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윤석열의 '능력'은 어디서 왔나

입력
2022.05.0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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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능력주의가 위력을 떨칠 듯하니, ‘능력’의 의미를 다시 따져 보자. 국어사전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라 풀이한다. 한국식 능력주의를 말할 땐 ‘힘’보다 ‘자격’으로 정의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이를테면, 의대에 갈 능력, 초고소득자로 살 능력, 정규직 지위를 누릴 능력.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재능과 노력, 그리고 재능과 노력의 시너지가 주재료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운이다. 인력이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연계뿐 아니라 인간계에도 없다. 각자 믿는 신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고, 다급할 때 초자연적인 존재를 찾는 것은 인류의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 생존 본능이다.

엄밀히 말하면 재능과 노력도 운이 만든다. 재능은 대체로 유전자의 특질과 양육자의 훈련으로 형성된다. 노력 또한 양육자에 의해 학습되는 경우가 많다. 유전자와 양육자는 선택할 수 없다. 복불복으로, 랜덤으로, 운명적으로 주어진다. 속되게 말하면 얻어걸리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60대 남성이다. 유리천장의 낙담과 끊어진 사다리의 낙망을 모르는 생득적 주류다. 1960년 서울에서 남성으로 태어나기 위해 그가 수고한 바는 없다. 정자와 난자가 시험을 친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윤 당선인은 유리한 출발선에서 인생을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대학 교수였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검사’라는 스펙이 만만한 건 아니지만, 물려받은 학습지능과 부모의 교육열이 결합한 세습 자본이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 윤 당선인은 8번 낙방했다. 불굴의 의지의 증표로 추앙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대학 졸업 이후 10년 가까이 밥벌이에 목매지 않아도 됐다는 것은 계급의 증표이기도 하다. 그에게 필요했던 건 최저임금이 아니라 참을성이었다.

윤 당선인의 성공 가도엔 운이 계속 따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을 잘 못한 것이나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자기관리를 잘 못한 것, 마침 윤 당선인이 이번 대선에 출마해 그들과 겨룬 것은 누구도 계획하거나 준비한 전개가 아니었다.

62년을 산 끝에 획득한 대통령의 자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100% 개인의 성취도 아니라는 뜻이다. 출세한 주류가 대개 그러하듯, 그러나 윤 당선인 역시 모든 영광을 자신의 능력에 돌리려 하는 것 같다. 요즘도 지역을 다니며 어퍼컷을 날리는 건 승리에 도취돼 있어서일 터다.

서울, 영남 태생의 서울대 출신 50, 60대 남성 위주로 내각을 채우면서 “능력만 봤다”고 했을 때, 배제된 이들을 향해 “자리 나눠먹기는 없다”고 했을 때, 윤 당선인은 운의 힘을 부정했다. 능력을 쌓을 기회의 문이 유난히 활짝 열려 있는 일생이었다는 사실에 겸허해하지 않았고, 이 사회가 실력과 혼동하는 본인의 정체성과 프로필을 당연한 특권이라 착각했다.

그런 대통령이 통치하는 나라에선 운 없는 사람들의 생존 투쟁이 한층 가혹해진다. 부정식품이라도 저렴하면 꾸역꾸역 사 먹어야 하는 사람들, 최저생계를 겨우 이어가기 위해 억지로 매주 120시간 넘게 일하는 사람들, 구조적 차별의 벽에다 머리를 찧는 사람들 말이다.

운의 비극은 불평등하게 배분된다는 것이다. 운의 조력을 어쩌다 더 많이 받은 사람들이 거만해지면 운 없는 사람들의 비극은 더욱 비참해진다. 무수한 사람들이 울다 죽는다.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고 약속한 윤 당선인의 어퍼컷이 겨눠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인가.



최문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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