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결에 어느덧…

입력
2022.09.03 04:30

ⓒ게티이미지뱅크

구월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니, 마치 여름을 이겨낸 상으로 받은 달 같다. 그런데 아홉 번째 달이 열렸다는 것은 곧 올해가 넉 달밖에 안 남았다는 말이다. '열매달'이란 이름처럼 한해를 잘 매듭짓기 위해 자연도 사람도 어느 때보다 분주히 보낼 달이다. 이름하여 천고마비의 계절. 높고도 새파란 하늘 아래 흙먼지를 뒤집어 쓰며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이던 가을 운동회와 백일장이 어김없이 열렸던 때가 아닌가?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밀물처럼 밀려올 무렵인데도 '우리의 그날들'을 다 내려다봤을 하늘을 지금은 못 보는 날이 더 많다.

시간이 없는 것인가? 혹은 여유가 없는 것인가? 반복되는 시간들 속에서도 기억할 만한 때를 이르는 말은 많다. 일 년쯤을 이르는 '해포'란 말이 있다. 우리는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이나 특별한 날이면 문득 지난 때를 돌아보게 된다. 한 달쯤을 이르는 '달포' 중에서도 그달의 초하룻날을 콕 짚어내는 '월삭'을 누군가는 마음으로 챙기기도 한다. 하루를 네 등분한 '한겻', 곧 6시간이 어떤 이의 삶에 크게 이바지할 수도 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겨를'이라 한다. 옛말 '겨르ᄅᆞᆸ다'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있는 상태, 곧 '한가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겨를ᄒᆞ다'는 그 여유로 무언가를 하는 행위, 즉 '틈타다'는 뜻이다. 겨를은 한가하고 여유를 가진 말인데, 오히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쉴 겨를이 없다'처럼 부정적인 말과 더 자주 쓰이는 것은 작은 여유조차 없는 현대인의 삶 탓일까?

'어느 결'에도 성장하고, '지나는 결'에도 인정을 나눌 수 있고, '자기도 모르는 결'에도 웃음이 터질 수 있다. 삶을 결정짓는 시간이란 어쩌면 사람이 어떤 일에 손을 댈 겨를이 있는 '짬'이다. 얼마 안 되는 퍽 짧은 시간을 '덧'이라 하지만, '어느덧'이라 하면 어느 사이인지도 모르는 동안에 일어난 일을 말한다. 그보다 더 짧고도 강렬한 순간을 이르는 '찰나'도 있다. 어차피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힘 있고 돈이 많든 그렇지 않든, 시간은 모든 이에게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다만 '겨를'을 가지고 소중한 때를 찾아보려는 마음이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일이 일어나는 바로 '그 찰나'에 무심하지 않고, '지나가는 결'에 곁에 핀 들꽃에 눈길이라도 주다 보면 '어느덧' 마음 한 편 빈 곳들도 '겨를'로 채워져 있지 않을까?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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