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최초 여성 정보기관 수장 돌연 경질...꼬리 자르기 논란으로 번져

입력
2022.05.11 16:14
수정
2022.05.1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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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 에스테반 스페인 국가정보국장
정부 '산체스 총리 해킹 피해' 이유 들었지만
'정부의 분리주의자 도청 의혹' 무마 목적 의혹

10일 해임된 파스 에스테반 스페인 국가정보국장이 지난 5일 마드리드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청문회에 출석하고 있다. 마드리드=EPA 연합뉴스

10일 해임된 파스 에스테반 스페인 국가정보국장이 지난 5일 마드리드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청문회에 출석하고 있다. 마드리드=EPA 연합뉴스

스페인 최초의 여성 정보당국 수장이 경질됐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 등 스페인 정부 고위 인사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에서 해킹 소프트웨어가 발견된 책임을 물은 것인데, 스페인 정가에서는 ‘꼬리 자르기’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산체스 정부가 카탈루냐 분리주의자들을 도청했다는 의혹으로 빚어진 혼란 책임을 정보당국에 덮어씌웠다는 것이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는 10일(현지시간) 파스 에스테반 국가정보국(CNI) 국장이 국무회의에서 해임됐다고 전했다. 에스테반 국장은 스페인 정보기관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장으로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취임 2년여 만에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에스테반 국장의 해임 이유는 공식적으로는 산체스 총리와 마르가리타 노블레스 국방장관, 페르난도 그란데말라스카 내무장관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의 휴대폰에서 ‘페가수스’라는 이름의 해킹 소프트웨어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펠릭스 볼라뇨스 총리실장은 앞서 2일 기자회견에서 산체스 총리의 휴대폰은 지난 2021년 5월 두 차례 해킹당했으며 최소 한 번 이상 데이터가 유출됐다고 밝혔다. 에스테반 국장은 2020년 초 CNI 수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행정부 수반을 비롯한 주요 내각 장관들의 휴대전화가 도ㆍ감청된 만큼 이에 대한 책임을 에스테반 장관에게 물은 셈이다.

하지만 해킹 및 도청 스캔들이 야당 정치인과 카탈루냐 분리독립주의자들로 확대되면서 산체스 총리가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당초 페가수스 스캔들은 모로코 정부가 산체스 총리 도청을 시도했다는 의혹으로 불거졌으나, 되레 총리 측이 야당 및 분리주의자 사찰에 나섰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 카탈루냐 분리독립세력은 지난달 스페인 정부가 60여 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해킹에 나섰다고 폭로한 바 있다.

에스테반 국장은 지난 5일 하원에 출석해 CNI가 페레 아라고네스 카탈루냐 주지사 등 총 18명의 카탈루냐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합법적 도청’을 했다고 시인했다. 법원 등 사법당국의 영장을 받아 도청했다는 주장이다. 야당 및 분리주의자들이 주장한 최소 63명 대상 불법 도청에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고 정쟁만 커졌다. 영국 BBC방송은 스페인 정치평론가들을 인용해 “에스테반 국장은 좌파 산체스 정부의 존속을 위한 희생양이 됐다”고 전했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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