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자유의 초석이 된 재판

입력
2022.08.0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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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존 피터 젠거

미국 언론자유의 초석을 다진 1735년 '존 피터 젠거' 재판. 위키피디아

미국 언론자유의 초석을 다진 1735년 '존 피터 젠거' 재판. 위키피디아

1734년 11월 미국 뉴욕 출판업자 존 피터 젠거(John Peter Zenger, 1697~1746)가 명예훼손 혐의로 체포됐다. 그가 발행한 주간지 ‘뉴욕위클리저널’을 통해 식민지총독 윌리엄 코스비를 “모욕적이고, 악의적이고, 허위적으로, 선동적으로” 비난한 혐의였다. 반정부적 내용이면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되던 때였다.

1731년 8월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 코스비는 임명장을 받은 시점부터 부임하기까지 자기 직무를 대행한 총독대리에게 해당 기간의 급여 절반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등 탐욕스럽고 권위적인 자였다. 그는 소송에서 패하자 대법관을 해고하고 측근으로 대체하는 전횡도 서슴지 않았다. 가명의 필자들이 젠거의 ‘저널’을 통해 고발한 게 그런 사안들이었다.

신임 판사와 총독에게서 급여를 받던 이들로 채워진 대배심 재판이 시작됐다. 젠거가 선임한 변호사조차 법원이 품위 등을 이유로 해임하는 바람에 그는 8개월여간 옥에 갇힌 채 재판을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에도 젠거의 아내 애나(Anna Catharina Maul)는 부당한 재판 정황을 주간지에 보도했다. 그 덕에 당시 식민지 최고의 변호사로 꼽히던 앤드루 해밀턴 등이 그의 변호를 맡았고, 대배심 배심원 전원이 중립적인 시민들로 교체됐다.

해밀턴은 젠거의 혐의, 즉 그가 잡지를 발행했고 필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범행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대신 공직자 명예훼손은, 일반인과 달리, 악의적인 허위사실일 때에만 성립되며 공직자 비리나 범죄 고발은 공익 행위라고 주장했다. 약 18개월 전 ‘저널’에 소개한 ‘Cato’라는 필명의 필자가 쓴 글과 같은 요지였다. 해밀턴은 “이 재판은 가난한 한 출판업자가 아닌 자유의 대의를 위한 재판”이라고 주장했다. 배심원단은 평의 10여 분 만에 ‘기소 불가’를 평결했고, 젠거는 1735년 8월 4일 석방됐다. 그렇게 수정헌법 1조보다 먼저 미국의 언론 자유가 확립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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