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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47%' 주요 대학 문과 절반 차지한 이과생...열등생 취급받는 문과생

입력
2022.08.20 16: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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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과탐 못하는 문과생은 통합수능 혜택 없어
수학 고득점자 중 과학 못 본 이과생, 대거 교차지원
"연대 경영·경제 정시 합격자 80%가 이과생일 것"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0일 앞둔 9일 광주 광산구 정광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뉴스1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0일 앞둔 9일 광주 광산구 정광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뉴스1

지난해 정시 모집에서 서울대 문과 계열 학과 신입생 중 이과 출신 학생 비율은 절반에 가까운 47.2%였다. 경희대 문과 계열 학과 신입생의 이과 출신 비율은 무려 60.3%에 달한다.

이런 '이과생들의 문과 침공'은 지난해 처음 시행된 문·이과 통합수능에 따른 결과다. 수학에서 고득점을 받았지만 과학탐구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이과 학생들이 수학 점수에 가중치를 주는 상위권 대학의 인기 인문계열 학과에 교차지원해 대거 합격했기 때문이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과학 못 본 이과생들 대거 문과 상위권 학과로

19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올해 연세대 경영학과·경제학부 신입생의 탐구 영역 백분위 평균점수는 각각 82.5점, 82점이다. 총 8등급 중 대략 3등급에 해당하는 점수인데, 이는 과거 입시에선 중위권 대학 합격이 가능한 수준이다. 연세대는 탐구 영역 가중치(16.7)가 낮은 대신 수학 과목 가중치(33.3)가 훨씬 높은데, 수학 점수는 높지만 탐구 영역 점수가 낮은 이과생들이 대거 연세대에 몰린 것으로 조사됐다.

종로학원 관계자는 "상위권 문과생의 경우 수학과 사회탐구의 점수차가 크지 않은 반면 이과생은 통합수능 덕에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수학은 편차가 줄었고, 대신 과학탐구에서 변별력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즉 수학과 과학 모두 높은 점수를 받은 이과생은 계획대로 의약계열이나 이공계 학과로 진학하지만, 수학 점수가 좋아도 과학탐구 점수가 좋지 않은 학생들은 대학 레벨을 높이기 위해 문과로 교차지원한다는 의미다.

실제 연세대 경영학과·경제학부 입학생의 수학·탐구 점수차는 각각 13.5점, 13점이나 된다. 입시학원 관계자는 "연세대 경영·경제학부의 이과 출신 합격자는 절반 수준을 넘어 70~80%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2023학년도 교차지원 의향 조사

2023학년도 교차지원 의향 조사


입시도 취업도 이과에 밀려… '문송'에서 더 심화된 '문과붕괴'

상위권 주요 대학 인문계열, 특히 문과 내에서도 그나마 취업이 잘되는 경제·경영학과에 대한 '이과생들의 침공'에 문과생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심각하다. 숙명여대 중어중문과 22학번인 함모(21)씨는 "문송(문과라서 죄송)하다는 것도 이젠 옛말"이라며 "지금 문과는 죄송한 정도가 아니라 붕괴 위기"라고 말했다.

서울 목동에 사는 학부모 박모(45)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가 문과라고 하면 공부를 못하는 걸로 받아들인다"면서 "이런 편견 때문에 학부모들은 아이가 문과생이라고 이야기하는 걸 꺼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울 A대 언론·홍보학과에 입학한 최모(21)씨는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언론·홍보 관련 학과 신입생의 절반 정도는 이과생"이라며 "문과는 선택지가 그대로인데, 이과의 선택 폭은 훨씬 넓어져 문과가 말도 안 되게 불리해졌다"고 말했다.

서울 B대 문헌정보학과 22학번 손모(19)씨도 "나는 정말 가고 싶은 학과에 들어왔는데, 단순히 학교 타이틀을 얻기 위해 교차지원한 이과생들을 보면 속이 상한다"며 "이과생들은 입학 후 복수 전공이나 전과 등으로 취업에 유리한 이과 쪽 전공으로 되돌아가는데, 나도 취업을 위해 이과 분야 복수전공을 해야 하나 벌써부터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서도 문과생이 사라지고 있다. 종로학원이 전국 자율형사립고 28곳과 일반고 24곳 등 52개 고교의 문·이과 비율을 조사한 결과 올해 3학년 564개 학급 가운데 387학급(68.6%)이 이과, 177학급(31.4%)이 문과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수능 때 이들 학교의 문과(46.3%)-이과(53.7%) 비율과 비교하면 '이과 쏠림'이 확연해진 것이다.

서울 신도림고에 다니는 한모(18)양은 "뚜렷한 소신이 있는 친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상위권 학생들은 입시에 유리한 이과를 선택한다"며 "미적분이 안 되거나, 과학이 적성에 안 맞는 친구들이 어쩔 수 없이 문과를 택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문과와 이과의 입시 기회가 0.5대 1.5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 버렸다"며 "이런 현상은 향후 입시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홍인택 기자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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