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4' 한국, 미중 모두 친구도 적도 아니다

입력
2022.08.02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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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주도하는 국가 간 반도체협력체 칩4(팹4)에 한국의 참여 여부를 둘러싸고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나온 논의들은 대부분 한미동맹과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한국이 칩4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한국 반도체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연일 한국의 칩4 참여에 대해 경고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칩4가 반중국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중국과의 관계도 조심스럽게 이어나가야 한다는 견해들이 첨가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최첨단 반도체 공정시설을 미국에 건설하며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적극 참여하면서, 동시에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시설을 유지하고 반도체를 중국에 지속적으로 수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칩4가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될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백악관 보고서 등을 참고할 때 칩4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한국 대만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 내 첨단 반도체 공정시설을 확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의회가 반도체 공정을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반도체법을 통과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시행한 많은 조치들 가운데 네덜란드 ASML과 대만 TSMC의 대중 거래 제한이 중국에 가장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칩4에 네덜란드가 포함되지 않았다. 칩4의 형성 자체가 대중 견제로 인식됨에도 불구하고 이 안에서 별도의 대중 견제 조치들이 합의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즉 칩4는 미국 내 공정시설 확보와 대중 견제를 동시에 추구하지만, 전자가 훨씬 더 분명하고 중요한 목표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 칩4에 참여하면서 중국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틈새 공간이 보인다.

현재 한국 기업은 중국에 반도체 공정시설을 운영하고 있고 반도체도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혹자는 칩4 참여 이후 중국의 보복을 예상하면서 한국 기업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이나 수출에 어려움이 발생할 것을 염려하지만, 중국의 한국 보복 카드는 중국 반도체 굴기에 큰 차질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활용이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반도체 부문에서 중국과 전면적인 디커플링을 하려는 것은 아닌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의 제재 범위 밖에서 중국과 협력을 지속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중국에 계속 전달해야 한다. 중국은 칩4 참여국 가운데 대만과 일본보다 유독 한국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 압박하고 있다. 한미 반도체 협력의 공고한 발전을 통해 한국이 칩4의 약한 고리가 아님을 분명히 보이는 한편, 중국과도 반도체 협력을 발전시킬 여지가 많음을 설득하고 실행해야 한다.

칩4에 참여할 때 중국과의 관계만큼 한국 기업이나 정부가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한국 내 반도체 공정의 미래이다. 현재 한국 기업은 미국에서 첨단 반도체 공정 부문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인텔과 TSMC와 함께 경쟁하며 미국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인력, 생산비용, 미국 정부정책 측면에서 예상되는 장벽들이 존재하며 이를 헤쳐나가기 위해 지속적 관심과 지원이 요구된다. 아울러 막대한 대미 투자로 인해 한국 내 투자 동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면 한국이 지속적으로 최첨단 반도체 공정의 구심점으로 남을 수 있을지 염려된다. 미국이 계획한 대로 반도체 공정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면, 이후 한국 반도체는 어떤 전략을 추구할지 염두에 두고 대미 협력에 임해야 한다.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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