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섬’에서 냥이 밥 챙겨주던 할머니가 아프십니다"

입력
2022.06.30 10:30

전남 고흥군에 위치한 애도. 속칭 ‘쑥섬’이라 불리는 이 섬을 국내 최초의 ‘고양이 섬’으로 조성하는 데 일조한 94세 할머니가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구조119’는 2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쑥섬의 고양이 할머니께서 노환으로 육지의 병원에 입원했다”고 전했습니다. 동물구조119는 “할머니께서는 쑥섬을 고양이 섬으로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신 분”이라고 소개하며 쾌유를 빌었습니다.

쑥섬은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개발한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 서쪽 약 800m에 위치한 인구 20명의 작은 섬입니다. 이곳이 ‘고양이 섬’으로 외지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여행 차 쑥섬을 방문했던 동물구조119 활동가가 길고양이를 발견했는데, 당시 고양이들의 영양 상태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전남 고흥군 애도(속칭 쑥섬)에 사는 길고양이의 모습. 주민들이 잔반 대신 사료를 급여하고, 수의사단체 등에서 예방접종과 중성화수술 등을 진행하면서 건강 상태가 좋아졌다. 동물구조119 제공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곳에서도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섬 마을 주민 사이에서도 ‘고양이 할머니’라고 불리는 할머니였죠. 실제 할머니의 집 앞에서는 고양이들이 10여 마리 모여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할머니가 고양이들에게 사료가 아닌 잔반을 나눠주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먹을 것을 챙겨주겠다는 마음이었지만, 고양이에게는 영양 불균형을 부를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활동가가 길고양이를 주려고 항상 상비하던 사료를 건네주고 마을 이장에게도 ‘고양이 사료가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며 연락처를 건네줬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마을 이장의 마음이 바뀌게 된 건 할머니 집 앞을 찾는 고양이들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잔반을 먹던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더니, 고양이들의 영양 상태가 좋아진 걸 체감한 겁니다. 사료의 효과를 직접 느낀 할머니와 마을 이장이 동물구조119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고양이 섬’ 조성이 발걸음을 떼게 됐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고양이 섬’이라는 이름이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마을 주민들은 처음에는 ‘고양이 섬’이라는 이름에 거부감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중성화와 예방접종 등을 실시하고, 고양이 할머니와 마을 이장의 주기적인 설득이 더해져 2019년부터 ‘고양이 섬’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고, 할머니 외에도 마을 주민 5명이 함께 고양이들의 사료를 챙겨주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고양이와 공존하는 모습을 청년 예술가들이 벽화로 남기는 등 고양이 섬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쑥섬이 '고양이 섬'으로 알려진 뒤 청년 예술가 등이 현장을 찾아 벽화를 그려놓는 등 섬의 이미지가 달라졌다. 동물구조119 제공


쑥섬은 고양이 할머니 외에도 마을 주민 5명 등이 고양이 사료를 챙겨주고 있다. 동물구조119 제공

‘고양이 할머니’는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할머니의 역할을 다른 마을 주민들이 함께 나눠지고 있습니다. 할머니 바로 옆집도 고양이들의 사료를 챙겨주고 있는 만큼, 공백을 걱정할 만큼은 아니라고 하네요. 동물구조119 임영기 대표는 “처음 쑥섬을 고양이 섬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울 때부터 5년 뒤에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고양이들과 지속적으로 공존하는 섬을 만들고자 했다”며 “4년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 그 모습이 갖춰져 있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좋은 건 할머니가 건강을 되찾아 고양이들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는 일이겠죠. 쑥섬을 만드신 고양이 할머니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겠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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