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대만 도착, 中은 전투기 띄웠다... 미·중 관계 폭풍 속으로

입력
2022.08.03 00:19
수정
2022.08.03 01:1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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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하원의장 25년만에 대만 방문
3일 차이잉원 총통과 면담 예정
미국, 안전 확보 강조 속 '하나의 중국' 확인

중국 전투기 대만해협 근접 비행
4~7일 '대만 포위' 실사격 훈련 예고
"美 국가신용 파탄…평화 파괴자" 비난

2일 대만 타이베이 시내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환영하는 광고판이 나와 있다. 타이베이=AP 연합뉴스

2일 대만 타이베이 시내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환영하는 광고판이 나와 있다. 타이베이=AP 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2일(현지시간) 대만에 도착하면서 중국ㆍ대만 간 군사적 긴장과 미중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중국은 해상 실탄 사격훈련, 군용기 위협으로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고 대만은 군사 대비 태세를 격상하며 맞섰다. 미국은 중국의 위협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하면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듭 확인했다. ‘어르고 달래기’로 대만해협 긴장의 파고를 낮추겠다는 의도였다.

중국 위협 피해 우회 비행 택한 펠로시

펠로시 의장을 태운 전용기 C-40C는 이날 오후 3시 42분쯤 말레이시아를 출발, 남중국해를 우회해 비행한 뒤 대만 현지시간 오후 10시 45분 타이베이 쑹산 공항에 착륙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위협 수위를 높이자 혹시 모를 비상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항로를 우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낸시 펠로시(가운데) 미국 하원의장이 2일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한 뒤 영접 인사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타이베이=AP 연합뉴스

낸시 펠로시(가운데) 미국 하원의장이 2일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한 뒤 영접 인사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타이베이=AP 연합뉴스


펠로시 의장은 3일 오전 차이잉원 대만 총통 면담에 이어 입법원, 징메이인권문화원구를 방문한다. 그는 이곳에서 1989년 중국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학생지도자였던 우얼카이시, 2015년 중국 공산당 비판 서적을 취급했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에 구금됐다 풀려난 린룽지 등을 만날 예정이라고 자유시보 등 대만 언론이 보도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밤 쑹산공항 도착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미 의회 대표단의 대만 방문은 대만의 힘찬 민주주의를 지원하려는 미국의 확고한 약속에 따른 것"이라며 "전 세계가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선택을 마주한 상황에서 2,300만 대만 국민에 대한 미국의 연대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1997년 뉴트 깅그리치 의장 이후 25년 만이다. 미국 최고위 인사의 방문인 만큼 대만 독립 분위기 조성을 용납할 수 없다는 중국의 반발은 강경했다.

낸시 펠로시(화면)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앞둔 2일 타이페이의 한 주민이 펠로시 의장 방문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타이베이=EPA 연합뉴스

낸시 펠로시(화면)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앞둔 2일 타이페이의 한 주민이 펠로시 의장 방문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타이베이=EPA 연합뉴스


중국, 무력시위...대만, 군 경계 태세 강화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맞춰 무력 시위 수위를 높였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중국 전투기 여러 대가 이날 오전 대만해협 중간선까지 근접 비행을 실시했다. 펠로시 의장 전용기 착륙 직전에는 중국 수호이 Su-35 전투기가 대만해협을 가로질렀다는 보도도 나왔다.

아울러 중국은 2일까지 남중국해 일대에서 실탄 사격훈련을 실시하고 젠-16 전투기 4대를 1일 대만 서남부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시키는 등 도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또 대만 총통실 웹사이트가 이날 오후 해외로부터 디도스 사이버 공격을 받아 총통실 웹사이트가 20분간 마비되기도 했다.

중국은 4~7일 대만을 포위하는 실사격 훈련을 예고하는 등 군사 압박을 유지했다.

대만은 군 경계 태세를 대폭 강화했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대만 국방부는 이날 육·해·공 3군이 ‘전비정비(군사 대비) 강화 지도 기간’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지도 기간은 2일 오전 8시부터 4일 자정까지다. 대만 공군은 펠로시 의장 일행의 안전한 방문을 위해 ‘공중안전회랑’도 개통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환영하는 시위대가 2일 타이베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타이베이=로이터 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환영하는 시위대가 2일 타이베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타이베이=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어르고 달래기' 나선 미 백악관

미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도착을 앞두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을 내세워 1일 긴급 브리핑을 실시했다. 중국의 군사 위협이 고조되자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장을 날리면서도 타협 지점을 제시하려는 시도였다.

커비 조정관은 “의회는 정부의 독립적인 갈래”라며 백악관과 바이든 행정부가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가능성이 알려지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행정부가 부정적 입장을 보였으나 ‘대중국 강경파’로 꼽히는 펠로시 의장은 대만행을 강행했다. 펠로시 의장은 톈안먼 시위 직후인 1991년 베이징을 방문해 항의 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찍는 등 중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중국의 ‘외교적 기피 인물’로 분류됐다.

커비 조정관은 또 “우리는 하원의장을 지원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우리는 (중국의 도발) 미끼를 물거나 무력 과시에 동참하지 않겠지만 동시에 우리는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대만해협 인근 필리핀해로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와 유도 미사일 순양함 등 군함 4척을 이동시켰고 군용기 10대를 일본 오키나와에 급파하는 등 위기 상황에도 대비하고 있다.

미국은 동시에 이번 방문으로 중국이 군사 행동을 선택하지 않도록 다독이기도 했다. 커비 조정관은 “대만관계법과 미중 3대 코뮈니케, 6개 보장안에 따른 우리의 ‘하나의 중국’ 정책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도 반복해왔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2시간 넘는 전화통화 회담을 가질 때도 대만 문제에서 같은 입장을 반복 확인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중국이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향후 어떠한 긴장 고조에도 관여하지 않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1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관련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1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관련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중국 "미국은 평화 파괴자" 맹비난

반면 중국은 미국 비판을 이어갔다.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미국을 “평화의 파괴자”라고 맹비난했다. “미국이 대만 문제에서 신의를 저버리고 멸시하는 것은 미국의 국가신용을 더욱 파탄 나게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도 “(펠로시 의장 대만 방문 시) 결연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해 주권과 안보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는 10월 공산당 20차 당대회를 통해 3연임을 확정하려는 시 주석 입장에서도 적절한 외부 갈등은 국내 상황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무력충돌은 큰 부담이 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 역시 중국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공화당의 비판을 받으며 정치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쉽게 물러날 수 없는 형국이나 전쟁까지 감수하기는 어렵다. 결국 미중 양측이 군사 대립 수위를 조절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1996년에도 리덩후이 당시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을 이유로 대만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에 미국은 항모 2척을 보내는 등 강하게 대응해 상황을 정리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2일 베이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2일 베이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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