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더 깊이 잠수하는 프리다이빙…"30m 물속에서 평화를 얻었죠"

입력
2022.08.05 04:30
11면
구독


프리다이빙은 처음에는 잠수 자체가 재미있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깊은 곳으로 잠수하면서 ‘수심을 타다’ 보니까 언젠가부터 물이 나를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초기에는 5m(수심) 풀도 무서웠지만 이제 그 정도에서는 ‘안아주는 느낌’을 못 느껴요. 풀에서 나는 잡음도 많이 들리고요. 15m 넘게 들어가면 그때부터 느껴져요. 얇은 솜이불이 몸을 감싸는 느낌이요.

프리다이버 박귀현씨


아시아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다이빙장으로 알려진 경기 용인시 딥스테이션에서 만난 프리다이버 박귀현(34)씨는 조금도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올해 6월 개장한 딥스테이션의 수심은 36m. 발 밑에 검푸른 심연이 놓였으나 표정은 편안했다. 그는 수면에 설치된 작은 부표를 붙잡고 쉬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자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 스노클을 이용해 숨 쉬면서 몸과 마음, 호흡을 가다듬는 ‘준비 호흡’ 단계다.

2분가량 지났을 무렵, 박씨는 아무런 신호도 없이 수면에서 사라졌다. 그는 몸을 비틀어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부표에서 바닥까지 설치된 줄을 잡아당기며 조금씩 밑으로 내려갔다. 중간중간 손으로 코를 쥐고 혀로 입속의 공기를 귓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고막과 외부의 압력을 맞췄다. 그는 수심 26m 지점에서 몸을 돌려 수면으로 돌아왔다. 이어 프리다이빙 동호회 다이버빌로우에서 활동하는 3년 차 강사 최준엽(35)씨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한참을 바닥 주변에서 머물다가 부표로 돌아온 그의 손목시계형 다이빙 컴퓨터에는 수심 30.7m가 찍혀 있었다. 이날 딥스테이션을 찾은 프리다이버들은 별다른 대화도 없이 서서히 깊이를 더하면서 잠수를 거듭했다. 이들이 숨을 참으며 물속 깊이 들어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프리다이빙 동호회 다이버빌로우에서 활동하는 SNSI(국제잠수안전협회) 강사 최준엽씨가 2일 경기 용인시 딥스테이션에서 수심 36m 바닥을 향해서 잠수하고 있다. 최준엽씨 제공

프리다이빙 동호회 다이버빌로우에서 활동하는 SNSI(국제잠수안전협회) 강사 최준엽씨가 2일 경기 용인시 딥스테이션에서 수심 36m 바닥을 향해서 잠수하고 있다. 최준엽씨 제공


