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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성차별에서 자유롭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키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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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뜻의 밈인 '무물'을 아시나요. 한국일보 허스펙티브가 성평등을 주제로 한 ‘무물 콘텐츠’를 격주 금요일마다 연재합니다. ‘대체 이럴 땐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일상에서 흔하게 겪을 법한 다양한 고민 상황을 통해, 함께 성평등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뎌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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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K장녀'로 살아온 30대 중반 여성입니다. 일찍 결혼을 해서 벌써 6살짜리 딸이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장녀로 살아오면서 부지불식간에 겪은 성차별이 많기에 제 딸은 조금 더 평등한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남동생을 편애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늘 주눅 든 채 살았어요. 하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도 못했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크게 긍정하지 않았죠. 우연히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내가 겪은 일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으로 주입된 '여성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후 조금씩 페미니즘을 익혀 가는 중입니다. 워킹맘으로서 육아까지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일을 그만두지 않는 건 딸에게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평소 딸에게 성별 고정관념을 은연 중에 주입하지 않기 위해 무척 노력하는 편입니다. '여자아이라서' 분홍색 의상을 입히거나, 자동차 장난감 대신 인형을 사주는 일은 지양하려고 해요. "너는 여자아이니까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지"라든가 "그건 여자는 할 수 없는 일이야" 같은 말은 당연히 하지 않고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것만으로도 괜찮은 걸까'라는 불만족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가정에서 저 혼자 애면글면한다고 해서 딸이 성차별에 노출되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어떻게 하면 딸을 성차별로부터 자유로운 주체로 키울 수 있을까요. (유엄마·35·회사원)
A. 딸에게는 조금 더 평등한 세상을 안겨주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엄마님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사연입니다. '여자라서 안 돼'라는 그 마음에서 자유롭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했나요. 그러나 세상 어느 나라도 아직까지 완전한 성평등을 이룩하지 못한 만큼, 성차별에서 자유로운 주체로 딸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녀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나이가 되면 유튜브에서 쉽게 아이돌의 춤을 보게 되지요. 때로는 TV를 보고 동작을 곧잘 따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돌의 댄스 역시 성적 대상화에서 좀처럼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래 영상을 보실까요. 성적 대상화로 점철된 여성 아이돌 커버 영상이 아니라, 기존 아이돌 그룹의 안무에서 성적 대상화 동작을 뺀 춤을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 '프롬나우'의 댄스커버 영상이에요. 왼쪽과 오른쪽 동작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이런 대중문화를 접한 아이들은 부지불식간에 성별 고정관념이 담긴 행동이나 말투, 생각에 스며들고 '여성스러움' '남성스러움'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됩니다.
동요는 또 어떻고요.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라는 가사를 통해 아이는 여성이 날씬해야 한다는 외모 지상주의를 자연스럽게 체화하게 되지요. 의식적으로 '얼굴과 신체는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고 가르쳐도, "너 참 예쁘게 생겼네"라는 말을 보편적인 칭찬으로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 여자아이는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게 되고, 외모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자랍니다.
Q. 바로 제 고민이 그것이에요. 아무리 제가 일상 속에서 성평등을 추구하는 훈육 방식을 택한다고 해도, 아이는 온갖 매체나 생활 환경 속에서 성차별에 노출되잖아요.
하루는 딸이 혼자서 소꿉놀이를 하는데, 열심히 요리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남편'에게 밥을 지어주는 상황극을 하더라고요. 깜짝 놀라 "어디서 그런 걸 보고 배웠어?" 물었더니,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이렇게 놀았대요. 곧바로 선생님께 연락해 "아무리 놀이라 할지라도 성차별적인 요소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당부드렸죠.
A. 부모가 딸이 직면한 모두를 통제하긴 불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딸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주체적 인간으로 양육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에요.
흔히 누군가 딸을 임신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대체로 주변 사람들은 무척 기뻐합니다. 겨우 태아 상태에 불과한 딸은 세상에 나오기도 전부터 '키우기 수월하겠다' '애교 있는 딸이 집안 분위기를 좋게 만든다' '나중에 부모를 잘 챙길 것이다' 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습니다. 그런데 이 욕구들, 딸이 진짜로 하고 싶은 주체적인 욕구일까요. 아니면 딸에게 돌봄 받고 싶은 타자의 욕구일까요.
성평등 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김은혜 교사가 쓴 단행본 '젠더감수성 교실(한겨레출판 펴냄)'은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제대로 발현하는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딸이 진짜로 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딸이 누군가에게 자기 것을 양보할 때, 얌전히 있을 때, 참고 있을 때 기특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한다. 그 시점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Q. 저도 장녀로 살아오면서 같은 딜레마에 빠졌었어요. 저의 욕구보다 부모님이 장녀인 저에게 기대하는 바를 맞추기 위해 애썼죠. 제가 남동생을 배려하기 위해 먹고 싶은 반찬, 갖고 싶은 옷, 추구하고 싶은 진로 등을 내려놓을 때 부모님은 "역시 딸이 기특하고 속이 깊다"고 했어요. 당시에는 칭찬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실속 없는 사람으로 자랐더군요. 그래서 제 딸은 필요한 순간에는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주장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요.
A. 책에서 제시하는 실전 팁을 아래에 소개할게요. 가정에서, 학교에서 딛는 한 걸음 한 걸음으로 분명 엄마님의 딸은 더 평등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① 딸의 욕구에 귀를 기울이기
- 딸이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물어보기
- 딸에게 '내가 하기 싫었던 것'이 있었는지 물어보기
② 여성은 '남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 여성은 남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장난감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지 체크해 보기
- 책이나 미디어에서 여성이 남을 돌보는 역할로 나오는 경우 체크해 보기
- 집이나 학교에서 남성들의 부족해 보이는 점을 챙겨준 적이 없는지 생각해 보기
- 여자가 챙겨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식 가지기
③ 친구에게 내 감정을 이야기하는 연습하기
④ 명절 성차별에서 딸 보호하기
미디어에서 성적 대상화된 여성의 모습이 아니라,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사회에서 활약하는 여성 롤모델을 많이 보여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① 유리 천장을 깬 여성들 조사하기
- 인터넷으로 '여성 최초'를 검색하여 나오는 인물 중 한 명을 선정한다.
- 선정 인물에 관한 기사를 검색하여 학습 자료로 쓰기 적합한 기사를 한두 개로 간추린다.
- 기사의 텍스트를 초등학생이 이해할 만한 수준으로 수정한다.
- 기사를 함께 읽어본다.
- 인물이 한 일을 간단하게 정리한다.
② 역사에서 훌륭한 역할을 한 여성들을 찾아보기
③ 현재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여성 인물들을 알아보기
④ 롤모델을 선정한 뒤 그의 활동과 그에게서 배울 점을 정리하기
- 인물들이 소개된 책을 읽어보거나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기
- 이들의 활동과 삶을 짧은 글로 정리해서 써보거나 이야기해 보기
- 이들이 추구한 목표를 알아보기
-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정리하기
- 이들의 삶에서 어떤 어려움이나 고난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기
- 이들에게 배울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 주의사항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여성임에도'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도록 한다.
※ 참고 문헌
-김은혜(2020). 젠더감수성 교실, 한겨레출판
※ 젠더에 대한 궁금증과 고민이 있으신 분은 1. 고민의 내용 2. 관련해 묻고 싶은 질문 3가지를 작성해 이메일(herstory@hankookilbo.com)로 보내주세요.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고민 내용은 '젠더무물'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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