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등장에도 시큰둥… 일본의 '가라케' 몰락의 교훈

입력
2022.06.25 04:30
<66> 통신 생태계의 ‘갈라파고스화’
일본의 ‘고유종’ 휴대폰, ‘가라케’를 생각한다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은 1990년대 무선인터넷에서 세계를 선도했지만, 디지털 기술의 사회적, 문화적 역할에 대한 성찰 부족으로 이를 폭넓게 수용하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실패했다. 그 결과 일본 사회는 오히려 최신 디지털 기술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이끄는 데에 소극적이고 둔감하다는 평가를 받는 나라가 됐다. 일러스트 김일영

◇ 세계 최초로 무선인터넷 시대를 열어젖힌 일본

일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무선인터넷이 대중화된 나라다. 1999년 1월 통신 회사 도코모(DoCoMo)가 휴대폰 전용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의 상용 무선인터넷 서비스, ‘아이모드(i-Mode)’였다. 사실 그 해 몇 달 뒤에 한국에서도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당시 LG텔레콤에서 ‘이지웹(ez-web)’이라는 휴대폰 전용 인터넷 서비스를 내놓았지만, 이용률은 현저히 저조했다.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자마자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도 휴대폰 이용자가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접속하는 기본 플랫폼은 PC라는 인식이 있었던 만큼, 무선인터넷 이용은 시들했다. 집이나 학교, 직장 등 유선통신망이 설치된 특정 장소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대도시뿐 아니라 시골 읍내에도 PC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겼기 때문에, 외출이나 여행 중에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2010년 전후 ‘스마트폰’이라고 부르는 고기능 기종이 보급되면서 무선인터넷 이용이 현저하게 늘어났다. 사실 이런 경향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사하다. 전화망도 잘 깔리지 않은 개발도상국이나 작은 섬나라 등에서는 유선망에 앞서 무선망이 도입된 경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일본은 1980년대에 자체적으로 이동전화 서비스를 시작할 정도로, 통신산업 분야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기술력을 가진 나라였다. 전화나 통신 인프라가 탄탄하게 갖추어진 소위 ‘통신 선진국’에서 무선인터넷이 유선인터넷에 선행한 지역은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에서만 무선인터넷이 인기를 누리던 때에 일본 생활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혹은 지하철에서 각자의 휴대폰에 몰두한 채 이메일을 쓰기도 하도, 만화를 읽거나 야구 경기의 최신 결과를 확인하기도 했다. 또 휴대폰에서 쓰고 읽는다는 모바일 전용 디지털 문학도 인기였다. 지금은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그때는 사람들이 어디에서나 자그마한 휴대폰 화면에 몰두하는 모습이 참 낯설었다. 무선인터넷이 차세대 정보 환경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만큼, 언제 어디서나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활용하는 모습에 내심 놀랐던 것도 사실이다.

◇ ‘가라케’, 일본 특유의 휴대폰 역사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에 일본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휴대폰을 일명 ‘가라케(ガラケー)’라고 부른다. ‘갈라파고스(일본어 발음으로는 ‘가라파고스’) 케이타이 (휴대폰을 뜻하는 일본의 은어)’를 줄인 말인데, 2000년대 초반 일본 국내에서만 애용된 기종들을 총칭한다. 통화와 무선인터넷 이용에 특화된 기능을 탑재한 고기능 휴대폰으로, 스마트폰 이전에 일본에서만 무선인터넷 이용이 활성화되었던 요인의 하나이기도 하다. 동태평양에 있는 갈라파고스 제도는 오랫동안 대륙과 교류가 없던 섬 지역으로, 이곳에서 코끼리거북, 갈라파고스펭귄 등 다른 대륙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고유종 생물이 여럿 발견되었다. 19세기에 다윈이 이곳을 방문한 뒤 진화론을 설파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마치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일본의 통신 생태계도 독자적으로 진화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선인터넷에 특화된 다양한 휴대폰 기종들이 유통되었다는 것이다. 이들 기종이 오로지 일본만의 ‘고유종’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의미에서 가라케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실 몇 년 동안 애용했던 입장에서 말하자면, 가라케는 ‘쓰는 맛’이 꽤 좋았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 많이 쓰던 휴대폰에 비해 재미있고 편리한 기능이 많았다. 깔끔한 인터페이스, 고성능 카메라, 각양각색의 그림 문자 입력 방식 등 무선인터넷에 몰두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브랜드가 달라도 모양이 비슷비슷한 스마트폰과는 달리, 형태와 디자인도 다양해서 소비자로서 선택의 폭도 넓었다. 사실 2008년 애플에서 첫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처음 발매했을 때에 일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했다. 아이폰이 자신있게 내놓은 많은 신기능들이 실은 가라케에서 이미 구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라케와 비교해서 특별히 좋은 점이 없다는, 박한 평가를 내리는 소비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전 세계 휴대폰 트렌드의 중심이 아이폰과 유사한 스마트폰 계열로 옮겨가면서, 일본 국내 시장에서도 가라케의 인기가 점차로 시들해졌다. 다양한 앱을 자유자재로 다운로드해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편의성이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가라케는 일본 국내 시장에서만 유통되는 모델이었기 때문에, 일본 통신업계는 애플이나 삼성 등 해외 기업에 스마트폰 시장을 통째로 넘겨준 꼴이었다. 사실 ‘갈라파고스 케이타이’는 훌륭한 기술력이 있었음에도 국내 시장에만 집중하다가 국제 경쟁력을 상실한 통신 기업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세계적인 트렌드를 경시한 폐쇄적인 시장 전략이 패인이었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다만 일본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때 그 시절의 가라케가 그 어떤 휴대폰보다 편하게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정보 환경을 제공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도 지금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아기자기한 가라케를 사용하던 때가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기술과 디지털 사회는 발맞춰 발전하는 것

일본 사회가 세계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앞서 ‘모바일 시대’를 경험한 것은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IT 평론가 하워드 라인골드는 ‘스마트 몹 (smart mob,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대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군중)’이라는 신개념을 제안해서 유명해졌다. 그는 도쿄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휴대폰 화면을 보며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일본인들을 보고, 이 개념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휴대폰이 통화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용도로만 쓰이던 시기에 일본에서는 무선인터넷이 일상적으로 이용되는 장면을 보고, 앞으로 다가올 모바일 시대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사회에는 겉에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속사정이 있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휴대폰이 아닌 PC로 능숙하게 인터넷을 활용할 줄 아는 인구가 많지 않았다. 무선인터넷은 자주 이용하면서도, 다양한 디지털 문화의 기본 플랫폼인 PC와는 친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소득이 낮을수록, 시골에 살수록,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경향이 높다는 연구도 있었다. 높은 무선인터넷 이용률이 오히려 PC 기반의 디지털 정보 환경의 순조로운 보급을 방해한 듯이 보인다. 즉, 당시 일본 사회는 무선인터넷 이용률만 기형적으로 높았을 뿐, 디지털 기술을 폭넓게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성숙하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는 과정은 기술 상품의 점유율이 올라가는 것만으로 완결되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다양한 맥락에서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역량이 더 중요하다. 한때 모바일 시대의 미래지향적 전범으로 주목받았던 일본 사회가 지금은 오히려 최신 기술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이끄는 데에 소극적이고 둔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지털 기술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그 기술의 사회적, 문화적 역할에 대해 균형잡힌 성찰이 부족했던 과보가 크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같은 일본, 다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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