박귀현씨가 딥스테이션에서 가장 깊은 곳(최대 수심 36m)으로 잠수하고 있다. 최준엽씨 제공

박귀현씨가 딥스테이션에서 가장 깊은 곳(최대 수심 36m)으로 잠수하고 있다. 최준엽씨 제공


프리다이빙 저변 확대...딥다이빙 고수도 늘어

프리다이빙 저변이 넒어지면서 ‘딥 다이빙(deep diving)’을 즐기는 다이버도 늘고 있다. 프리다이빙은 물속에서 호흡을 돕는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잠수하는 운동으로, 1988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흥행한 영화 ‘그랑블루’의 소재로도 유명하다. 프리다이버는 잠수 직전에 스노클로 공기를 한껏 빨아들이지만 한 번 물속에 들어간 이후에는 몸 안에 차곡차곡 밀어 넣은 산소만 꺼내서 활동한다. 원초적인 생리에 반하는 운동처럼 보이지만 국내에서도 최근 4, 5년 사이에 애호가들이 증가해 전문 다이빙 시설도 들어섰다. 핀(오리발)을 착용하면 수영을 배우지 않은 사람도 물속에서 쉽게 움직여서 진입 장벽도 생각보다 높지는 않다. 지난 1992년 세계 최초로 설립된 국제 프리다이빙 단체인 아이다(AIDA)의 한국 협회 대표인 임수정 아이다 코리아 회장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물속에서 촬영한 아름다운 사진이 올라오면서 2017년을 기점으로 동호인이 크게 늘었다”면서 “아이다 자격증 발급이 급증하면서 2020년에 자격증 소지자 규모가 세계 2위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프리다이빙 인구 확대에 맞춰 자연스레 ‘고수’들도 등장했다. 동호인들 표현으로는 ‘수심을 타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임 회장은 “한때 (잠수 수심 기준) 세계기록이 60m 정도였는데, 현재 국내에서도 40m 잠수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고 100m를 넘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바다에서는 도전 가능한 수심이 깊어진다. 딥스테이션 관계자도 “기존에 국내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다이빙장으로 유명했던 ‘K-26’이 다이버들로 붐비는 것을 확인하고 사업을 시작했다”면서 “평일에는 100~150명, 주말에는 200명 정도가 딥스테이션을 찾는다”고 말했다. 경기 가평군의 K-26 역시 최대 수심이 26m에 달하는 다이빙장으로 국제 수중스포츠단체인 PADI의 공식 홈페이지 블로그에 ‘아시아 최고 수심 다이빙장’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김경민(왼쪽)씨가 수면의 부표와 바닥을 연결하는 줄을 잡아당기며 아래로 향하고 있다. 최준엽씨 제공

김경민(왼쪽)씨가 수면의 부표와 바닥을 연결하는 줄을 잡아당기며 아래로 향하고 있다. 최준엽씨 제공


김혜선씨가 깊은 수심 도전을 앞두고 15m 수심에서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최준엽씨 제공

김혜선씨가 깊은 수심 도전을 앞두고 15m 수심에서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최준엽씨 제공


김혜선(오른쪽)씨가 잠수를 마치고 수면으로 올라가고 있다. 버디(동료) 역할을 맡은 박귀현씨는 중간 지점에서 기다리다가 함께 상승하면서 상대가 의식을 유지하는지 확인하는 중이다. 최준엽씨 제공

김혜선(오른쪽)씨가 잠수를 마치고 수면으로 올라가고 있다. 버디(동료) 역할을 맡은 박귀현씨는 중간 지점에서 기다리다가 함께 상승하면서 상대가 의식을 유지하는지 확인하는 중이다. 최준엽씨 제공


"깊은 물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고요 얻어"

동호인들은 호기심이나 지인의 권유를 받아서 가볍게 즐기는 마음으로 프리다이빙에 입문했다가 점차 경험하지 않고는 설명이 어려운 ‘마음의 평화’와 ‘고요함’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프리다이빙을 물속의 요가에 비유한 이들도 있었다. 네일아트 업종에 종사하는 박귀현씨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다 보면 손님을 계속 응대해야 하고 힘든 일이 많은데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과 집중력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3년 차 프리다이버 김경민(34)씨도 “처음에는 5m 풀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깊은 곳에서도 몸과 마음이 편하다”면서 “요즘에는 명상하는 기분으로 많이 잠수해 물속에서 생활 속 일들을 정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년 차 프리다이버 김혜선(39)씨는 “프리다이빙은 스쿠버다이빙과 달리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면서 "물속에서 제 호흡 하나에만 집중한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아이다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이용주(37) 선수는 “릴렉스(정신 이완)와 마음의 평온은 프리다이빙의 중요한 요소”라면서 “운동을 하면서 몸과 함께 정신도 건강해졌다”고 강조했다.

