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실의 바보’ 논리, 정유업체 '횡재세' 논란에도 적용돼야

입력
2022.08.29 19:00
25면

편집자주

우리나라는 에너지 부족 국가이면서도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이슈를 에너지 경제학의 관점에서 점검해 본다.


노벨 경제학상 밀턴 프리드먼, 시장개입에 따른 부작용 경고
정부 부적절 개입은 시장 왜곡ㆍ유발하고 문제 상황만 악화
횡재세보다 탄소중립 대비위한 에너지업계 규제개선 해야

자유방임주의와 시장제도를 통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강조했던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여러 업적 중 하나는 '샤워실의 바보(fool in the shower room)'란 용어로 정부의 부적절한 시장개입을 경고했다는 것이다.

샤워기 물의 온도가 적정하게 맞춰질 때까지는 좀 기다릴 필요가 있다. 급한 성격에 온수 쪽으로 샤워기 꼭지를 끝까지 돌리면 뜨거운 물에 델 수 있다. 냉수 쪽으로 샤워기 꼭지를 끝까지 돌리면 찬물에 깜짝 놀란다. 샤워실의 바보란 이때 샤워실에서 뛰쳐나오는 바보의 모습을 즉흥적인 정부 정책이 가지는 문제점에 빗댄 표현이다.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때로는 불안과 문제를 가중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석유기업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비용은 특별하게 늘어난 게 없는데 유가는 폭등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의 2분기 평균 가격은 137.3달러로 전년 대비 약 2배가 뛰었다. 그야말로 석유기업이 횡재이윤을 누리다 보니 횡재세가 도입되었던 것이다.

국내에서도 정유사를 대상으로 '횡재세(windfall profit tax)'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및 시민단체 일각에서 그렇다. 정유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으니 세금을 부과하여 취약계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우리 정유사는 글로벌 석유기업처럼 석유를 생산하지 않는다. 수입한 석유를 정제하여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의 석유 제품을 생산한다.

그래서 글로벌 석유기업이 누리는 횡재이윤이 아닌 정제마진을 달성할 뿐이다. 정유사 이익의 상당 부분은 내수를 충족시키고 남은 석유 제품을 산유국 포함 전 세계 60개 국가로 수출함으로써 얻는 것이다. 석유는 안 나지만 석유 제품 수출 순위는 세계 7위이다. 정유산업이 국가의 주력산업으로서 고용 및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 정유사들은 석유 제품에 대한 국제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상반기 약 11조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은 12.7%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한항공의 영업이익률 16.1%, 31.9%, 24.8%에 비해 높지 않다. 특히 재작년 1분기에는 영업이익률이 –16.4%로, 한 해 동안 영업적자 5조 원을 기록하여 크게 위축된 바 있다.

정유산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에너지 부문이다. 전력 및 천연가스의 시장 규모를 다 합쳐도 정유산업에는 못 미친다. 특히 생산되는 석유 제품의 절반 이상은 수출된다. 수출액 규모는 반도체에 이어 2위다. 하지만 탄소중립의 흐름 속에서 우리 정유산업은 변신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고용 및 부가가치를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소 생산, 바이오 연료/납사 생산, 저탄소 연료 생산, 전기차 및 수소차 충전 인프라 구축 등 말이다. 횡재세 부과로 그 투자 및 변신의 기회를 없애는 것은 어리석다. 횡재세 도입 주장은 마치 밀턴 프리드먼이 비유한 샤워실의 바보와 같다. 다행히도 정부의 입장은 횡재세를 도입하자는 주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횡재세로 접근하는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수출로 한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는 반도체 부문의 이윤에 횡재세 부과를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지원을 얘기한다. 마찬가지로 횡재세 부과가 아닌 정유산업이 변신할 수 있도록 돕는 규제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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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훈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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