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주로 돌아온 '농구대통령'.. "허웅보다 전성현 선택한 김승기 감독 의사 존중"

입력
2022.09.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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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태백 전지훈련서 선수들과 산악구보 호흡
'플레이오프 무패 우승' 김승기 감독 무한 신뢰
김병철 미합류엔 "조직 상황 이해해달라" 부탁
올해 목표는 플레이오프 진출

허재 고양 캐롯 대표 이사가 1일 강원 태백 전지훈련지를 지나는 선수단 버스 앞에서 구단이 나아갈 방향과 자신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주희 기자

허재 고양 캐롯 대표 이사가 1일 강원 태백 전지훈련지를 지나는 선수단 버스 앞에서 구단이 나아갈 방향과 자신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주희 기자

“저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했잖아요. 그래서 (구단 사무국, 선수단 모두와) 대화가 되는 것 같아요.”

한국프로농구(KBL) 고양 오리온스를 인수한 고양 캐롯 농구단의 허재(57) 대표이사는 자신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캐롯 농구단이 8월 31일부터 이달 3일까지 강원 태백 전지훈련에 나선 것이 그의 강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지난 1일 전지훈련지에서 만난 허 대표은 “신생구단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챙기려 한다”며 “코로나19 때문에 선수단이 일본 전지훈련을 못 갔는데, 늦게나마 국내에서라도 산악훈련 겸 워크숍을 떠나자는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훈련 장소에 나타난 허 대표를 보니 “대화가 된다”는 그의 말이 실감이 났다. 그는 이날 8.2㎞ 산악구보의 출발지인 어평재휴게소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등장해 선수단과 함께 몸을 풀었다. 준비운동을 하는 와중에 선수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농담 섞인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며칠 전 고려대와의 연습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선수에게는 “상황을 보고 들어 가야지, 가드라는 놈이 그렇게 무턱대고 (상대방과) 부딪히면 어떡해”라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선수단 사이에 섞여 산악구보에 동참한 허 대표는 출발 전 “5분이라도 뛸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엄살과 달리 약 10분간 오르막길을 내달렸다. 대표이자 대선배의 솔선수범에 김승기 감독과 코칭스태프도 땀을 흘리며 무리에 뒤섞여야 했다.

허재 고양 캐롯 대표이사가 1일 강원 태백에서 선수단, 코칭스태프와 함께 산악구보를 하고 있다. 박주희 기자

허재 고양 캐롯 대표이사가 1일 강원 태백에서 선수단, 코칭스태프와 함께 산악구보를 하고 있다. 박주희 기자

특유의 스킨십을 과시했지만 허 대표는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았다. 현장 운영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라고 선을 그었다. 안양 KGC인삼공사에서 영입한 전성현이 대표적인 사례다. 허 대표는 “전성현과 (아들인) 허웅(전주 KCC)이 같은 보수 총액(7억5,000만 원)을 받는데, 김 감독이 전성현을 택했다”고 전했다. 영입 물망에 아들의 이름이 오르내려도 감독의 선택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2년차에 문성곤(KGC), 3년차에 허훈(상무 농구단)을 영입하겠다”는 김 감독의 구상에 대해서도 “다른 팀들이 가만히 있을까?”라며 웃기만 할뿐 사견은 덧붙이지 않았다.

이는 김 감독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허 대표는 “김 감독은 플레이오프 무패로 우승(2020~21시즌 10승 전승)을 한 감독”이라며 “본인이 새로운 곳에서 또 한 번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고,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캐롯의 초대 사령탑을 치켜세웠다.

믿음직한 현장 지휘관을 둔 덕분에 그는 좀 더 큰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허 대표는 8월 25일 창단식에서부터 “캐롯을 KBL 최고 인기구단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는 “냉정하게 말해서 올해 캐롯은 우승권은 아니다”며 “대신 새로운 선수를 스타로 키워내 고양 팬들이 찾아 올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흙 속의 진주’는 5년차 조한진(포워드)이다. 허 대표는 “고려대와의 연습경기를 봤는데 볼 터치감이 좋더라”며 “감독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허 대표의 말대로 새 얼굴의 등장은 농구 팬들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반대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잃은 팬들은 허탈감에 빠지기도 한다. 고양 팬들은 캐롯의 전신인 오리온스의 ‘상징’ 김병철 코치가 새 구단에 합류하지 못하자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허 대표는 긴 시간을 들여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물론 팬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감독이 선임되면 코칭스태프도 조직적으로 움직여요. 감독이 코트에서 놓친 부분을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코치들이 캐치하는 상황이 꽤 많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서 김병철 코치까지 합류하기에는 구단에서도 벅찬 면이 있는 거죠. 병철이도 내 고등학교 후배예요. 병철이가 미워서 함께 하지 못하게 된 게 아니라는 걸 팬들이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허 대표가 바라는 구단의 성적이 궁금했다. 그는 현실적인 목표와 은근한 기대감을 모두 내비치며 웃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목표는 (우승이 아니라) 플레이오프 진출이죠. 그런데 운이 좋으면 우리가 확 치고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태백 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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