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입력
2022.03.31 18:00
26면

걱정스러운 尹정권에 대한 기대치 수준
독선 갈라치기 무능 답습해선 안 돼
정권교체의 의미 새기며 늘 겸손해야

이런 선거 뒤끝도 처음이다. 매번 박빙의 선거 후에도 이맘때면 새 정부에 대한 기대치는 70% 이상이었다. 2주차에 경이로운 지지율 87%의 문재인 대통령은 차치하더라도 그 5년 전 그와 피 말리는 승부를 벌였던 박근혜 당선인 때도 그랬다. 기대와 기다림, 격려의 의미였다.

이 관행이 깨졌다.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기대치(46%)가 2주 만에 득표율(48.6%)보다 떨어졌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라는 게 질문방식과 시점에 따른 차이가 크지만 문제는 선거 후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그를 뽑은 이들 사이에서도 선택에 대한 회의가 커져간다는 뜻이다.

재론키도 민망하지만 그는 개인적 덕목으로 뽑힌 게 아니다. 선거 직후 조사에서도 입증됐듯 그가 선택된 이유는 압도적으로 정권교체다. 말하자면 전임 정부의 실패에 기댄 취약한 당선인이다. 당선 공신은 안철수도, 이준석도 아닌 문재인과 이재명이다. (중도층이) 그를 선택한 이유는 문 정권과는 다르리라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정확히 이 지점에서 출발의 신발끈을 맸어야 했다.

그 핵심은 세(勢)에 취한 독선, 견해와 이념이 다른 이들에 대한 갈라치기와 배제, 무능 같은 것들이다. 그에게 끊임없이 통합과 치유를 당부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선거 후 첫 이슈가 된 청와대 이전, 여가부 해체, 장애인시위 대처 같은 것들이 다 이를 시험하는 사안들이었다. 지지 하락 원인을 분석할 것도 없다. 여기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청와대 이전은 주요 공약이었으므로 추진할 만한 일이었다. 제왕적 권력을 해체하겠다는 상징성에 많은 이들이 수긍했다. 숱한 국가적 난제에 앞서 선정한 것까지도 전임처럼 약속만 해놓고 슬그머니 주저앉지 않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일 만했다. 문제는 과정이다.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 정당성부터 확보하고 가능한 현실적 해결책을 두루 구했어야 했다. 그러면 진정성과 추진력으로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이게 다 생략되면서 준비 안 된 치기만 노정한 셈이 됐다. 독선 무능의 청산이 그를 택한 이유인데도.

여가부 해체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여성문제를 우리 사회 전반의 차별구조 안에서 더 종합적 근본적으로 다루겠다고 꾸준히 설득해야 할 일이었다. 장애인시위 대처도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사안이 발생했을 때 현장조사를 나가 중재하고 요구를 성의 있게 경청하는 모양새라도 보였으면 이토록 서운함을 살 일이 아니었다.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사회적 차별 해소, 나아가 세대 젠더 등의 갈등문제는 훨씬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다뤄져야 옳다. 이건 더 이상 진보진영만의 가치가 아니라 노무현 이후 우리 사회에 내재화한 공통의 가치가 됐음을 인정해야 한다. 많은 국민들은 586의 ‘쟁취한 기득권’에도 염증을 느끼고 있다. 이런 판국에 ‘생래적 기득권’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윤 당선인과 보수정권은 이런 문제에 관한 한 매사 더 겸손하게 생각과 몸을 낮춰야 한다. 말뿐이 아닌 진짜 전체 국민의 지도자가 되려면. (그런 점에서 같은 기득권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준석 대표 리스크에 대해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할 때도 됐다.)

냉정하게 말하건대 윤 당선인은 아직은 선거에서 이긴 상황이 아니다. 오는 6·1 지방선거를 통해 비로소 정권 운영의 동력을 획득하기까지 선거는 진행 중이다. 아직은 일천한 국민적 공감과 동의의 힘을 키워나가지 않고는 부동산, 경제, 북한, 코로나, 미·중 갈등 등 어떤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겸손하고 또 겸손하면서 국민이 정권교체를 선택한 의미를 매순간 곱씹기 바란다.


이준희 고문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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