게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아무 소리없이 운영되는 리그 분위기를 만들면 농구 흥행은 우리 선수들이 잘 시켜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마지막으로 문 본부장은 “친분으로, 유명세로 판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온 게 아니다. 새 본부장 체제에서 활동적이고 신선한 심판부가 됐다는 걸 농구계에 보여주고 싶다”며 “공정성과 투명성을 갖춰 오심이 최대한 안 나오게, 납득 가능한 판정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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