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쌈 최고 존엄 명이나물... "장아찌 대신 생으로 즐겨야 제격"

입력
2022.03.28 04: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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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우리고장 특산물: 홍천 명이나물
신선도 문제로 장아찌 위주로만 섭취
향과 맛 온전히 느끼려면 생으로 먹어야
알싸한 향이 느끼함 잡아줘 육류와 궁합
발아부터 수확까지 7년 "약 칠 필요 없어"
"홍천, 고지대 많고 일교차 커 재배 적합"

강원 홍천군 내면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올봄 출하를 앞둔 명이나물이 자라고 있다. 우태경 기자

강원 홍천군 내면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올봄 출하를 앞둔 명이나물이 자라고 있다. 우태경 기자

명이나물은 푸짐한 고기쌈 한 상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다. 잎이 길고 넓어 한 장만으로 고기를 바로 싸먹을 수 있고, 상추에 곁들여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특유의 알싸한 향은 느끼함을 잡아줘 기름진 육류와 찰떡궁합을 이룬다. 그래서 명이나물을 쌈채소로 내는 삼겹살 식당은 '맛을 좀 아는 집'으로 통할 정도다.

하지만 명이나물이 식탁에 오른 지는 꽤 됐는데도, 대부분 간장에 절인 장아찌 형태로 제공된다. 냉장 보관해도 3~5일이 지나면 시들기에, 명이나물은 보통 산지에서부터 장아찌로 가공된다.

그러나 명이나물의 진가를 아는 이들이 보면, 장아찌만 먹는 건 이 좋은 식재료를 겨우 '반절'만 즐기는 것이다. 울릉도가 원산지였던 명이나물이 10여 년 전부터 내륙에서도 재배되면서, 현지에서 별미로만 대접 받던 '생 명이나물'을 이제는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이달 중순 제철을 맞은 명이나물을 출하 중인 강원 홍천군을 찾았다.

생으로 먹으면 더 좋은 명이나물

강원 홍천에서 명이나물을 10년째 재배 중인 김재석(66)씨가 명이나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우태경 기자

강원 홍천에서 명이나물을 10년째 재배 중인 김재석(66)씨가 명이나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우태경 기자

홍천군 내면에 위치한 한 비닐하우스. 닷새 후 출하를 앞둔 명이나물이 파릇파릇한 연둣빛을 뽐내고 있었다. 간장에 절여져 축 늘어진 모습만 익숙하던 명이나물이 힘있게 자라는 모습은 무척이나 낯선 장면. 그러나 명이나물 하나 뜯어 향을 맡으니 장아찌에서 은은하게만 풍기던 알싸한 냄새가 코끝을 강하게 찔렀다. 10년째 명이나물을 재배하는 김재석(66)씨는 "제철에 생 명이나물을 먹으면 장아찌로 염장됐을 때보다 훨씬 풍부한 향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번만 생으로 명이나물을 먹어보면 끊을 수 없다"고 장담하는 김씨는 생 명이나물을 전국에 퍼져 있는 고객에게 판매하고 있다. 한 번 맛본 고객이 재구매를 하고, 그 과정에서 생 명이나물의 매력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매년 제철만 되면 생 명이나물 6톤 정도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최근 명이나물 농가에선 장아찌로만 섭취되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상품화에 도전하고 있다. 홍천군에서 명이나물 청년농들을 이끌고 있는 장선재 산마을청년영농조합 대표는 "정부 공모 사업에 선정돼 생 명이나물이 들어간 산나물 샐러드라는 밀키트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며 "명이나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꾸준히 상품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 홍천에서 올봄 출하를 맞은 명이나물이 자라고 있다. 우태경 기자.

강원 홍천에서 올봄 출하를 맞은 명이나물이 자라고 있다. 우태경 기자.


울릉도 원산이지만, 홍천·충주서도 재배

명이나물은 7년 이상을 기다려야 수확할 수 있다. 사진 속에 있는 싹은 약 2cm 길이로, 2년을 기른 것이다. 우태경 기자

명이나물은 7년 이상을 기다려야 수확할 수 있다. 사진 속에 있는 싹은 약 2cm 길이로, 2년을 기른 것이다. 우태경 기자

지금 출하하는 명이나물은 재배 농가가 7년 이상 기다린 뒤 수확한 것들이다. 명이나물은 밭에 씨앗을 심으면 다음해 발아돼 3년을 키운 뒤 옮겨 심을 수 있다. 여기서 또 3년을 기다려야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에 총 7년이 걸리는 셈이다. 게다가 1년에 새순이 두세 개씩만 나오는데, 다 뜯으면 연작이 어려워져 한두 잎만 수확할 수 있다. 이렇게나 명이나물은 재배가 어려운 귀한 작물이다.

명이나물은 과거 울릉도에서만 재배됐지만, 지금은 충북 충주시, 강원 양구군 등 내륙에서도 많이 재배된다. 홍천군은 2008년부터 재배를 시작해, 지난해에는 축구장 94개 규모(66.9ha)로 재배면적이 넓어졌다. 2013년에는 지리적 표시제도에 등록해 '홍천 명이나물'을 고유명사로 만들었고, 매년 산채 축제를 열어 명이나물을 알리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 유행으로 드라이브 스루 판매 방식으로 대체한 산채 축제에선 1,110㎏ 판매되면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특히 홍천군은 명이나물을 재배하기에 적합한 내륙 지역이다. 명이나물은 일교차가 클수록 향이 진해지는데, 홍천은 해발 600~1,000m 고지대가 많아 낮과 밤의 온도차가 크다. 강원도의 청정 환경과 수도권과의 높은 접근성도 이점으로 꼽힌다. 15년 전 서울에서 귀농해 13년째 명이나물을 재배 중인 장선재 대표는 "명이나물은 홍천의 자연 환경과 잘 맞는데다 자생종이라 약을 칠 필요도 없어서 재배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홍천군은 명이나물을 알리기 위해 2015년 산나물 브랜드 '산채이플'을 출범시킨 뒤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고 있다. 지역특화육성 사업 일환으로 매년 175개 산나물 농가에 포장재나 친환경 약재도 지원하고 있다. 허필홍 홍천군수는 "올해도 1억6,500만 원을 지원해 '산채이플'을 홍보하고 다음달 산채 축제를 열 계획"이라며 "농가 소득 향상에 기여해 전국 제일의 산나물 고장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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