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돌아오는 성폭력 가해자..."피해자 도우면 찍혀 나가는 현실은 여전"

입력
2022.08.21 20:00
수정
2022.08.2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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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 '미투 중간 결산'
피해자 편에 선 안희정 전 지사 수행비서
"공직 못 돌아가...닭꼬치 팔아 생계"

수행비서에 대한 성폭력으로 3년 6개월간 복역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4일 말없이 경기 여주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수행비서에 대한 성폭력으로 3년 6개월간 복역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4일 말없이 경기 여주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전 검사가 상관의 성폭력 사실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알리며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운동'에 불이 붙은 후 4년 6개월이 흘렀다. 유죄 판결을 받은 가해자들은 속속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복귀하고 있지만 피해자와 그들의 조력자를 향한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은 여전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일 '미투운동 중간결산: 지금 여기에 있다'를 주제로 개최한 좌담회에서 성폭력 피해자와 조력자들은 자신들을 향한 2차 가해 및 보복에 대한 증언과 함께 일상회복을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의 증인 신용우씨도 마이크를 잡았다.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로 8년을 일했던 신씨는 피해자 김지은씨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한 직전 근무자였다. 김씨는 피해 사실을 신씨에게 먼저 털어놨고, 이를 눈감을 수 없었던 신씨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조력자로 나섰다. 학창시절 운동부 생활을 하면서 감독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목격하고 피해자를 도왔다는 신씨는 "안희정 성폭력은 구조적으로 당시 사건과 너무 유사하게 비춰졌다"며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했다.

20일 서울 종로구 코트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미투운동 중간결산-지금 여기에 있다'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20일 서울 종로구 코트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미투운동 중간결산-지금 여기에 있다'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안 전 지사는 끝내 법적 처벌을 받았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법정에 증인으로 섰던 이들은 조직적인 '보복'을 당했다고도 했다. 신씨는 "청춘을 모두 바친 8년의 경력을 이력서에 한 줄 넣지 못했고, 공직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며 "생계를 꾸리기 위해 작은 트럭을 사서 닭꼬치를 팔았다"고 말했다. 자신처럼 피해자 측에 섰던 증인 중에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최고 정치인들로부터 이유 없는 해고를 반복해서 겪은 경우도 있었고, 해외로 떠난 이들도 있다"고 했다. 반대로 안 전 지사 편에 섰던 증인들은 정계에서 '고속 승진'을 하거나 공기업 요직에 '낙하산'으로 앉혀지기도 했다고 신씨는 전했다.

이는 '보스'에게 모든 권력과 자원이 집중되는 폐쇄적인 구조의 조직 어느 곳에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좌담회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신씨도 "안 전 지사 사건은 권력과 그 권력의 무리들이 한 개인과 진실의 편에 선 사람을 얼마나 가혹하게 공격하고 짓밟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반복되는 보복을 막으려면 당사자인 안 전 지사의 반성이 꼭 필요하다.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리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미투운동의 한 축이었던 문화예술계도 가해자 중심의 폐쇄적인 구조가 피해자와 조력자를 억누르는 점은 다르지 않았다. 성평등작업실 이로의 이산 활동가는 배우 초년생 때 공연장을 운영하는 한 배우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고, 이후 이 문제를 공론화했을 때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가해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의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가해자는 자신이 쥐고 있는 이해관계망을 흔들어 피해자의 안위를 해치도록 부추기기 쉽다"고 했다. 광주시립극단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자를 도왔다는 배우 장도국씨는 "여전히 제가 있어야 할 무대 위로 돌아갈 수 없다"면서 "공론화 이후 낙인찍히거나 배제당하는 지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피해자의 '2차 피해' 해결 방안도 논의했다. 2차 피해를 규정했지만 제재 조항은 빠진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고, 처벌 중심으로 접근하기보다 발생 원인에 집중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절차를 갖춰야 한다는 대안도 언급됐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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