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 9240억 보상하라" ... 11년 만의 조정안, 또 무산되나

입력
2022.04.11 19:00
10면
구독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피해자 7,000여 명에게 최대 9,240억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최종 조정안을 내놨다. 사건 발생 11년 만에 나온 조정안이다. 하지만 옥시, 애경 등 주요 기업들의 반발로 조정안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민간 차원의 조정안이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결국 법원 소송으로 가게 되고, 복잡한 사안의 성격상 오랜 재판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피해보상이 더 늦춰지는 것이다.

김이수 조정위원장은 11일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경과보고회'를 열고 그간 진행해온 조정안을 공개했다.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이수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이수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 7000여 명에 최대 9240억 지원

조정안에 따른 피해보상 총액은 최소 7,795억 원에서 최대 9,240억 원에 이른다. 세부적으로 생존 피해자의 경우, 연령이나 피해등급 등에 따라 2,500만~5억3,500여 만 원을 받는다. 지속적인 간병이 필요하면 '미래 간병비'를 추가로 받는다. 가족 내 피해등급이 '경도' 이상인 피해자가 1명 이상일 경우 1,000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다.

사망피해자는 나이에 따라 2억~4억 원의 유족지원금을 받는다. 피해가 인정되지 않는 단순 노출확인자도 3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이 조정안은 신청철회자, 노출미확인자, 개별기업과 합의를 마친 피해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김이수 조정위원장은 "피해자와 기업 양측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조정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면서도 "사회적 조정의 의미를 살려 국민의 눈높이에서 입장 차이를 조정했다"고 말했다.

권고안도 함께 제시... 핵심은 일회성·종국성

조정위는 '최종 조정안'과 동시에 '권고안'도 함께 내놨다. 권고안의 핵심은 '일회성'과 '종국성'이다. 피해자들이 받을 피해보상금 총액을 한 번에 지급하고, 이후 다시 이 문제를 재론하지 말자는 것이다. 최종 조정안에 대한 합의가 성사되면, 기존 피해자들의 새로운 피해 사실이 드러나거나 이제까지 몰랐던 새로운 피해자가 나타난다 해도 기업들엔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고, 최종 조정안에 준해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복잡해서 생기는 문제다. 피해자만 수천 명이고 노출 정도, 나이, 병, 중증 정도, 사망 여부가 모두 다르다. 거기다 가해자 격인 기업 역시 SK케미칼·SK이노베이션·LG생활건강·GS리테일·롯데쇼핑·이마트·홈플러스·애경산업·옥시 등 9개사인 데다 각 사의 사정도 모두 다르다. 그러니 조정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내고, 나중에라도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정부가 적극 나서는 쪽으로 정리하자는 제안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들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애경본사 앞에서 살인기업 규탄 및 애경 불매운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환경보건시민센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들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애경본사 앞에서 살인기업 규탄 및 애경 불매운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옥시·애경 등 "종국성 보장 않으면 동의 못 해"... 조정 무산되나

이 권고안이 양측의 화약고다. 당장 피해보상금의 60% 정도를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진 옥시와 애경 두 회사는 조정안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종국성이 조정안이 아니라 권고안에 담겨서다. 애경 관계자는 "분담금을 내지 않겠다는 거부 의사가 아니다"면서도 "조정안에 대한 종국성을 보장하고, 기업 규모를 반영한 책임 분담 등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분담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측 역시 입장이 엇갈린다. 옥시 제품을 사용하다 2009년 1월부터 중증 천식을 앓고 있는 김경영(46)씨는 "계속적인 치료비용 등을 감안할 때 조정 자체는 만족스럽지 않다"면서도 "가해자가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방식의 조정이 성립된다면 피해자로서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사실상 완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피해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나이 어린 피해자일수록 최종 조정안에 동의하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정위 "조정기간 연장" 언급하지만...

조정안이 무산될 경우,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다. 피해자들은 현재처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상 구제급여 및 치료비를 지급받거나 민사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또다시 기나긴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조정 기간이 연장될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 김 위원장은 "원래 조정위 활동을 지난해 말까지 마무리하려 했는데, 이미 2개월씩 두 차례나 연장했다"며 "4월 말까지 활동 기한이 주어졌다 생각하고 그때까지 추가 협의 가능성을 열어 놓겠다"고 말했다.

조정위는 13일 피해자 단체 대표들과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조정 연장 요청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조정위는 사적 기구라 조정을 계속 진행할지 여부를 피해자 단체와 기업들이 합의해야 한다"며 "완전히 새로운 내용으로 2차 조정으로 가기는 쉽지 않고, 새로운 조정이 필요하다면 그 시점의 절차에 따라 만들어진 조정위가 이를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박소영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