프리다이빙을 통해 얻는 마음의 평온은 더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잠수 능력과도 직결돼 있다. 지난 6월 불가리아에서 열린 제28회 아이다 월드챔피언십에서 두 종목에 걸쳐 한국신기록을 기록한 김학용(40) 선수는 “깊이 잠수하려면 높은 집중력과 함께 마음의 평온이 유지돼야 한다”면서 “불안감이나 잡념이 들면 절대로 깊이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잠수하면서 집중력과 평온함이 깨지면 귀의 압력을 유지하는 동작조차 제대로 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몸의 움직임으로 폐를 다치는 부상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기 때문에 초보자들이 무턱대고 깊은 수심에 들어가지는 못 한다. 각 단체가 발급하는 자격증 레벨에 따라 해당 수심에 도전할 수 있다. 프리다이버들이 반드시 버디(동료)와 함께 잠수하는 것도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이다. 잠수병 전문가인 한창섭 삼천포서울병원 병원장은 "깊은 수심에서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다"면서 "폐활량이 적거나 심장질환,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프리다이빙을 한다면 특별히 주의해야 하고, 무엇보다 수중에서 상승하다가 정신을 잃는 경우를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김경민씨가 수중에 설치된 그네를 타고 있다. 최준엽씨 제공

김경민씨가 수중에 설치된 그네를 타고 있다. 최준엽씨 제공


최준엽씨가 딥스테이션에 설치된 나무 모양 구조물에 매달려 있다. 다이빙장들은 다이버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서 수중에 구조물을 설치하기도 한다. 최준엽씨 제공

최준엽씨가 딥스테이션에 설치된 나무 모양 구조물에 매달려 있다. 다이빙장들은 다이버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서 수중에 구조물을 설치하기도 한다. 최준엽씨 제공


몸과 마음의 한계를 알아가는 내면의 운동

이처럼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몸과 마음의 훈련을 통해 계단을 밟듯 조금씩 나아간다. 달리 보면 몸과 마음의 한계를 함께 알아가는, 내면의 운동인 셈이다. 임수정 회장은 “프리다이빙을 배우면 바다에 들어가서 생물을 많이 보고 뭔가 놀이를 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지만 사실 온전한 프리다이빙은 밖을 보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에 집중을 하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이용주 선수도 “물속에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물속의 요가'라는 표현과 맞닿는 대목이다.

그래도 여전히 딥 다이빙은 초보자에겐 낯설다면 낯설다. 김경민씨는 동호인으로서 바라본 프리다이빙을 이렇게 얘기했다. “프리다이빙을 권유하면 제일 많이 듣는 대답이 ‘무섭다’인데 사실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체계적 운동이에요. 항상 나를 돌봐주는 사람(버디)이 있는 운동이거든요. 만약 관심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한 번쯤은 다이빙장에 나와서 도전해 보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뜻밖의 즐거움을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김학용 선수가 올해 3월 20일 한국스포츠레저교육협회(KSLEA) AIDA인도어 대회에서 바이핀을 착용하고 잠영하는 다이나믹(DYN) 종목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김 선수는 이 경기에서 잠영 거리 200m로 한국기록을 수립했다. 김학용 선수 제공

김학용 선수가 올해 3월 20일 한국스포츠레저교육협회(KSLEA) AIDA인도어 대회에서 바이핀을 착용하고 잠영하는 다이나믹(DYN) 종목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김 선수는 이 경기에서 잠영 거리 200m로 한국기록을 수립했다. 김학용 선수 제공


이용주(가운데) 선수가 지난해 10월 31일 제주도에서 디퍼 프리다이브에서 주최로 열린 코리아컵 수심대회에서 핀을 사용하지 않고 잠수하는 FIM(프리이머젼) 종목에 참가해 경기를 펼치고 있다. 이 선수는 2018년 프리다이빙을 시작했고 다음해 수중경기 단체인 CMAS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세 경기에 출전해 금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얻었다. 사진작가 이종기 ·이용주 선수 제공

이용주(가운데) 선수가 지난해 10월 31일 제주도에서 디퍼 프리다이브에서 주최로 열린 코리아컵 수심대회에서 핀을 사용하지 않고 잠수하는 FIM(프리이머젼) 종목에 참가해 경기를 펼치고 있다. 이 선수는 2018년 프리다이빙을 시작했고 다음해 수중경기 단체인 CMAS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세 경기에 출전해 금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얻었다. 사진작가 이종기 ·이용주 선수 제공



김민호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