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르의 죽음, 오겜의 기적...이렇게 시대는 바뀐다

입력
2022.09.17 12: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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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왼쪽)와 황동혁 감독이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남자배우상과 감독상을 받은 후 기자실을 찾아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재(왼쪽)와 황동혁 감독이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남자배우상과 감독상을 받은 후 기자실을 찾아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 탈 수 있어요. 대표님도 에미상을 한 번 노려보세요. 아카데미상보다 그게 더 수월할지도 몰라요.”

지난해 12월 영화와 드라마를 기획 중인 한 제작자와 통화하다 했던 말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둬 여전히 화제가 됐던 때였다.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로 삼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짧은 시간에 사로잡을 수 있어 에미상 수상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생각에 했던 발언이다. 지난 13일 ‘오징어 게임’이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감독상(황동혁)과 남자배우상(이정재)을 각각 받으면서 기대 섞인 막연한 예측은 현실이 됐다.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을 수상한 날 지인들이 페이스북에 엇비슷한 단상이 담긴 글들을 올렸다. 한국 대중문화에 있어 역사적인 날에 프랑스 유명 영화감독 장 뤼크 고다르가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지인들의 글은 대체로 쓸쓸했다.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과 고다르의 죽음이 영상 산업의 급변과 더불어 영화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의도치 않게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에서였다.

고다르는 영화광으로 출발해 영화평론가를 거쳐 감독이 됐다. 박찬욱이나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영화광 출신 감독의 원조였던 셈이다. ‘네 멋대로 해라’(1960)로 데뷔한 고다르는 영화 혁명가였다. 기성 영화들과 달리 소형 카메라로 자유자재로 촬영했고, 자연광을 종종 활용했다. 점프컷(장면이 전환할 때 시간이 급격히 바뀌는 편집기법)과 실존주의적 대사, 급진적인 메시지 등이 특징이기도 했다. 당시 그의 영화는 파격이었다. 20세기 많은 감독들과 영화학도들에게 영감을 제공하기 충분했다. 그의 작품들은 영화가 예술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충분히 지닐 수 있음을 웅변했다. 고다르의 죽음이 한 자연인의 마감 이상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OTT 넷플릭스의 급성장과 밀접하다. 넷플릭스가 없었다면 ‘오징어 게임’은 만들어질 수도, 세계적으로 히트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만 연출했던 황동혁 감독이 첫 드라마로 세계적 명사가 된 점은 아이러니이면서도 OTT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한다. 지인들이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과 고다르의 죽음에서 시대 변화를 감지할 만도 하다.

급변은 최근 한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OTT 쿠팡플레이는 여름 대작 ‘비상선언’과 ‘한산: 용의 출현’을 독점 제공하고 있다. 국내 블록버스터가 IPTVㆍ케이블TV 주문형비디오(VOD)를 거치지 않고 특정 OTT 한 곳으로 직행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OTT 가입자 확보와 유지를 두고 벌어지는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다.

지난여름 극장가는 OTT가 우리 생활 속에 단단히 자리 잡았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외계+인’ 1부와 ‘헌트’ 등 제작비 200억 원이 넘는 국내 대작 4편이 개봉했으나 관객 동원은 기대에 못 미쳤다. 1년 중 가장 성수기인 8월 총 극장 관객수는 1,495만 명이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8월(2,478만 명)보다 983만 명이 쪼그라들었다. 밀키트가 외식을 대신할 수 있게 된 것처럼 OTT는 이제 극장 대체재다. 황 감독이 에미상 트로피를 든 모습에서 여러 급변의 징후들이 읽힌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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