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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대응이냐 경제냐… '비상사태' 카드 놓고 고민 깊어진 바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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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응을 둘러싼 미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국가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 같은 조치가 살인적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수 있는 탓이다. 국민 3분의 1이 폭염 영향권에 놓이는 등 위기 상황 속에서도 ‘먹고사는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어려운 균형 잡기에 놓였다는 분석이다.
19일(현지시간) 백악관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매사추세츠주(州)를 방문해 기후위기 관련 행정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는 청정에너지 투자와 화석 연료를 줄이기 위한 예산 지출 조정 등이 언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미국 언론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적극 추진해온 ‘더 나은 재건(BBB·Build Back Better)’ 법안이 최근 불발됐기 때문이다. 이 법안에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 세제 지원'과 '전기차 보조금 지원'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약 2조 달러(약 2,620조 원) 예산을 투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안 입법을 놓고 1년 넘게 협상이 이어졌지만, 키를 쥐고 있던 민주당 중도파 조 맨친 상원의원이 막판 반대에 나서면서 사실상 좌초됐다. 의회 입법을 통한 예산 확보 길이 막힌 만큼, 바이든 행정부가 '비상사태 선포'라는 우회로를 통해 자금 조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본 셈이다.
비상사태 선포는 미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권한이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위기 등 정부가 신속히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 부여된다. 이 경우 의회 승인 없이도 관련 예산을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당장 비상사태 선포까진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비상사태 선포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정부가 ‘보류’로 한발 물러선 것은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른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기후 대응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다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 상승세에 더 기름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게다가 환경 규제는 필연적으로 유가 상승을 불러온다. 블룸버그통신은 “기후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원유 시추가 줄어들고 화석 연료 사용도 제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휘발윳값 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쉽게 칼을 뽑아 들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러나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폭염 상황이 이어지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이 문제를 손 놓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날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주 등 일부 지역에선 최고 기온이 섭씨 43도까지 치솟았다. 폭염 경보와 주의보가 내려진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1억 명이 넘는다. 대형화재도 잇따르고 있다. 때문에 환경단체는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방물자조달법(DPA)을 동원해 태양광 패널 등 재생에너지 제품 생산을 늘려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 내 진보성향 의원들도 전향적 기후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진보 진영 대표 의제인 기후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태도를 보여야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드 마키 민주당 상원의원은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민주당의 낙태권 보호 실패에 실망한 젊은이와 진보층이 더욱 멀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기후 대응을 바라보는 시선은 미국인 사이에서도 뚜렷하게 갈린다. 퓨리서치센터가 성인 1만2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7%는 물가상승을 이유로 바이든표 기후 정책이 국가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고 답했다. 49%는 정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대통령이 에너지 가격 급등이라는 현실과 지구 온난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정책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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