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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진단 "통합수능, 교육과정과 맞게 재설계해야"

입력
2022.08.20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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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0일 앞둔 9일 서울 강남구 종로학원 강남본원에서 수험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0일 앞둔 9일 서울 강남구 종로학원 강남본원에서 수험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뉴시스

문·이과 통합수능에 대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문제는 ①문·이과 융합형 인재를 기르겠다는 '이상'과 문과 학생들이 차별받는 '현실'이 크게 어그러졌고 ②통합수능이 2025학년도부터 도입되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육학과 A교수는 "2015 교육과정이 문·이과 통합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건 이상일 뿐"이라며 "실제 고등학교 교육 현장은 문·이과가 나뉘어져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다"라고 통합수능 제도를 비판했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을 공통과목으로 배운 후 문·이과 구분 없이 선택과목을 찾아 공부하도록 한 제도 취지와 달리 학생들은 '나는 문과생', '나는 이과생'으로 정체성을 나누고 문·이과 계열 학과 진학에 필요한 과목만 공부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수능모의평가에서도 사회·과학탐구 응시자 중 약 97%가 사회탐구만 2과목을 고르거나 과학탐구만 2과목을 골랐다. 사회와 과학 두 영역을 섞어서 응시한 학생은 3%가 채 되지 않았다.

이처럼 문과와 이과의 구분은 여전한데, 이과 학생들이 선택하는 과목은 상대적으로 높은 표준점수를 받아 경쟁에서 유리하다. 선택과목의 난이도에 따라, 똑같이 수학 영역에서 만점을 받더라도 이과 학생들이 주로 고르는 '미적분'을 선택한 학생이, 문과 학생들이 주로 고르는 '확률과 통계'를 고른 학생보다 표준점수에서 앞선다. A교수는 "외고에 다니는 학생은 학교에 미적분 수업이 개설되지 않아 높은 점수를 받으려 미적분 수업을 들으려면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그렇지 않아도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통합수능은 문과를 죽이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문·이과 통합이라는 이상을 중등 교육부터 적용하는 게 맞냐는 지적도 나온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문·이과 통합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정책적으로는 약간 과장된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이라며 "학계에서 등장한 '융복합 교육'이란 접근방식을 중·고교에 접목한 건데,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 문·이과 통합 교육은 2025학년도에 전면 도입되는 고교학점제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이과 구분보다 훨씬 세밀하게 쪼개진 과목을 학생들이 골라서 듣고 진로를 설정하도록 교육과정을 짜고 있는데, 통합 수능에선 높은 표준점수를 받을 수 있는 특정 선택과목에 학생들이 쏠리는 현상이 생긴다. 조 교수는 "고교학점제로 대표되는 개별화 교육과정과 문·이과 통합이라는 융복합 접근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했다.

이에 표준점수 환산 방식을 고쳐 문과 과목을 선택한 학생이 이과 학생과 비슷한 점수를 받을 수 있게 하거나 아예 국어와 수학 영역에서 문·이과 학생이 갈리는 선택과목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고교학점제로 달라지는 교육과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학생들의 수능 부담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학생부종합전형'의 설계자로 평가받는 김경범 서울대 교수는 "문·이과 통합수능은 복잡한 퍼즐의 작은 일부라서 학생과 대학의 유불리에 따라 보는 입장이 엇갈린다"며 "수능시험에 과도하게 변별력을 부여해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의 수능 응시 과목 자체를 줄여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은 어떻게 해도 수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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