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 대책 가로막는 '가족주의 유산'

입력
2022.08.26 00:00
수정
2022.08.26 08:02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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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 국책연구기관 보고서에 의해 공개된 통계가 언론의 주목 대상이 되었다. 대학교 졸업·중퇴 후 첫 3개월 이내에 취업한 비율은 2004년과 2021년 사이에 56.3%에서 47.4%로 축소되었고, 12개월 이상 소요된 비율은 같은 기간 24.1%에서 26.7%로 증가했다. 첫 직장이 정규직일 확률은 2008년 63.1%에서 2021년 52.9%로 축소되었고, 첫 직장이 1년 이하 계약직일 확률은 같은 기간 11.2%에서 29.3%로 증가했다.

최근 또 다른 국책연구기관에 의해서 고졸 청년층의 노동시장 이행 성과에 관한 보고서도 출간되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대 이후 고졸 청년층은 직업 정착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고졸 청년층의 취업 일자리 질은 낮았다. 정규직 비중이 낮고, 연령 증가에 따른 정규직 비중 증가 패턴이 관찰되지 않았다. 이전에 고졸 청년층이 차지했던 좋은 일자리는 이제는 점점 더 전문대졸 청년층이 차지하고 있다.

요컨대 대졸자든 고졸자든 청년들 모두 학교를 마치고 노동시장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이른바 '학교-노동시장 이행(school-to-work transition)'의 성과는 그 속도와 질의 측면에서 계속 악화하고 있다.

이행의 성과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청년 노동의 수요를 제약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혁하는 것, 교육훈련제도와 노동시장과의 연계를 긴밀하게 만드는 것, 직업 훈련과 고용 서비스를 청년들의 사정에 맞게 맞춤식으로 바꾸는 것, 적정 수준의 구직 급여와 수급 기간을 보장하는 것 등이 중요한데 청년 정책의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방식 역시 바꿀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청년복지시민권이라는 용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청년복지시민권 이란 청년이 아동의 연장선에 있는 연령대로서 여전히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성인으로 취급되는 것을 말한다.

청년복지시민권이 보장되는지를 판별할 때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공공부조 제도의 독립적인 수급자가 될 수 있는 연령 제한이다. 일부 가족주의 국가들을 제외하고 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서 청년들은 18세가 되면 독립적인 공공부조 제도의 수급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청년은 독립된 가구를 구성하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는 한 30세 미만까지는 부모의 자산과 소득에 합산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여부를 판정받는다.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에 남아 있는 이런 가족주의적 유산 때문에 청년의 자립은 지체되고 청년 빈곤은 은폐되고 있다.

지난 2021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모와 주거를 달리하는 19세 이상 30세 미만의 미혼 자녀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부모와 별도 가구로 인정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권고한 바 있다.

이 제안에 많은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저된다면, 부모와 주거를 달리하는 만 25세 이후의 청년에게 공공부조 제도의 수급권을 부여하고 그 대신 구직 서비스와 훈련 참여를 하도록 의무화한다면(활성화 조치)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이 제도를 실시할 수 있다. 이 제도는 구직활동을 하는 청년들의 급여 수준과 기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줌으로써 교육과 일자리 사이의 매칭을 개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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