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26일 정부 부처 산하 연구기관을 퇴직한 A씨가 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해 최초로 판단기준을 제시한 판결로, 무차별적 임금 깎기 방식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에서는 단체협약 개정 요구나 유사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소송은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하였는지가 쟁점이었다. 법원은 A씨의 경우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는 55세부터 월 93만~283만 원이 삭감돼 큰 불이익을 입었지만 회사 측이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임금 삭감에 맞춰 업무량 감축이나 업무강도 하향 등이 이뤄졌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을 중심으로 도입되기 시작했고 2017년 정년 60세 시행을 계기로 활성화한 임금피크제는 기업에 ‘인건비 절감’이라는 비용구조 개선 효과를 가져온 점은 분명하다. 300인 이상 기업 중에는 52%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을 정도로 정착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정부가 사실상 반(反)강제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공공부문 등에서는 이번과 같은 무리한 임금 삭감으로 숙련도 높은 고령자의 노동생산성과 근로의욕 저하, 노사갈등이라는 부작용도 생겼다.
이번 판결은 청년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이라는 임금피크제의 도입 목적은 정당하더라도 단순히 ‘인건비 줄이기용 임금피크제’ 시행은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생산성과 보상 간 격차가 크지 않도록 합리적으로 임금체계를 조정하는 작업이 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노사는 임금피크제에 적합한 고령자 직무 재설계, 근로시간 단축 등 정교한 보완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정부도 합리적인 임금피크제 시행을 위한 가이드라인 제시, 컨설팅 제공 등으로 판결로 인한 혼란과 분쟁 최소화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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