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취학 논란, 그건 교육이 아니다

입력
2022.08.06 00:00

부산 동래구 내성초 입학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민학교 1학년 여름 무렵이었던가, 나와 통화하던 이모가 문득 말했다.

"이제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대."

여덟 살짜리의 귀에 생전 처음 듣는 '초등'이라는 단어는 너무 낯설고 우스웠다. 거짓말하지 말라며 한참 깔깔댔지만 다음 해 학교 현판은 정말 '초등학교'로 바뀌어 달렸다. 절대적인 존재로만 보이던 학교에 이토록 큰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실감한 때였다.

이 경험은 신호탄이었다. 6, 7차 교육과정의 경계선에서 자란 우리 학년은 학창시절 내내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초등학교부터 영어 과목을 배우기 시작했고 도시락보다 급식에 먼저 익숙해졌다. 뜻있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키울 색다른 수업을 도입하고 싶어 했고 학교도 그런 시도에 너그러웠다. 이렇게 적으니 완벽히 선진적인 환경이 갖춰졌던 것처럼 보이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내내 과도기를 겪었다는 이야기다. 기존의 관행과 새로운 제도가 뒤섞여서 학사의 일정 부분은 언제나 난장판이었다.

영어 수업용 어학실은 책상마다 누르면 선생님의 모니터에 누른 사람이 표시되는 '손 들기' 버튼이 있다는 이유로, 반에 도둑이 생겼을 때 자수를 유도하는 취조실로 활용되었다. 급식은 학생들이 직접 배식 당번을 맡는 자율 운영제로 이뤄졌지만 선생님의 밥은 늘 주번이 제일 먼저 퍼서 물과 함께 교탁까지 운반했다. 철마다 나가는 다양한 야외 체험 학습에서 담임 선생님의 도시락은 언제나 반장 엄마의 몫이었다. 학교는 즐거워야 한다며 매주 동요 수업을 하던 담임은 준비물인 동요 공책이 없는 아이들을 모질게 때렸다.

블랙 코미디 같은 기억들이지만 이 혼란들과 별개로, 학교에서 변화가 시도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나쁘게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정책의 목적은 어쨌든 학생들에게 보다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데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건 우리 세대만의 경험도 아니었다. 한국 교육 제도는 늘 바뀌었고, '저주받은 ○○학번'이라는 말이 매년 숫자만 바뀌어 나올 정도로 대부분의 세대가 혼란을 겪었다. 그렇지만 또 다들 어찌어찌 졸업하고, 학교는 조금씩 나아졌다. 우리 사회가 교육 정책의 변화로 인한 혼란에 어느 정도 합의된 면역이 있다는 이야기다.

교육부의 취학연령 조정방안

그럼에도, 지난주 발표된 '만 5세 취학' 개편안은 유례없는 전 국민적 반발에 부딪혔다. 당연한 일이다. 변화의 폭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교육에 필요한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교육을 일찍 시작해 학업 수준의 평등을 이루겠다고 했지만 정작 그 주장을 뒷받침할 교육 과정은 윤곽조차 없고, 두 해의 출생아들을 한 학년으로 몰아넣었을 때 그 학생들이 평생 겪을 어려움은 언급도 되지 않았다.

중언부언하는 말들을 모두 걷어내고 나면 결국 확실하게 남는 '효과'는 사회 진출 연령을 낮추고, 줄어든 학령 인구를 일시적으로 늘린다는 정도다. 교육 정책이라기보다 획기적인 인구 수납 방식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혼란을 줄이기 위해 학제 개편 기간과 학내 돌봄 시간을 연장할 수도 있다"고 첨언했다. 여전히 방향이 틀렸다. 그가 먼저 답해야 하는 것은 혼란을 줄일 방책이 아니라, 그 혼란을 감내해야 할 '교육적' 근거다. 제대로 대답할 수 없다면? 간단하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유정아 작가·'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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