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의 진정한 성장을 원한다면

입력
2022.06.30 04:30
20면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제16회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한국 피아니스트 임윤찬(가운데)과 2위 러시아의 안나 게누셰네(왼쪽), 3위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초니가 수상자 발표 직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제16회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한국 피아니스트 임윤찬(가운데)과 2위 러시아의 안나 게누셰네(왼쪽), 3위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초니가 수상자 발표 직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소식으로 떠들썩하다. 한국뿐 아니라 해외 언론, 유명 매니지먼트사에서 보내는 애정과 관심도 뜨겁다. 선우예권에 이어 이 대회에서 2회 연속 한국인 우승자가 탄생한 것도 놀랍고 출전 제한 연령 하한선(만 18세)을 갓 3개월 넘긴 나이로 참가해 역대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는 것도 크게 화제가 됐다. 콩쿠르 공식 해설자였던 피아니스트 엘리자베스 로는 결과 발표 전부터 임윤찬 연주에 압도됐다며 엄청난 지지를 보냈다.

임윤찬은 최근 몇 년 새 한국 음악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어린 나이지만 바로크부터 현대 음악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감당해내는 보기 드문 연주자다. 과감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곡도 거뜬하게 소화해내는 그의 연주력과 이해력은 늘 예상을 뛰어넘었다. 접근 방식도 남다른데 특히 임윤찬의 베토벤 해석은 독특하면서도 신선했다. 누가 베토벤을 이렇게 칠까 싶지만 그의 해석에 설득되는 경험은 기분 좋은 기억을 갖게 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18일 끝난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심사위원장인 마린 알솝이 이끄는 포트워스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18일 끝난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심사위원장인 마린 알솝이 이끄는 포트워스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무엇보다 임윤찬은 많은 피아니스트가 폄하하거나 벽을 느끼는 리스트의 피아노 작품 세계가 얼마나 깊고 진지하며 아름답고 거대한 구조를 가졌는지 매년 꾸준히 보여줬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쇼팽에서 영역을 넓혀가는 경향과 달리 그는 '초절기교 연습곡'의 긴 호흡과 서사를 선택했고 '순례의 해'는 꼭 다시 듣고 싶은 '임윤찬의 레퍼토리'가 됐다.

어떤 기회를 통해서든 연주를 접하면 누구든 매료됐을 그의 음악을, 이제 세상이 알게 됐다. 티켓 예매가 가능한 하반기 그의 모든 공연이 매진됐으며 예능 프로그램 섭외까지 들어왔다. 엄청난 관심과 환호만큼이나 잘못된 정보, 과장된 표현, 억지 비교와 추측도 함께 쏟아졌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로 꼽힌다는, 누구에게도 확인할 수 없는 수식어를 달게 됐고 연주자의 미래를 걱정한다며 깜짝 놀랄 만큼 듣기 민망한 훈수도 많아졌다. 많은 사람이 그의 연주에 매료됐으니 감사한 일이지만 갑작스럽게 큰 관심과 관여는 연주자에게 부담이 되고 때로는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이나 영감을 지켜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1989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당시 19세 최연소 우승자였던 알렉세이 술타노프는 천재 피아니스트 찬사를 받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빡빡한 연주 스케줄을 소화하던 중 쇼크와 마비가 반복되다가 35세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음악적 영감은 그보다 앞서 이미 사라진 터였다. 198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스타니슬라브 부닌도 생각보다 빨리 무대에서 내려오게 됐다. 10년 전 마지막 내한 무대에서 몹시 흔들리던 그의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도 안타깝게 했다. 2000년 18세 나이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중국 피아니스트 윤디 리는 인기를 지나치게 의식한 들뜬 행동과 불미스러운 사건에 여러 차례 얽히며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퇴보했다.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스트미디어 제공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스트미디어 제공

1960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천재 발견'이라며 환호했다. 그러나 당시 18세였던 폴리니는 미켈란젤리, 루빈슈타인을 사사하며 8년이나 무대에 서지 않았다. 우리가 잘 아는 '전설적인' 폴리니의 모습은 그 과정을 거친 이후부터다. 1966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 그리고리 소콜로프는 콩쿠르 직후 언론과 여론으로 인한 불편함을 호되게 겪으면서 언론 노출과 레코딩을 하지 않았다. 기차로 이동할 수 있는 곳에서만 연주하기 때문에 지금도 러시아와 유럽 극장을 찾아가야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최근까지 몇 장의 실황 녹음 음반이 출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노출을 꺼리는 사람이다.

임윤찬은 지금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많은 연주자다. 다행인 것은 그를 존중하고 믿어주고 귀 기울이는 좋은 스승이 있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음악적 영역이 매우 방대하다는 것, 그리고 클래식 음악을 '놀이'처럼 즐기는 또래의 또 다른 천재적인 음악가들이 그의 주변에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으니 그의 인생에 대해 우리가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음악가는 콩쿠르 이력이 화려한 사람이 아니라 오래도록 음악이 멋진 사람이다. 어떤 콩쿠르, 몇 위에 올랐는지가 음악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유명 콩쿠르 우승자가 모두 최고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도 아니고 콩쿠르 수상 이력 없이도 무대를 장악하는 연주자는 너무나 많다. 경쟁을 뛰어넘는 음악가의 성장을 성숙한 자세로 지켜볼 때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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