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폭등 더 이상 못 살겠다"...트럭 세우고 기사들 거리로

입력
2022.06.07 19:00
화물연대 동시다발 시위...울산서 4명 체포
큰 충돌 없었지만 곳곳서 물류·출하 차질
부산항 비롯 주요 항만은 아직 지장 없어
앞으로 2, 3일이 고비..."정부가 중재해야"

화물연대가 전면 총파업에 돌입한 7일 오전 세종시 부강면 중부복합물류터미널 장치장에 트럭들이 정차해 있다. 평소엔 이 시간에 이곳에서 쉬고 있는 트럭을 보기 힘들다. 세종=정민승 기자


“오죽했으면 기사들이 이렇게까지 일을 던지고 길바닥으로 나올까요.”


7일 오전 세종시 부강면 중부복합물류터미널. 충청권 기업의 수출입 물류를 전국 주요 도시로 3시간 이내에 연결하는 물류 요충지다. 이곳에서 만난 트럭 운전 경력 40년의 이모씨는 한숨만 내쉬었다. 이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전면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장치장 곳곳에는 컨테이너 트럭들이 멈춰섰다. 그 사이로 삼삼오오 몰려있던 기사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이씨는 "모두가 힘든 시간이긴 해도, 기업과 정부가 이번만큼은 기사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가 폭등으로 이미 트럭 기사들이 감내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현재 시행 중인 '안전운임제'는 연료비와 유가를 연동하기 때문에 유가가 올라도 운전기사 수입에 별 영향이 없다. 하지만 올해 말 끝내기로 한시 도입한 것이어서 화물연대는 제도 폐지를 철회해달라고 요구해왔다.

큰 충돌은 없었지만...울산서 조합원 4명 체포

화물연대 조합원과 경찰이 전국 곳곳에서 대치했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다만 울산 남구 석유화학단지 앞에서 왕복 4차선 도로를 막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던 조합원 4명이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4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화물연대 조합원(2만2,000명)의 40%에 달하는 8,200여 명이 부산과 울산, 대구, 경남 거제, 제주, 대전, 경기 의왕 등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 참가했다. 그로 인해 각 사업장에서는 물류 운송과 제품 출하에 적잖은 차질을 빚었다. 특히 화물차 기사들의 노조 가입률이 높은 포항과 경북 동해안 지역에 소재한 기업들의 피해가 두드러졌다.

800명이 출정식에 참여한 포항지역본부에선 포항 지역 철강업체들의 물류가 ‘올스톱’되거나 원활하지 않았다. 포스코 관계자는 “4만9,000톤 가운데 2만 톤이 지연 출하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수급 고객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제철 포항공장은 이날 출하가 전면 중단됐다. 해당 공장의 하루 출하량은 6,500톤 수준이다.

7일 오후 경기 안양시의 한 레미콘 공장에 레미콘 차량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날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시멘트 가루를 운반하는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차량들이 운행을 멈춰 시멘트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BCT 차량의 경우 절반가량이 화물연대에 소속돼있어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건설업계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뉴스1

시멘트 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시멘트 생산시설이 있는 지역의 경우 파업 출정식이 주로 공장 앞에서 열렸다. 강원 영월 한일현대시멘트 공장 앞에서 100여 명이 출정식을 여는 등 강원지역 조합원 대부분(600여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충북은 수도권 등지로 많은 시멘트를 공급하는 곳이다. 그중 최대업체인 성신양회 단양공장은 하루 트럭 출하량(1만5,000톤)의 13%에 불과한 2,000톤을 처리하는 데 그쳤다. 아세아시멘트 단양공장도 트럭 물동량 6,500톤을 출하하지 못했다.

당장은 견디지만...2, 3일 지나면 충격파 증폭

다만 철도를 통한 운송은 예정대로 진행돼 그나마 손실을 메울 수 있었다. 이미 예고된 파업인 터라 대부분 사업장들은 계획을 수정하며 일단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국내 최대 무역항인 부산항의 경우 평소 시간당 1,000대가 오가던 흐름은 끊겼지만 10개 터미널의 장치율(컨테이너를 쌓아놓는 비율)은 평소(70%)보다 다소 높은 수준에 그쳤다. 운송 중단으로 장치율이 급속도로 올라 항만기능이 마비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조합원 1,800여 명이 파업을 시작한 전남 광양항의 장치율도 61%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향후 2, 3일 이후부터 마찰이 우려된다. 한 조합원은 “전국의 물류터미널 입구를 대상으로 집회신고가 들어가 있다”며 “8일부터 본격적으로 시끄러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화물연대는 중부복합물류터미널 앞에서 8일부터 7월 6일까지 4주 동안 집회를 연다고 신고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7일 오전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 삼거리 인근 도로에서 '화물연대 부산지역 본부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가 각 물류기지와 사업장 앞에서 비조합원 트럭까지 막아 세울 경우 화물주ㆍ정부 간 대치 전선이 노노갈등으로 확산해 사태가 꼬이고 장기화할 우려가 크다. 화물연대 호남지역본부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정부가 압박만 할 것이 아니라, 피해가 커지기 전에 합리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경북 구미 공단동 성안합섬 앞 출정식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그동안 생존위기에 처한 화물노동자들이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이 마련되기를 요구했지만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매출 3분의 2가 기름값으로"

조합원들은 '안전운임제'가 폐지될 경우 가뜩이나 폭등한 유가 부담이 훨씬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중부물류터미널에 따르면 부산까지 월 20회 왕복하는 컨테이너 트럭의 경우 1회당 약 50만 원의 유류비가 든다. 한 관계자는 “기사들이 월 1,600만 원 정도 매출을 올린다고 하지만, 기름값으로 매출의 절반 이상(1,000만 원)이 날아가고 300만 원에 달하는 차량 할부와 엔진오일 요소수 타이어 등 차량 유지비, 보험료를 더하면 남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합리적 중재안 없이 유가 폭등에 따른 물류비 부담을 트럭에 전가하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종시 부강면 중부복합물류터미널 인근의 한 주유소에서 한 직원이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화물연대 파업 여파로 이날 주유소를 찾는 트럭이 급감했다고 했다. 세종=정민승 기자

터미널에서 주차된 트럭에 요소수를 넣고 있던 한 트럭 기사는 “언제 다시 달릴지 몰라 일단 채워놓는 것”이라며 “조합원 여부를 떠나 지금 상태론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여론이 업계 전반을 강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중재안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종=정민승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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