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이번 주 '한덕수식 두 줄 신고' 방지 지침 내려보낸다

입력
2022.07.03 18:0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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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뉴시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뉴시스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르면 이번 주 초 고위공직자의 민간부문 업무활동 내역 제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 각 기관에 보낼 예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개정된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의 첫 적용 대상이었던 한덕수 국무총리와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두 줄짜리' 신고 이후 법이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권익위가 내놓은 후속 조치다.

권익위 관계자는 3일 "이해충돌방지법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해당 기관에 각 신고 내역을 충실하게 작성해야 한다는 취지의 안내문을 이르면 5일쯤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 문구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해충돌방지법이 정한 '제출'과 '공개' 규정을 명확하게 확인시키면서 법의 취지를 상기시키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익위가 에둘러 표현했지만, 한마디로 한 총리가 제출한 두 줄짜리, 하나 마나 한 신고는 앞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해충돌방지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고위공직자는 민간 시절 재직했던 법인ㆍ단체에서의 업무 내용, 고문ㆍ자문 내용 등을 신고하도록 돼 있다. 지난달 19일 시행된 이 법의 첫 적용 대상자가 한 총리였다.

한 총리는 이에 따라 지난달 20일 국무조정실에 김앤장 근무 시절 업무활동 내역서를 제출했는데 '국제통상환경, 주요국 통상정책 연구 분석 및 소속 변호사 자문', '주요국 경제변화에 따른 국내경제정책 방향 분석 및 소속 변호사 자문'이라고만 신고했다.

한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영업비밀’이라며 구체적인 김앤장 고문 활동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같은 행태를 반복한 것이다. 총리실은 이에 대해 "한 총리가 특정 사건의 변호인으로 일한 게 아닌 데다, 비밀유지 의무가 있는 변호사법 등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3월까지 4년여간 김앤장에서 근무하며 고문료만 20억 원을 받았는데 구체적 업무 수행 내역 자체가 없어 이해충돌 여부도 따져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더 큰 문제는 행정 각부를 통할하면서 공직자의 모범을 보여야 할 한 총리의 '두 줄' 신고는 공직사회에 나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두 번째 법 적용 대상자였던 오 식약처장은 최근 한국약학교육협의회 이사장과 한국약제학회 회장 재직 시절 업무 내용을 '약학교육 방향성 설계', '학술행사 및 학회 운영 총괄'이라고만 제출했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내역 제출이 잇따르자 권익위 내에서는 '총리가 앞장서 이해충돌법이 형해화하는 상황을 보고만 있는 건 주무부처의 직무유기'라는 지적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권익위 관계자는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더라도 권익위에는 상세히 내용을 제출해야 이해충돌 위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익위는 이번 주 민간부문 업무활동 내역 제출 '가이드라인'을 보내는 한편, 8, 9월 중 이해충돌방지법 관련 실태조사에 착수해 제도의 '빈틈'을 보완하겠다는 구상이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전현희 권익위원장의 '불편한 관계'를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전 위원장은 새 정부 출범 뒤 '국무회의 참석 대상이 아니다'라는 통보를 받고 회의에 못 나가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에선 전 위원장을 포함해 전임 정부 때 임명된 인사에게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안을 놓고 총리실과 권익위의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권익위 관계자는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자는 것"이라며 정치적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김민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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