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엄벌 기조에도 '현금수거책' 유무죄 엇갈려

입력
2022.07.02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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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 입증 기준 사안마다 달라
"고액 알바로 속여 취준생에 맡기기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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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의 유·무죄를 두고 법원 판단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5월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의 '미필적 고의' 증거가 충분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지만,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에게 무죄와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결문 15건을 분석한 결과, 미필적 고의에 대한 법원 판단은 △피고인의 신원 △가담 경위 △가담 기간과 횟수 △피해와 이익 규모 등을 기준으로 갈렸다.

현금수거책의 사기미수 방조 및 사기 혐의를 두고 울산지법과 서울중앙지법이 집행유예와 무죄를 선고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울산지법 형사1단독 정한근 판사는 지난 3월 금융위원회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수거책 역할을 한 A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권영혜 판사는 지난달 채권추심단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수거책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와 B씨는 모두 사회경험이 있었고, 구인·구직 사이트 등을 통해 민간업체로 위장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연락을 받아 비대면으로 채용됐다. 두 사람은 채용업체를 의심해 인터넷 검색을 했지만, B씨는 자신의 개인정보 자료를 보이싱피싱 업체에 넘겼고, A씨는 채용절차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없었다.

외국 국적자도 유·무죄가 엇갈렸다. 지난해 12월 현금수거책으로 동원된 외국인 C씨와 D씨에게 전주지법 남원지원 형사1단독 이디모데 판사와 제주지법 형사2단독 류지원 판사는 각각 집행유예와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C씨의 국어 구사능력을 고려하면 범죄 가담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고 본 반면, 류 판사는 D씨가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비슷한 유형의 현금수거책을 두고 법원 판단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보이스피싱 업체에선 최근 고액 아르바이트라고 속여 취업준비생을 상대로 현금수거책 역할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널리 알려진 데다 피해도 크기 때문에 현금수거책이라고 해도 무조건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지만, 구직이 어려운 상황에서 범행가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보이스피싱 사건 재판 경험이 있는 한 부장판사도 "현금수거책 채용과정과 범행 가담 정도를 따져 유·무죄를 따지고 있지만, 범죄수법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어 판단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은 지난달 서울동부지검에 보이스피싱 범죄 합동수사단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원석 대검 차장은 "작년만 해도 보이스피싱 범죄로 국민이 입은 피해가 7,700억 원이 넘는다"며 "말단부터 총책까지 발본색원하기 위해 검찰과 각 부처가 힘을 합쳐 모든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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