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절단의 수술방, 흐느끼는 산모...인생을 바꾼 병원의 기억

입력
2022.09.16 04:30
신간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보건소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앞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잠시 목을 축이고 있다. 뉴스1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흥행으로 출간 1년여 만에 재조명되고 있는 책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의학 서적에 특화된 출판사 꿈꿀자유의 책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강병철 꿈꿀자유 대표가 2013년부터 의학 서적을 출판하게 된 배경에는 다운증후군 아기를 낳은 한 엄마와의 만남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다운증후군 관련 도서를 추천해 달라는 말에 가슴이 콱 막혔다. 국내에 관련 도서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번역서를 내려고 해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는 출판업의 곤궁한 삶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었다. 흐느끼는 다운증후군 아기 산모와의 만남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신간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는 이처럼 기억에 남는 환자나 보호자와의 사연을 담은 의사와 의료 관련 종사자들의 고백록이다.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구하듯 환자들도 의사의 삶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3월 3일부터 지난 5월 11일까지 63주간 한국일보에 게재된 동명의 연재물을 모았다. 50명의 의사와 2명의 한의사, 각각 5명의 간호사와 소방대원, 1명의 상담가가 쓴 글 중 54편을 엄선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병원은 우리 삶의 실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올드팝이 흐르는 가운데 치매 노인의 다리 절단 수술이 이뤄졌던 정형외과 인턴 시절 수술방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는 그곳에서 결국 인체는 소멸로 향하며, 아무리 인도적 시선으로 바라봐도 그 사실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중에 시작된 연재물인 까닭에 코로나19 수습 현장의 사연도 많다. 코로나19 격리병동에서 일했던 오연택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는 "코로나는 삶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평온을 허용치 않았다"고 적었다.

의대 졸업반 실습생 시절 경험을 계기로 진로를 바꾼 이도 있다. 김현철 홍콩과기대 경제학과 및 공공정책학과 교수는 20년 전 유방암센터에서 암이 많이 진행된 후에야 병원에 오는 가난한 환자들을 접하고 건강 불평등 문제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의과대학 졸업 후 전문의 과정 대신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다.

의료진은 환자와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주관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훈련된 이들이기에 때로 냉정해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더 깊게 아파하고 흔들리는 의료진의 인간적 면모가 이 책을 통해 드러난다. 담담하게 쓰면서도 쓰라린 기억, 꺼내 놓기 부끄러운 기억까지도 털어놓은 저자들의 기록을 통해 감동과 치유의 경험을 하게 되는 책이다.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강병철 외 지음·한국일보 편저·황소자리 발행·288쪽·1만6,000원


김소연 기자
책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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