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무의 재발견… 청정자연 품고 차 넘어 막걸리·미용제품까지

입력
2022.05.02 04: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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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우리 고장 특산물 : 연천 율무
눈건강 면역력 증진 노화예방 효능
모공 정화팩·비누에 막걸리도 인기
구수하고 당도 높아 전국 생산 절반
기계화로 젊은이 유입… 관광 연계도

4월 28일 경기 연천 율무 밭에서 농민들이 손으로 직접 율무 묘종을 심고 있다. 연천군 제공

4월 28일 경기 연천 율무 밭에서 농민들이 손으로 직접 율무 묘종을 심고 있다. 연천군 제공

벼과 식물인 율무는 손꼽히는 건강식품이다. 한때 남성이 먹으면 정력에 좋지 않다는 잘못된 상식이 퍼져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으나, 실상은 의이인(薏苡仁)이란 이름의 한약재로 쓰이는 약선(藥膳) 재료다. 무엇보다 율무 씨앗에는 눈 건강과 면역력 증진, 노화 예방에 좋은 루테인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 최근엔 피부세포를 재생하는 효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율무로 만든 팩, 비누 등 미용 제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율무는 줄기에서 딴 열매의 씨를 주로 식품이나 가공제품 원료로 사용한다.

지난해 1200여 톤 수확, 전국 최대 생산지


율무 전국 최대 생산지인 경기 연천의 율무열매. 연천군 제공

율무 전국 최대 생산지인 경기 연천의 율무열매. 연천군 제공

휴전선 접경지 경기 연천군이 율무의 전국 최대 생산지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달 28일 군인들이 지키는 민간인 통제선(민통선) 경계 초소를 지나 차량으로 5분은 더 달려 마주한 민통선 평야.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3,300㎡ 남짓한 밭에서 한 농부가 트랙터를 끌고 부지런히 흙을 갈고 있었다.

웃음 가득한 얼굴로 기자를 맞이한 윤여진(43) 연천율무연구회장은 “율무를 심기 위해 경운(흙갈이) 작업을 하고 있다”며 “올해도 율무 농사가 잘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15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요즘 연천 율무 농가들은 본격적인 파종 시기를 맞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날도 민통선 들녘 등 연천 곳곳을 둘러보니, 밭을 갈거나 씨를 파종하는 농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9월 수확기의 연천 율무밭. 연천군 제공

9월 수확기의 연천 율무밭. 연천군 제공

연천이 전국 최대 율무 주산지로 커진 데는 기후 조건이 한몫했다. 경기 최북단 연천은 평야지대라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가 커 콩이나 율무 등 작물이 잘 자란다. 오염원이 거의 없는 북한 쪽 상류에서 내려오는 임진강과 한탄강의 물을 먹고 자라 싱싱하고 영양도 풍부하다고 한다. 예로부터 연천 농민은 주로 콩을 재배해왔는데, 연작 피해를 줄이기 위해 후작 작물로 심은 율무의 작황이 좋아 율무 주산지가 됐다. 지난해 연천의 율무 생산량은 515㏊ 면적에 1,240톤으로 전국 율무 생산량의 52%를 차지했다.

연천 율무가 10년 넘게 전국 생산량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품질에서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김관중 연천농업기술센터 농업유통팀장은 “연천 율무는 선선한 기후로 껍질이 두꺼운데, 이 덕분에 병충해에 강하고 농약을 덜 써 친환경적"이라며 "다른 지역 율무보다 맛도 구수하고 당도도 더 좋다”고 말했다.

세안제·율무쌀 등 다양한 가공제품 등장

연천주조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율무 씨를 넣어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율무막걸리. 연천주조 제공

연천주조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율무 씨를 넣어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율무막걸리. 연천주조 제공

율무를 재료로 쓴 가공제품 시장도 넓어졌다. 대표적인 율무 가공 식품인 차(茶) 제품 외에도 막걸리도 인기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0년 공장 가동을 시작한 연천주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율무 막걸리를 생산해 연간 10만 통(0.75ℓ짜리 병)을 판다. 율무 막걸리는 다른 막걸리에 비해 목 넘김이 부드럽고 율무 특유의 구수한 향을 느낄 수 있다.

모공 정화팩, 율무 비누, 사마귀 치료제, 율무 떡, 죽 등 율무의 효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품도 눈길을 끌고 있다. 위장 기능을 돕는 율무쌀은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반응이 좋다.

연천이 전국 1위 율무 산지 타이틀을 확고하게 고수하고 있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최근 몇년 사이 생산력이 위축되고 있는 게 문제다. 연천 율무농가 수는 고령화 등 영향으로 2017년 813곳에서 지난해 645곳으로 줄어들었다. 재배면적은 1,370㏊에서 1,240㏊로, 생산량은 1,370톤에서 1,240톤으로 감소했다. 이 때문에 한때 70%를 차지하던 율무 시장 점유율도 지금은 50%대로 내려앉았다.

윤여진(43) 연천율무연구회장이 28일 연천 장남면 민간인 통제구역 내 자신의 율무밭을 트랙터를 이용해 갈고 있다. 이종구 기자

윤여진(43) 연천율무연구회장이 28일 연천 장남면 민간인 통제구역 내 자신의 율무밭을 트랙터를 이용해 갈고 있다. 이종구 기자


그래도 희망적인 건 자동화와 기계화가 정착되면서 젊은 농부들의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2,3년 사이 20, 30대 청년 10여 명이 연천에서 율무 농사에 뛰어들었다. 연천에서 율무와 콩을 주로 재배하는 임찬혁(34)씨는 “율무 재배의 경우 다른 작물에 비해 기계화가 많이 이뤄져 인건비 절감 효과가 크다”며 “자연환경이 뛰어난 연천 율무의 경쟁력과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재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천군은 특산품인 율무 재배 농가의 소득 증대를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 농민 1인당 연천 율무 재배로 얻은 연 매출은 712만 수준이다. 연천군 관계자는 “율무 가공판매 시설 지원과 유통망 확대, 관광 등과 연계한 특화 사업들을 추진해 농민의 수익증대를 꾀하겠다”고 말했다.

윤여진(43) 연천율무연구회장이 4월 28일 연천 장남면 민간인 통제구역 내 자신의 율무밭에서 파종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이종구 기자

윤여진(43) 연천율무연구회장이 4월 28일 연천 장남면 민간인 통제구역 내 자신의 율무밭에서 파종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이종구 기자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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