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시작은 할 수 있게 해야

입력
2022.05.1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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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되는 윤석열 정부의 초기 불통 행보
그래도 첫 내각구성조차 막을 명분 없어
야당이 진짜 할 일은 이후의 견제와 경쟁


선거란 그런 것이다. 단 0.7%포인트 표 차이로 100% 권력을 내주어야 하는 상황이 기막혀도 할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에서 표의 과잉대표성을 완전히 제거할 방법은 없다. 어찌 보면 민주당이 억울해 할 일도 아니다. 총선에서 득표율 49대 41로 고작 8%포인트 앞선 걸 갖고 3분의 2 의석으로 입법권력을 100% 누리다시피 했으니까. 어쨌든 정권은 바뀌고 새 정부는 출범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달리 해석할 것도 없다. 그냥 정통 보수가치의 복원 선언이다. 시장경제, 성장주의, 실용주의가 내용이다. ‘자유’를 강조했지만 정부규제를 최소화한 시장의 자유, 한편으론 본인이 검찰 재직 시 정치권력에 당한 핍박경험을 확장한 의미 정도다. 그 이상의 함의는 읽히지 않는다.

진짜 핵심단어는 ‘반지성주의’다. 사실과 상관없이 다만 이념 정파적 경향성만으로 치닫는 행태를 말하는 것이다. 비합리적 정치팬덤을 지목한 것이자 문재인 정부에 대한 총체적 규정이다. 야당 진영은 발끈하지만 영 틀린 말도 아니다. 예전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보수세력이 주도한 현대사 전체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역사로 규정해 논란을 빚었다. 그러니 전 정권 격하야 그러려니 하면 된다.

그의 취임사에 ‘통합’이 없었다는 시비는 부질없다. 취임사는 미사여구를 모은 행사용이거니와 역대 가장 뛰어났으면서도 전혀 지켜지지 않은 문재인 취임사로 인해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문제는 취임사가 아니라 당선 이후 보여 온 실제모습이다. 대선 이후 보수 중도층까지 청와대 졸속이전, 부적절 인사 등에 그토록 우려와 충고를 쏟아냈어도 그는 듣는 흉내조차 내지 않았다.

과거 DJ는 결정적으로 이인제 표 분산의 도움을 받고도 1.5%포인트 차이로 겨우 당선됐다. 그래도 민주화 이후 늘 최고평가를 받는 대통령으로 남았다. 비결은 통합내각 구성과 영남 보수인사인 김중권 대통령실장 기용이었다. 압도적인 보수정서를 통합행보로 누그러뜨려 국민을 결집시키면서 IMF위기를 성공적으로 돌파했다. 윤 정부가 처한 극단적 여소야대의 정치환경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통합과 협치 없이는 보수가치의 복원도 쉽지 않다는 말이다.

윤 정부에 대한 걱정은 그렇다치고 정작 할 얘기는 따로 있다. 윤 정부의 출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과, 그렇다고 아예 출발조차 못 하게 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민주당으로선 선거 결과가 여전히 아깝고 또 윤 정부가 아무리 마땅치 않다 해도 이렇게까지 해선 안 된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를 묶어두고 첫 내각 구성조차 못하게 가로막는 건 일반적인 정치게임의 수준을 크게 넘은 것이다. 이낙연 총리 인준에도 20일 걸렸다고 항변하나 한 총리 후보의 인준 청문 요청은 이미 한 달 열흘 전이어서 비교할 대상도 아니다. 뭐라고 강변하든 정호영, 한동훈 장관 후보가 조준점이고 한 총리 후보는 그 인질임을 누구나 안다. 전술적 선택이라 해도 청문보고서 채택 안 된 장관 후보 30여 명을 강행 임명하고, 통합과 협치와는 거리가 멀었던 민주당으로선 명분도 약하다. 모든 행태가 정권 재창출 실패 원인에 대한 처절한 반성 과정을 건너뛴 탓이다.

윤 정부 불통조짐에 대한 야당의 경고는 이만하면 됐다. 발을 떼지도 못하게 붙들어놓고는 제대로 뛰지 못한다고 타박할 수는 없다. 김부겸 전 총리의 마지막 고언처럼 최소한 시작은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옳다. 말할 것도 없이 이후의 불통정치와 부적격자 인선에 대한 책임과 비난은 온전히 윤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민주당이 해야 할 진정한 견제와 경쟁은 그때부터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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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한국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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